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 인생에 전기를 마련한 책이 4권 있습니다. 하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전전날인가 봤던 '교과서에서의 여성 차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어린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교과서를 배웠던 저는, 교과서가 실은 얼마나 여성차별적인가를 깨닫고 전율을 느꼈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중2때 보았던 정신세계사의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인간의 시간이 얼마만한 용량을 갖고 있는가를 실존인물의 삶을 통해 펼쳐보인 책인데, 그걸 읽고 또 한번 충격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게으름을 버리지 못했으니, 게으름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인가 봅니다.)

세 번째 책은 고2때 보았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 그렇다고 제가 딱히 실제 행동에 옮기는 훌륭한 지식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만(웃음), 적어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지요. 교과서의 이미지를 꺠어 준 책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책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책이 바로 이 대학교 2학년 때 봤던 '식인과 제왕'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종교의 문제로 상당히 고민을 하고 있었고, 이 책은 그런 저에게 굉장히 설득력 있는 '무신론'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저를 '신은 없다' 쪽으로 돌려놓은 책. 어쩌면 가장 큰 영적 호소력을 저에게 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한참 종교의 문제로 고민하던 저에게는 복음이자 전율이었습니다. 왜 현대의 신은 역사(役事)하지 않는가. 왜 종교는 남녀차별적인가. 남녀차별의 문제는 초6이래 저를 항상 괴롭히던 의문이었고, 이 책은 그 뿌리에 관하여 어떤 종교도 제게 주지 못했던 해답을 주었습니다.

바로 <생식 압력>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의 키워드가, 저의 오랜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던 것입니다. 내 인생 첫 번째 책의 '완성'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 생식 압력이라는 키워드는, 지방마다 다르게 발전한 금기, 종교, 그리고 좀더 구체적인 의문들, 가령 왜 더 발전했던 중국이 후대에는 유럽에게 먹혔는가 라든가 그런 의문에도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책이 지나치게 문화를 환경 결정론적으로 몰고간다고 비난한다지만 글쎄요, 이보다 더 명쾌한 이론이 어디 있을까요.

가령 챕터 13의 '물의 올가미'. 이 이론보다 더, 중국과 유럽의 역사 발전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 있었습니까? 끽해야 유럽인들이 한다는 소리는 백인의 우월함 아니던가요.

왜 아스텍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먹었는가에 대한 해답 역시 다른 책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은 그 역사에 대한 끔찍하고 선정적인 이미지만을 부각할 뿐, 근원에 대한 해답을 파고들지는 않지요. 하지만 마빈 해리스는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든 문명에 빠짐없이 적용되면서 아무런 모순을 남기지 않는, 완벽한 키워드를!!

...어쩌면 저는 이 책을 읽고 느낀 경이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남들은 찾아내는 오류를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학계 사람들은 이 이론에 반박도 많이 한다니까)

하지만, 이 책은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 있습니다. 사회 현상의 근원, 인간 역사의 원류. 문화의 생성 과정. 모든 부조리와 차별과 불합리에 의문을 느끼고 진리를 갈구하던 모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분명 뭔가를 얻을 것입니다. 설령 약간일지라도, 분명히. 모든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