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고서도,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해 죽지도 못하고 있다. 마지막 작별을 고통 속에서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사상 경영이라는 측면이 아직 몰락하지 않은 곳에서 철학은 불꽃 튀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겨우겨우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이 평생 못다 한 말을 떠올린다. 철학은 죽음에 직면하고서야 비로소 마지막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진 것이다.
이제 철학은 고백한다. 거창한 주제는 모두 핑계였고 반(半)진리였다고. 헛되고 헛된 아름다운 고공 비행-신,우주,이론,실천,주체,객체,몸,정신,의미,무-이 모두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것은 청년.이방인,성직자,사회학자를 위한 명사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 페터 슬로터다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