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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너와 나를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130쪽)
너와 나, 우리 둘만이 마주 보고 서 있는 순간.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선으로 수렴된다. 진심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때. 작가 박상영에게는 십 대에, 교실에서 만났던 윤도와 스쿠터를 함께 타고 달리는 바람이 불던 시절이었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두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과 친구들 간의 불안, 절망, 슬픔, 화해를 그리고 있다. 성장소설이라 부를 수 있기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마음 한편에 남은 있는 십대의 나,를 소환하지 않을까?
2002년, 한창 월드컵 열기로 가득 찬 지방의 D시. 텅 빈 독서실에서 월드컵의 환호성을 등진 채, 세상과 유리 벽을 친 '나' 앞에 윤도가 등장한다. 그가 들고 있는 피엠피에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영화가 흐르고, ‘캘리포니아 드림’ 노래가 독서실을 가득 채운다. ‘전 우주가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을 기원하고 있는 이 순간, 한가롭게 금성무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남자애라니. 자꾸만 흥미가 갔다.’(42쪽) 첫눈에 윤도에게 빠져든 ‘나’. 그날 이후, 윤도와 노래방에 가고 그가 혼자 머무는 컨테이너에서 음악을 듣고 스쿠터를 타고 수성못을 돌면서 둘은 비밀스러운 시간을 만들어나간다.
금지된 사랑을 하는 ‘나’는 겉으로 애정표현을 못 하기에 내면의 독백만이 하염없이 쌓여간다. 윤도를 옆에 두고 차지하고 싶은 순수하고 지독한 감정에 독자들은 무조건(?) 지지를 보낼지도. 타인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스럽고 불안정한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해 가슴앓이하는 연인들의 보편적 감정과 같다. 아무런 조건 없이 친구 윤도를 향한 애틋하고도 절절한 마음. 박상영표 사랑표현은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배시시 웃는 윤도의 얼굴을 보니, 나라를 팔아먹어도 용서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106쪽)
“윤도가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게, 고유한 취향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경하게 다가왔다. 윤도가 윤도만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내 시야 밖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일궈가고 있다는 게 싫었다. 그를 내 곁에 묶어두고,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119쪽)
“날 때부터 인연이 정해진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서로의 새끼손가락에 묶여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새끼손가락을 움찔하기만 하면 윤도에게 떨림이 전해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121쪽)
작가는 IMF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반 친구, 다단계를 하다가 사라진 가족,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를 만나는 아이들 등등. 가정에 아픔이 있는 십대들이 사춘기를 어떻게 통과해 나가고 있는지를 작가는 때론 경쾌하게, 때론 묵직하게 서술한다. 사랑과 아픔의 예민한 감정의 템포를 왔다 갔다하며, 등장인물들을 마치 학창 시절에 우리 반 친구임직하다. 불안정한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사춘기 시절의 우리.
박상영은 첫 장편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 싸이월드, 만화책 <나나>, 왕가위의 영화, 캔모아, 그리고 유행했던 팝송과 가요로 2002년도의 감성을 충만히 복원한다. 굳이 2002년도가 아니어도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대학 입시를, 미래를 위해서만 달려야 했던 시절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무작정 앞을 향해 나아가야 했기에 옆으로 치워놨던 사랑, 아픔, 두려움, 슬픔의 덜 익은 몸부림은 허사가 아니었다고, 특히나 진심을 다했던 사랑은 '우리인 채'로 그대로 남아있다고, 이제야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