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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총구다 - 남자현 평전
이상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의 심장을 겨눈 여성독립운동지사 남자현평전 <나는 조선의 총구다>를 읽고
우리에게 벌써 잊혀진 이름이 되고있는가? 남자현이란 이름은? 우리의 독립운동역사에 이런 강렬한 인물이 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이미지를 남긴 남자현의 이야기이다.
남자현은 의병대장을 하다가 일제의 총칼에 의해 돌아가신 영양의 의병대장 김영주와 결혼하여 영양에 정착하게 된다. 그녀는 선친이 들려주는 논어와 근사록을 어렸을 때부터 되세겼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점차 일제의 조국침탈이 노골화되는 암울한 조선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1895년 명성황후의 시해사건과 단발령실시로 인해 일어난 전국적인 의병운동이 경북 영양에서도 일어나게 되고 남자현은 자신의 남편으로 하여금 의병운동에 전적으로 활동할 것을 권유하고 자신도 의병을 돕는 일에 나서게 된다. 대부분의 내자가 집안을 보살폈지만 남자현은 적극적인 참여를 더 하게되며 이러한 계기가 평생을 독립을 위한 삶으로 바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헌병들의 간계에 빠져 김영주가 이끄는 의병들이 몰살하면서 이때 김영주도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후 남자현은 가세를 살리기 위해 양잠사업 등 새로운 일에 힘쓰는 한편 어린이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23년간의 주로 가세의 안정을 꾀하던 시절에도 의병활동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그녀는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고자 만주로 이동하게 된다.
만주로 간 그녀는 나중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은 이성룡과 만주독립군을 이끌던 김동삼을 만나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주로 그녀가 관심을 가진 것은 교육과 그당시 분파로 인한 독립운동의 분열에 대한 통합에 힘을 ?㎢?. 그녀가 두번의 단지(斷指)를 통한 열변을 통해 통합을 말했던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볼 때 그녀의 기개를 볼 수 있다고 하겠다.
그녀는 1926년 몰래 경성을 방문하게 된다. 이유는 문화통치로 바뀌면서 더 노골화되는 일제의 통치를 이끄는 일본 총독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서였다. 단독으로 사이토를 암살할 것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경비가 삼엄해져서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중단하게 된다. 그 이유는 송학선이란 청년이 사이토를 죽이러 테러를 먼저 시도했으나 실패한 때문이었다.
이후 민족유일당운동을 이끌던 안창호선생이 중국당국에 구속되었을 때 일본에 넘기기 직전 여론을 이용하여 석방을 이끌어내는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 61세, 그녀는 차가운 이국땅 하얼빈에서 잡히게된다. 만주의 전권대사 무등신의를 암살하기 위해 단독으로 잠입을 했다가 밀정들에게 정보가 누출되어 잡히게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하얼빈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되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단식투쟁을 벌이게 된다. 일제도 너무 몸이 쇠약해져서 투옥이 힘들다는 판단을 하게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나면서 남자현은 아들과 손자가 지켜보는 하얼빈의 여관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남자현은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수여받게된다. 여성으로는 남자현이 유일한 수상자이며 유관순보다 더 큰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자현이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는 우리의 관심이 그만큰 적었다 하겠다. 남자현을 교과서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의견이 언제부터인지 사라진 것도 아쉽다 할 수 있다.
남자현지사의 애국정신을 길이 추모하기 위해 본채 세워진 추모각.
이런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현실은 어떻게든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너무 일찍 잊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녀가 살았던 영양의 집을 복원하였으나 현재 지자체의 지원부족으로 그냥 방치하는 현실은 우리의 정신을 우리 스스로가 잊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작은 것부터 보전하려는 노력이 후손들에게 남겨진 의무라 생각한다. 남자현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아울러 시대정신으로 후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일들이 자꾸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이런 훌륭한 분들을 우리는 너무 잊고 산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