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 배반의 역사로 잃어버린 궁극의 맛을 찾아서
김현진 지음 / 난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인문 서평]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 음식에 담긴 진정한 맛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



저자는 먹는다는 행위란 존재를 바꾸는 행위라 말하고 있다. 단군신화를 예를 들면서 마늘과 쑥을 먹은 곰이 인간이 되는 것은 인내의 음식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먹는 음식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우리 존재의 의미를 규정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신의 향연에서 인간의 만찬, 구도자의 밥상이라는 구도로 음식에 담긴 철학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불교윤리 전공자이긴 하지만 기독교에서 이슬람, 힌두교, 유교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사상을 넘나드는 그의 생각은 우리들의 지평을 높여주고 있다.

신이 즐기는 음식은 향기였다고 한다. 제사를 통해 조상신들에게 향기를 올린 후 남은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조상과 함께 하는 삶의 역사를 이어지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 제사의 의미인 것이다. 제사의 많은 절차나 형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의 음식은 결국 나눔과 소통이라는 전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깨어진 것은 에덴동산의 과일을 먹는 것과 같이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에덴동산의 과일을 먹은 후 신은 인간에게 관계의 단절, 먹거리의 단절, 삶의 고통이라는 세가지 벌을 내린다. 결국 신의 향연에서 인간의 만찬으로 바뀌는 계기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세에 발달한 미식의 의미는 귀족들의 폭식에서 시작되었듯이 인간의 만찬은 부의 독점을 통한 먹거리의 통제에 있다. 살찌고 기름진 음식은 권력자들의 차지가 되었으며, 백성은 굶주림이나, 거치른 곡식과 채소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 인간의 만찬이 보여주는 뒷 모습이다.

부의 대표적인 나라 미국에서 버리는 음식쓰레기로 10%에 달하는 굶주려 죽어가는 인류를 살릴 수 있지만 이 모순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현실이 되고 있다(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사족을 붙인 것이지만).


저자는 이제 구도자의 밥상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핵심은 음식은 나누는 데 있다는 것이다.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작은 나눔(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을 통해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구도자의 밥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밥상 나눔이 거창한 것은 아니라 강조한다.

저자는 아주 단순하게 계산한다. 자신의 평생 모을 돈 1/100만 가지고도 인류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나눔이 담겨 있는 음식이 진정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향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낌없이 먹어치우는 음식들을 조금만 절약해도 지구상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들의 욕심이 담긴 사회체계가 이것을 가로막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구도자는 특정한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구도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 있을 때 지구상 어딘가에 굴주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지혜를 찾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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