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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 도시들 경쟁하다 - 수직에서 수평으로, 랜드마크의 탄생과 진화
송하엽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2월
평점 :
[인문 서평] 랜드마크 ; 도시들 경쟁하다 - 랜드마크는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도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존재로 인식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도시가 더 확대될 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늘어나 더 환경적일 수 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도시집중화의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랜드마크라는 부분을 생각함으로서 문화적인 측면으로 랜드마크와 도시가 어떤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부제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랜드마크의 탄생과 진화"라는 말을 붙였듯이 처음 랜드마크의 구성이 상부층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이제 도시인이 함께 만드는 공유의 차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책은 국가의 상징이 되어버린 랜드마크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런던아이, 위싱턴의 위싱턴기념비를 들고 있으며, 예술의 상징이 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구겐하임 미술관을, 경제적 상징물로 상하이 마천루, 두바이, 라스베가스, 싱가포르를, 치유와 소생의 가치를 보여주는 그라운드제로, 일본, 공유의 장으로 뉴욕의 하이라인과 서울의 청계천을 들고 있다.
국가의 상징에서부터 시작하여 국민소통의 장으로 연결되는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국가 중심의 랜드마크 사업이 이제 국민의 소통이 장이 되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도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책을 보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의 국가적 상징이 되는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이 자유의 여신상이라는 그리이스로마신화를 연상시키는 여신을 국가적 상징으로 만드는데에는 쉽지 않은 행보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미국을 자유의 나라로 인식하고 그 철학적 근원을 그리스로마문명에서 찾는 그 당시의 유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랜드마크 하나가 그 나라의 국민생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의 공식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였으며, 그 받침대에 있는 "지치고 가난한 자는 모두 나에게 오라.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를 호흡하라. 집 없는 자, 세파에 시달린 자, 이 생동하는 해변으로 오리. 황금의 문 아에서 횃불을 들리니"라는 새로운 거대 조각상이라는 제목의 에마 라자투스의 시가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94미터의 놀라운 높이는 세계 7대불가사의 건축물에 비견되기 위한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결국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고를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랜드마크는 그 시대의 그 나라를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자유의 여신상이 1865년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의 지원으로 시작되었으나 결국 미국의 독립적인 상징물이 되었고, 파리의 에펠탑이 그 시대 가장 강한 철강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상징물로 제시하는 런던아이는 "런던아이는 에펠탑이 파리에서 했듯이 특별한 사람이나 부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공공적이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으며, 런던의 주요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 런던아이의 특별함이다"라고 말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인용구처럼 시민들과 함께 하는 상징물로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2000년 새로운 세기에 새로운 상징물로 리뉴얼된 런던아이는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이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랜드마크의 사례는 물론 성공의 사례도 있지만 런던의 거킨빌딩과 바르셀로나의 아그바타워처럼 비판론에 시달리는 견해도 말하고 있다. 랜드마크라는 대표적 구조물을 만든다는 자체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랜드마크는 수세기를 지내야할 건물이 되어야 하기에 미래세대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지향성과 현재 상징성을 두루 갖추어야 할 상징적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책에 한국의 사례에 대해 청계천을 아주 짧게 말하고 있지만 바로 이러한 미래성의 부분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부분때문이었을 것이다. 묘하게 서평을 쓰는 오늘 뉴스에 청계천을 자연친화적으로 바꾸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이전 이명박대통령의 청계천복원이 다시 변화를 맞게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대문의 상징물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오픈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어울리지 않은 괴물이 동대문에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보게 되지만 그 상징물이 국가적 상징물이 될지는 조금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상징물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클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무엇을 장징하는 지도 애매하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애매한 DDP가 오늘 서평을 정리하면서 주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성의 문제를 심도있게 고민하지 않은 기획자의 모습이 생각나서 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상징물은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속성이 자신의 바벨탑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바벨탑이 아니라 함게 공유의 상징이 될 수 있다록 좀더 다양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지혜가 함께 하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