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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1
이현세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처음 본 것은 86년이었습니다. 정말 까마득히 어릴 때였지요.(대체 몇년 전이냐...16년 전인가;;)
그땐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었습니다. 물론 그 어린 맘에도 주인공 오혜성의 막판 왕영웅되기는 좀 썰렁했었지만 그 중간 과정, 그리고 마지막 엔딩까지 정말 무진장 감동 먹고, 그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독후감+스토리 요약본을 며칠에 걸쳐 열나절 썼던 기억이 납니다. 험난한 일제시절, 청년들의 피보다 뜨거운 우정, 여인들의 지고지순한 순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피 튀기는 전쟁터... 제목도 얼마나 근사한가요. '死者여 새벽을 노래하라'.
최근, 이 만화가 영화화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나같은 인간이 또 하나 있나 보군.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그 반가운 추억으로 다시 본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는......... 그냥 환상 속에서, 기억 속에서 넘겨볼걸... 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세월을 타는 만화였던 것이지요.
일단 그 노골적인 가부장주의. 뭐, 그건 어릴 때부터도 느꼈던 이현세 만화의 전매특허였지만, 그때야 달리 볼 만한 작가도 없었고 또 맨날 보다 보니 그러련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렇게 몇년의 공백을 두고 다시 보다 보니, 굉장히 거슬려서 보기가 어렵더군요. 오혜성 그놈은 뭐가 그리 잘나서 여자 몇 인생을 아작내고 돌아다니는 건지. 그놈때문에 줄줄이 파탄난 명주, 야스코, 그리고 마동탁 역의 일본인 장교(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요;;)..
하긴, 사실 욕먹을 놈은 오혜성이 아니라 엄지역의 김명주였을 겁니다. 대체, 저놈의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신앙처럼 받드는 거냐. 너는 인생에 줏대도 없냐? 그냥 그 남자 좋다가 아니라 거의 신으로 모시다시피 하는 명주를 나이먹어서 보니, 숭고한 사랑이 아니라 짜증으로 보였습니다. 쿨럭.
하긴, 이 비슷한 구도를 남벌(94년)에서 봤을 땐, 거긴 더더욱 지나치게 노골적인 남근우월주의여서 아예 내용에 빠질 엄두도 못 냈었지만... 다시 본 '사자여..'도 그리 나을 건 없다는 걸 깨닫고 좀 놀랐습니다.
꼭 남녀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캐릭터들이, 뭐랄까 꼭, '과연 80년대로세'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스테레오타입들이라는 느낌. 여기 나온 캐릭터들은 그야말로 '픽션'속의 캐릭터들일 뿐, 실제로 저런 사람들이 살아서 숨쉴 거라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비단 주인공 클래스뿐만 아니라 배신자역의 조연, 지나가는 카렌족 수장에 이르기까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하트의 전쟁'의 원작 소설에 대한 평이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대사가 40년대 소설에서 이미 다 써먹었던 구절들이다.' 너무 교조적이어서 구닥다리라는 것이었이었지요. 16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본 '사자여...'는, 바로 그러했습니다. 상황은 있고 캐릭터는 없달까요. 그들도 고뇌는 하지만 그 고뇌 역시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워서 이입이 어려웠습니다.
정말이지 다른 건 다 떠나서, 2002년의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 캐릭터들에게서 현실감을 느낄 수 없다는 치명타를 과연 2000년대 중반에 제작될 영화가 어떻게 극복할지... 암담합니다.
세월의 더깨가, 16년 전에는 감동적이었고 또한 당연했던 인물 묘사를 낡게 만들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