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아저씨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4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4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 / 마루벌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아이 책꽂이에서 「눈사람 아저씨」를 꺼내어 봅니다. 크레용으로 그려진 파스텔톤의 그림을 영상물을 보는 느낌으로 한컷 한컷 시선을 옮기며 따라가 봅니다.

아이의 이름을 딸아이 이름을 붙여 불러주고 싶지만 남자 아이라 그냥 원본을 따라 제임스라고 부릅니다. 아침에 눈을 뜬 제임스는 창문밖에 눈이 내리고 있음을 알고는 급히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눈을 굴려서 자기 키보다도 더 큰 눈사람 아저씨를 만들어 놓지요. 목도리도 둘러주고 머리에 맞는 모자도 씌워줍니다.

한나절을 그렇게 보내고 자기방으로 들어와 잘 채비를 하는 제임스는 내내 바깥에 세워둔 눈사람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런 제임스의 눈에 정말 믿기지 않을 일이 벌어지지요. 눈사람 아저씨가 제임스에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걸어와 악수를 하고는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저의 아이는 글없는 그림책을 그다지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공룡이라는 신비함에 이끌려서 꺼내오는 책인 「신비한 자연사 박물관」이 고작이니까요. 글없는 그림책은 붙여진 지문에 의해 내용이 한정되는 것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부모가 읽어주는 형식의 책에 익숙해진 딸아이에게는 읽힘없이 본다는 게 좀 답답한가 봅니다.

그랬던 아이가 요즘은 책의 내용을 마음대로 구상해서 읽습니다. 내용은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이러한 현상은 아직 한글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에서 저자는 아이에게 되도록이면 한글떼기를 늦게 하라고 충고하고 있더군요. 아이가 글을 일찍 깨치게 되면 그림책에서 얻는 더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빼앗게 된다고요. 그때는 이 말뜻을 어렴풋이 알았는데 지금의 아이행동을 보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뚜렷하게 알 수가 있겠네요.

딸아이의 책을 읽는 행위는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바로 그림을 읽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읽혔던 내용을 토대로 그림속에서 어느 부분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늘은 내용이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하거든요. 책은 한 권이지만 아이가 읽는 내용은 여러 권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사정이 이럴진대 딸아이에게 있어 글없는 그림책의 분야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그림읽기를 하는 아이에게 지문이 있건 없건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하니까요..

「눈사람 아저씨」를 보면서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하은아~ 하은이는 아저씨가 좋으니?”
“응..”
“왜 좋은데?”
“친구같아~”

딸아이에게 비친 눈사람 아저씨의 모습은 바로 친구의 모습이었나 봅니다. 제임스보다 덩치가 크지만 낯선 세계에서 보여준 아저씨의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았으니 이제 겨우 네 살인 아이의 눈에도 어눌한 행동이 친근하게 느껴졌던 게지요.

비디오를 통해서 보았던 내용과는 좀 다른 면이 있지만, 책 또한 연속되는 박스컷을 이용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전반부에 고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하늘을 날게 되는 클라이막스, 그리고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 마지막 장에 온통 여백으로 처리된 상단에 조그맣게 그려진 박스안의 눈사람 형상을 보고는 딸아이도 무슨 심각함을 느끼는지 마지막의 그림읽기는 이렇습니다.
“친구는 슬펐어요~~”

비록 지문이 없지만 그림을 따라가며 내용에 걸맞게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글없는 그림책.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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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좋은 그림은 글보다 더 정확하고 많은 걸 전달해 주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