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박물관 동심원 15
푸른동시 동인 지음, 임수진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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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게 되었다. 짐을 싸면서 어떤 책을 챙겨갈까 하다가 <별 박물관>을 택했다.
그동안 푸른책들 출판사에서 나오는 동심원 시리즈를 챙겨본 덕에 여러 시인의 시집을 접해보았는데 <별 박물관>은 푸른동시 동인 동시집이라서 여러 시인의 작품들이 한데 모아져 그 의미가 큰 것 같다.
창밖으로 휙휙 내달리는 풍경들이 비슷한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듯이 <별 박물관> 역시도 그랬다.
저마다 다른 빛깔의 시들이 기차 여행을 하면서 읽기엔 제격이었다고 할까.

소설을 읽다보면 책 속의 이야기에 끌려 나를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시는 좀 다른 것 같다.
시를 읽다보면 자꾸 주변 이야기가 생각나고 각각의 시가 모두 이야기로 느껴져 다채로운 느낌이 든다.

몇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구멍

                            이장근




방바닥에 구멍이 뚫렸나 보다

소리가 새는 게 분명하다

뒤꿈치를 들고 다니는데도

아래층 할머니는 시끄럽다고

만날 인터폰을 한다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할머니께 일렀더니

“내 한번 다녀오마.”

아래층에 내려가셨다

“혼자 사시더라 쯧쯧

마음에 구멍이 뚫린 거지.”

친구하기로 했다며

전화번호까지 적어 오셨다

할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신 후

인터폰이 울리지 않는다

뛰어다녀도 공을 튀겨도 된다

시골 할머니가 서울 할머니의

구멍을 막았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마도 경험이 있을 듯한 이야기다. 나는 시골서 자라서 늘상 밖에서 생활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을 갇혀서(?) 지내다 보니 민폐를 끼칠 때가 있다. 아마도 이 시의 아래층 할머니는 외로우신 분이 아니셨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길을 가다가 모르는 할머니를 만날 때가 있다. 낯선 사람에게도 자식자랑에 이런 저런 말씀을 걸어오시는 것을 보면 나이들 수록 외로움도 깊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복수
                            
                               김미희


양말 뒤집은 채 벗어 놓았더니
엄마는 뒤집힌 그대로 빨아
서랍에 넣어 뒀다. 


요까짓 정도 가지고 뭘
바로 뒤집어 신으면 되지.

 
목욕하고 젖은 슬리퍼 두고 나왔더니
엄마는 슬리퍼 가득 물을 담아
가지런히 모아 두었다.

 
학교 가지 전 부랴부랴
화장실에 간다고 달려갔더니
내 양말 철벅 젖고 말았다.


쌤통이다!
엄마는 ‘이에는 이’라면서
이를 갈고 계시지만

 

그거 아세요?
양말 빨랫감 하나만 더 늘었다는 거.




너무 재미있어서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없을 때는 아이와 다투는 엄마들을 보면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나도 꼭 아이의 수준과 똑같다. 아이의 욕구는 인정하지 않고 가끔 내 말만 잘 들었으면 하는 이기심이 생겨난다. 그래서 아이를 상대로 싸우기도 한다. 좀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뜨끔해지기도 했다.









축구공 하나가

                                 김현숙


여름 한낮

축구공 하나가
동네 아이들
다 데리고 나갔다




학교 운동장으로



그 더운 여름날 축구공 하나가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가다니 발상이 재밌다.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찰 아이들을 생각하니 시원한 수박 한덩이 준비해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김현숙


삼겹살 좋아하는 엄마
몸무게 늘려 놓고는체중계 탓




맥주 좋아하는 아빠
허리둘레 늘려 놓고는
나잇살 탓




게임 좋아하는 나
신 나게 게임하고는
새 컴퓨터 탓




생쥐처럼 구멍을 쏙 빠져나가는
탓,

탓탓탓탓탓탓탓


탓이란 것은 정말 이상도 하다. 하면 할 수록 자꾸 하고 싶어진다. 아이하고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끝내 아이가 잘못해서 그런거라고 아이에게 탓을 하고 만다. 솔직히 그러고 나면 내 자신이 한심해진다. 행동에 대한 책임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지게되지는 않나 보다. 탓탓탓.... 새해에는 탓하는 습관을 줄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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