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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1
CLAMP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만화가 처음 등장했던 것은 90년. 아니 89년인가? 하여간 10년은 확실히 넘은 옛날이었다. 아직 나리타 미나코 풍의, 선으로 승부하는 평면적 그림과 잔잔한 내용이 대세이던 시절, 클램프는 과감한 톤 사용과 대범한 액션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나역시 그중 한명이었다.
' '를 이용한 대사 강조법 처리도 신선했고, 뭔가 색다른 느낌에 많은사람들은 열광했었지만...다시 본 <성전>은 이런 류의 시도, 이런 류의 그림이 처음이었다는 점에서는 대단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무릇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수라와 야차, 건달파와 소마, 그리고 모두의 뒤통수를 친 제석천과 선대 아수라 왕과의 관계는, 진하고 절절하다고는 하지만 대체 왜 그렇게까지 진하고 절절해야하는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특히 아수라에 대한 야차의 헌신은, '왜?'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불쌍한 애에 대한 동정만으로 그렇게까지 열성이 될까?
게다가 나중에 반전이라고 깔았던 건달파왕의 소속과 제석천의 과거. 건달파왕의 경우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고 나름대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제석천의 경우는 무리가 있었다. 그가 1권부터 9권까지 해댔던 그 수많은 잔인한 폭정이, 단지 아수라왕에의 사랑의 마음이었다기엔 너무나 지나친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제석천은 바보란 말인가? 그런 식으로 정치해서 아수라왕-연인의 소원이 제대로 들어질 것 같았나? 사랑에 중점을 두건 학정에 중점을 두건, 둘중의 한쪽은 억지스러워진다. 대사 처리에서 ' '의 남발도 이제는 지겹다;; 지금 와서는 역시... '당시를 풍미했다'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기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