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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생각하라 - 지금 여기, 내용 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비극적 시대의 탈출구를 말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
내용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의 시대에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게 한다.
페르시아어인 '와 남 니하단'은 '누군가를 살해하려면 그를 죽이고 그 시체위에 꽃을 심어 감추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사회가 바로 이말에 딱 맞는 사회가 되고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 마치 계급투쟁은 사라진 것 처럼 보이지만 그는 우리들의 모든 삶에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계급투쟁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자본의 발전으로 인한 잉여이익의 수혜를 받는 착취하는 계급이면서 노동하는 계급인 엘리트계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윌가의 투쟁은 계급투쟁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계층들의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엘리트계층은 새로운 권력자를 만드는데 이들은 모든 계급 위에 군림하며 대중에 기반을 두면서 정치적 대표임을 요구한다. 특히 국민이라는 집단의 대표로 행세하는 이들의 권력은 모든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계급의 이해당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를 윌가가 지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실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희생자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민족주의라는 개념이다. 미국의 국가주의나 선진국들의 외국인 혐오증이 이러한 모습이다. 그들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계급갈등은 은폐하고 그 원인을 다른 데서 찾으려 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중간계급은 보수주의를 선택하고 우익의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입장과 사상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기술,금융전문가집단이 담당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먼저 멸망한다고 마르크스가 예견했지만 결국 먼저 사회주의의 멸망이 가져오게 된 것은 이러한 시스템을 바로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닌이 노동자계급의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결국 그가 만든 국가라는 체계가 계급을 억압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의 형태가 노동자의 대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계급을 억압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사회주의 몰락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악한 민족주의는 다문화주의자들이었던 유대주의자들이 오히려 시오니즘으로 불리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만들면서부터 만들어졌다. 유대교를 믿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이 오늘날 다른 민족들을 적대시하는 민족주의가 된 것이다.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 세계가 이러한 문제에 둔감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쾌락과 향락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문화 속에 우리를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살아 있다는 것을 찬양하면서 그러한 쾌락이 지속될 수 있도록 향락문화를 즐기고 있다. 담배와 술, 마약, 포르노가 자본주의에서 더 만연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가져다 주는 것은 공허감만 가져다 주기 때문에 우리는 더 갈급해져서 계속 찾게 된다. 진정한 사회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아랍민주화의 길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진정한 민주회복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복고라는 암초를 통해 아랍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할 지는 의문이 드는 현실이다.
윌가의 시위를 통해 우리는 세계자본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대의민주주의가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가복음 13:33-37절의 "깨어있으라(이하 중략)"고 말하고 있는 구절은 천국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오늘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젝의 너무 멋진 철학적 지평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원문에 비해 번역이 더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책은 중학생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번역해 많은 대중들에게 읽게 해주는 것이 필요한 책인데 번역이 더 어려운 느낌이라는 것이 아쉬웠다.
지젝이 지적한대로 국가라는 개념과 민족이라는 개념이 기존의 계급문제를 어렵게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의 중간에서 통치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계층인 지식인계급은 이러한 문제를 더 어렵게 보이게 만든다. 서민계층이 기업의 입장을 옹호하는 보수를 선택하는 것이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에서도 강남좌파라는 희한한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 좌파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계급과 연대를 하였기때문이다. 그들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노동자의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도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라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치겠다고 다들 공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두가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그들의 이야기에 세뇌당하고 길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계급이 없어진 것 같은 환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면 모두가 잘 살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 계급의 문제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살은 더욱 공고해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젝의 지적처럼 쾌락과 향락의 문화 속에 자신의 노예근성을 버릴 수 없을 뿐이다.
이책은 우리에게 멈춰서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정말 제대로 된 길인지를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는 책이지만 너무 어려운 번역때문에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글을 맺는다.
이책을 읽고 자신에게 그래 다시 하늘을 보자라고 주문하는 하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