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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세아린 1 - 테롤드 크로워드의 서(書)
임경배 지음 / 자음과모음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환타지 소설은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만, 그 와중에서도 이 책 <카르세아린>은 감히 사서 보아도 좋은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배덕에 대해서 이토록 통렬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려낸 환타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지구의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를 잡아먹고 개를 죽이고 열대림을 짓밟으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보다 못한 존재이기에. 하물며 인간 사이에서도 그런 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데 '다른 종족'간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먹이 사슬의 더 윗고리에 존재한다면? 그것도 마치 개미가 코끼리에게 대항할 수 없듯이, 그런 절대적인 힘과 강력함으로 군림하며 인간들이 개미를 짓밟듯이 인간을 짓밟는다면?
이 책은 끊임없이 우리의 인간 중심, 아니 인간 우월의 시각을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합니다. 그것은 10살 어린애만도 못한 지혜를 가진 무지막지한 최강종족 드래곤들을 통해 강력히 형상화되죠. 그들이 지혜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개미를 밟아 죽이는데 아무런 머리를 쓸 필요가 없듯이, 드래곤은 인간과 무릇 모든 생명체들을 짓밞는데 아무런 머리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드래곤들은 무리를 지어 사는 종족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와 관계 속에서 길러지고 필요한 '지혜'라는 두 단어가 필요하지 않은 종족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짓밟힌 인간은 오열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분명 동정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드래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발밑에 죽은 개미가 우리에게 항의하더라도 우리는 가당치도 않아 코웃음을 칠 것이 뻔하듯이, 그들 절대자 드래곤은 인간이라는 개미가 아무리 앵앵거려도 코웃음만 칠 뿐이고, 또한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드래곤에게 당하는 인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제 2위의 종족에게 짓눌리는 몬스터가 있고 오크가 있습니다. 7권인가의 뒤에 실려있는 어느 오크의 원망과 비통에 찬 단편은, 정녕 인간이 드래곤을 나무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시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인간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마침내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륙당하는 그들 오크를 보며, 과연 인간은 드래곤에게 무슨 낯으로 항의한다는 것인지.
그러나, 역시 인간은 뻔뻔하고, 그들은 대반역을 획책합니다. 그러나 그 반역은 양날의 칼. 드래곤을 멸절시키는데 성공했으되, 인간 역시 위기에 빠집니다. 그리고........... 인간의 위기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배덕과 더불어 종언을 고합니다.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해피엔딩을. 그러나 그 진상을 아는 자들에게는 수십년이 지나도록 끝나지않을 죄의식과, 한없이 되뇌어야 할 자기 합리화를 동반한 끔찍한 악몽의 엔딩을.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하며 주인공이 행복하게 끝나기를 바랍니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비참하고 억울한 고통을 당한 자가 행복해져서 사필귀정, 정의는 이긴다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정의가 픽션 속에서만은 구현되길 바라며.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독자들의 기대를 무참하게 산산히 부숩니다. 마지막, 주인공 일행 내부의 배덕과 그에 따른 주인공들의 비참한 최후를 보며 정말 처음엔 저도 배신감에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읽어보았을 때, 이 책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된 것이죠.
현실의 가장 추악한 배덕을, 눈돌리지 않고 직시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 책. 그것도 당의정을 입혀 재미를 동반하면서요. 인간 세상의 거울이니 뭐니를 다 떠나, 재미있는 내용과 마음에 드는 많은 캐릭터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음미할 가치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