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어드 1
김상현 지음 / 마술램프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출판은 2권까지밖에 안 된 모양이지만 온라인으로 끝까지 읽은 사람으로서 몇자 적어봅니다. 처음 딱 읽었을 때 느낀 것은, 요즘 세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 전 우주의 온갖 종족이 어울려 사는 미래 사회. 하지만 스타워즈 같은 가볍고 경쾌한 작품이 아닌, 블레이드 러너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무겁고, 어둡고, 사회 비판적입니다. 개인적이고 가볍고 말초적이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요즘 세태에겐 정말 맞지 않는 진중한 작품이군요. 고전 SF를 보는 듯 합니다. 덕분에 요즘 세상에 잘 팔릴 책은 아니어 보입니다만, 진지한 독자들이라면 오랜만에 손에 잡는 멋진 작품이 될 것입니다.

일단 사회 풍자적 요소. 락벳 전쟁은 마치 베트남 전쟁을 연상시키며 그것의 의미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강력한 종족인 로즈웰 레이스가 휴먼 레이스(우리 지구인들입니다)를 용병으로 고용하여 비슷한 종족인 락벳 인들과의 전쟁에 투입하는 것, 보수에 눈이 어두워 전쟁에 참가하는 휴먼 레이스, 그러나 전쟁이란 결국 비참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침략자인 로즈웰 레이스와 휴먼 레이스가 결국은 락벳 인들에게 패퇴당하는 것.
그리고 전후, 휴먼 레이스들의 행성인 어스의 모습은, 전쟁 특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회상에서 결국은 군인 쿠데타로 넘어가 버리는, 칠레와 한국, 온갖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숱하게 일어난 일들을 차분이 되짚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쉽게 삼킬 수 없는 쓴 약처럼 느껴지는 것은 통쾌함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주인공 메이런, 아이라, 그 외의 모든 인물들은 유능한 인물들이지만 그들 개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바꾸기에는 사회라는 벽은 너무나 견고합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희망은 없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그것이 하이어드가 그려내는 행성 어스의 미래이지요.

놀라운 것은 모택동의 옛말까지 인용하여 싸우는 이들의 행동은 결코 교조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작가의 놀라운 역량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행동에는 그만한 동기와 전제, 과정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전형적이지도 평면적이지도 않습니다. 우리 개개인이 그 시대에 던져졌다면 바로 이렇게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방황했을, 그런 이들의 너무나도 필사적인 싸움이기에─내면의 싸움이건 사회와의 싸움이건─, 우리는 이들의 힘들고 고달픈 삶을 보면서 외면하고픈 생각마저 드는 것이겠지요.

하물며 그들이 살고 있는 먼 미래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부조리한 세상과 다를 바가 없음에야. (우주적 배경에 현대 사회의 풍자를 절묘하게 섞어넣는 작가의 솜씨에 경의를 표합니다) 너무 무겁긴 하지만, 진지한 작품을 읽어보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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