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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기업서평
]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일 양국의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과 성장에 얽힌 치열한 삶과 양국의
우정
한국동란 전후 먹을 게 없어 꿀꿀이죽까지 먹었던 한국의 모습은 2차대전 이후 일본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장소는 다르지만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한일간 양국의 인스턴트 라면 역사는 치열함이 옅보이는
기업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치열함 때문에 일본의 라멘이 한국 라면의 시작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 일본의 라멘을 즉석 식품으로 만들었던 사람은 지금의 닛신(日淸)식품이라고 한다. 물론 즉석
라멘의 탄생에 대한 기원은 몇가지 있기는 하지만 상품화를 시도해서 성공한 기업이 닛신식품이다. 그들이 처음 개발한 치킨라면은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라면의 상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라면 형태의 모습이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은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묘조식품의 오쿠이사장이다. 처음 묘조식품은 미국의 밀가루 배급을 받아 건면을 제조해 팔던 회사였다. 이후 자유배당제로 바뀐 후 밀가루 수급을
책임지는 일을 오쿠이가 맡으면서 그의 라면 인생이 시작된다. 즉석 라면의 한 단계 앞의 계기를 만든 것은 국수 건조기의 탄생이다. 보통 국수는
10시간 이상을 말리게 된다. 급속하게 말리면 표면이 갈라져 깨져버려 상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가 오는 날은 건조를 할 수 없거나
조금만 늦어 비를 맞게 되면 그 국수는 다 버려야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처음 회전 건조대를 개발한다. 그러나
문제는 실내 건조를 위해 썻던 석유난로의 중유연기가 스며들어가 국수에서 기름 냄새가 나는 거였다. 이러한 실패로 인해 반품이 넘쳐 회사가
힘들어지는 위기까지 겪게 되지만 결국 보일러의 열풍만 활용하게끔 한 회전건조를 이용한 자동건면공정을 완성하게 된다.
처음 이것을 완성하자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특허로 등록하여 남들이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오쿠이의 생각은 달랐다. 아예 기술을 공개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해서 건면 전체의 시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업의 우위성은 개발된 제품에 대한 다른 측면으로 얼마던지 승부를 해도 된다는 게 오쿠이사장의 생각이었으며, 기술 홍보를
통한 기업이미지 향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일본의 라멘 산업이 성장한 배경에는 오쿠이사장의 자동건면시스템의 개방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 자동건면제조시스템의 탄생은 인스턴트 라면 탄생의 문을 활짝 열게된다. 건면을
기름으로 살짝 튀겨 만든 즉석 라멘은 집에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획기적인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장은 확대되었으나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결과도 만들어지면서 업계들의 특허분쟁과 소송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오쿠이 사장은 이러한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라면과 스프를 따로
포장해서 파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반조리된 상태의 라면에 끓인 물만 붓는 식의 라면이 전부였다. 스프 별첨 라면은 그 당시
라면업계의 진흙탕싸움인 특허소송전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다른 회사와 차별화를 강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방법은 성공하여 묘조식품의 성장을 만들게 된다.
그는 이탈리아 파스타회사와 제휴를 통해 파스타도 만들게 되면서
제2의 도약을 만든 장본인이다.
한국의 라면을 알린 사람은 삼양식품의 전중연사장이다. 그는 해방후
동방생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금융인이었다. 그가 라면이라는 식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회사 옆에 있던 남대문 시장에서 팔던 한 그릇 5원의
꿀꿀이 죽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부대에서 먹고 남긴 음식물 쓰레기를 한번 더 끓여 팔던 꿀꿀이죽은 한국동란 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한끼
식사가 되었지만 전중연은 그 아픔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보험이라는 업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한 끼 식사가 더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고 보험사를 정리하고 식품업에 뛰어들 생각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의 라면을 알게 되고 한국에서 반드시 이것을
상품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것은 미국의 원조로 인해 밀가루는 그래도 풍부한데 빵만 먹으면 영양의 부족을 해결하기 힘들어 기름에 튀겨낸
라면이 적격인 상품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를 정리하고 일단 기름을 유통하는 삼양제유라는 회사를 만들고 일본의 라면에 대한 정보를 구하게
된다.
그 당시는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아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만약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에서 기계를 들어와야 하는데 그만한 외화를 구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정보부부장이었던 김종필의 도움으로 외화를 마련하게 되고
일본으로 건너가 기계를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식품회사는 거의 불가능한 가격을 얘기하거나 담당자가 출장중이라는 이유를 대며 거절 아닌
거절을 하게 된다. 거의 포기를 하고 그래도 제면기는 사가야 하지 하는 심정으로 연결한 제면기 사장이 연결해준 사람이 묘조식품의
오쿠이사장이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이탈리아 회사가 아낌없이 전수해준 파스타 제조기술의 경험이 있던 오쿠이
사장은 전중연 사장의 한국인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열정에 자신의 회사에 납품하는 가격으로 한국에 수출하는 것은 물론 향후 기술지도는
무상으로 해주는 것과 로얄티는 없는 것으로 한다는 계약을 해주게 된다. 그가 전사장하고 우리가 민간외교 역할을 하자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부분을
잘 대변해준다 하겠다. 갑(묘조식품)은 을(삼양식품)에게 대하여 한일친선을 위해 기술을 무상으로 전수한다는 계약서는 한일간 기업의 계약 중
유일한 계약일 것이다.
이러한 계약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방향성이 맞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일로 인해 한국에서 1963년 라면제조공장이 만들어지게 되고 어려움은 있었지만 한국
라면의 성공적인 성장이 가능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일인당 라면섭취는 한국이 연간 7.4봉지로 세계 1위이다.
또한 한국의 신라면은 대표적인 한국의 식품으로 한국을 다녀가는 관광객의 필수 선물 중의 하나로 뽑힌다. 이러한 라면의 성장사 뒤에 한일 양국의
아름다운 민간 외교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한일간 역사의 문제로 인해 아직도 아픔을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담을 쌓을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힘을 미국, 일본의 해양문화와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문화를 순환시키는 힘이라
해석하는 본인에게는 일본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 역사에 대한 판단은 더욱 객관화 해서 명확하게 판단하되 양국간의 관계는
긴밀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들여 온 라멘기술이 지금 세계를 제패하고 있듯이 말이다.
라면의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이 가야할 방향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