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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 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3년 8월
평점 :
[냉전 종식] 선택 -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작은 거인의 고백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자서전
지금은 사라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마지막 당서기장이며, 최초의 대통령이자 마지막 대통령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20세기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지만 준비안된 혁명으로 인해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을 혼란으로 밀어놓았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극단적 평가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미 그는 회고록을 출판했기에 이 책은 회고록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주로 개인사를 기술하면서 자신이 역사의 변화의 물결에 어떻게 서게되었는지와 회환을 말하고 있다. 특히 부인인 라이사의 죽음에 대한 애뜻한 감정과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역시 자신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가족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책은 특히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정과 그 과정에 벌어지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많이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다른 사람의 저서나 자신의 이야기에서도 많이 말해오고 있는 이야기지만 자신의 생각을 반성적으로 곁들이고 있다는 면에서 흥미를 더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주장을 옹호하는 입장이 더 강하기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실패한 지도자라는 평가에 신중한 평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한채 밀어붙였기에 결국 실험에 그친 실패가 되었고 결국 이러한 실패가 원인이 되어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는 결과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주로 옛 소비에트연방의 권력세력과 러시아 측의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가 실패한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방의 평가는 평화군축외교를 통해 냉전을 종식시키고 동유럽국가들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어쨋든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과도기적 인물이라는 한계가 그의 평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시골출신인 자신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개혁의 전면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처음 느꼈던 소련의 문제가 공산주의체제의 경직성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변화를 시도하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인민의 입장에서 개혁을 생각하면서 이길을 들었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염원한 개혁의 방향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개혁이며 이러한 낙관적인 믿음이 결국 그의 평가를 실패한 개혁자의 이미지로 만들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가져왔다. 소련의 종말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며, 예정된 붕괴였기에 개인의 잘못에 포커스를 맞추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역사의 뒤안길은 항상 가십거리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가 만약 시골출신이 아닌 중앙의 핵심세력 중에서 성장했다는지, 아니면 그가 자서전에 밝힌대로 사회주의 개혁만이 답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과연 그가 이러한 개혁의 앞에 서 있었을까? 그가 자서전의 제목을 선택이라고 쓴 것 자체가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다시금 사회주의 개혁이 실패한 것인가라는 화두가 사회주의 진영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부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물론 어떤 체제를 이론과 현실로 분리해서 생각하기에는 어렵지만 사회주의의 생각이 현실에서 바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론 자체가 문제였던가, 아니면 실현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가의 문제인지는 역사의 저멀리 뒤안길에서 해석될 문제이다.
아직 생전이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 다시 고르바초프의 저서전을 읽는 의미는 세기의 변화의 마침표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도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인류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체제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체제가 무엇인지는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 하겠지만 그러한 체제는 어떤 주의도 아니고 사상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품을 수 있는 합의이며, 스스로 변화해가는 유연한 삶의 표현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표현의 삶을 찾아낼 수 있는 훈련이 21세기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