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틸(Cornelius Van Til)은 베르카우어(G. C. Berkouwer)의 신학 노선을 두고 초기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후로는 심각한 우려와 비판을 표했습니다. 특히 베르카우어의 바르트(Karl Barth) 신학에 대한 태도 변화와 그의 변증학적 접근 방식에 대해 반틸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바르트 신학에 대한 베르카우어의 태도와 반틸의 평가
베르카우어는 초기 저작들에서 개혁주의 정통 입장을 견지하며 성경의 권위와 은혜의 주권을 강력히 옹호했습니다. 반틸에 따르면, 베르카우어는 젊은 시절 “인간 주체를 자율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현대신학에 맞서 성경의 직접적 계시와 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강조하며 개혁신학의 입장을 수호했습니다. 반틸은 이러한 베르카우어를 두고 한때 개혁주의 성경관과 구원론을 수호하는 이정표적인 인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베르카우어의 입장은 크게 달라졌고, 반틸은 이를 우려섞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베르카우어는 점차 바르트의 **신정통주의(Neo-orthodoxy)**에 공감하거나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반틸은 **베르카우어 신학에는 이제 “상호 파괴적인(two mutually destructive) 두 원리”**가 공존하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는 역사적 개혁신학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실존주의적 사고 방식인데, 후자가 전자를 점차 잠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반틸은 베르카우어가 한때는 비판했던 바르트와 신학적 동맹을 맺고 바르트를 **“은혜의 동지(fellow-defender of grace)”**로까지 간주하게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바르트의 수정된 초월주의적 예정론이 역사의 중요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베르카우어 본인도 인정하면서도, 바르트가 강조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동조하여 바르트를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반틸은 이러한 태도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는데, 바르트 신학이 가톨릭과 근본 교리에서도 유사점을 보이는 **“새로운 개신교”**일 뿐, 정통 개신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반틸은 **“그 누구도 바르트에게 정통적인 개신교적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까지 단언하며, 베르카우어가 바르트의 신학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보았습니다. 요컨대 반틸은 바르트를 대하는 베르카우어의 우호적 태도를 개혁주의의 타협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변증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비판
베르카우어와 반틸은 **변증학(기독교 변증법)**에 대해서도 시각 차이를 보였습니다. 베르카우어는 네덜란드 신학계의 변증법 논쟁에서 **바빙크(Herman Bavinck)**나 헵(Hepp) 편에 서서 창조적이고 현실에 적합한 변증학을 모색했으며, **쿠이퍼(A. Kuyper)**나 바르트, 반틸 등의 입장을 너무 회의적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1971년 출간된 반틸 헌정 논문집 Jerusalem and Athens에서 베르카우어는 반틸의 전제주의적 변증법이 성경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는데, 반틸도 이 비판을 수용하여 자신이 성경 주석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동료들의 연구로 그 빈틈을 메웠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학문적으로 교류한 드문 예로, 베르카우어가 반틸의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틸이 답변한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반틸은 베르카우어의 변증학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요? 반틸은 직접 저술에서 베르카우어의 변증 방법만을 논평한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그의 전반적 평가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반틸이 보기에 베르카우어는 개혁신학의 전통적 원리(예: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 권위, 타락한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 등)를 기반으로 변증하기보다는, 현대 신학과의 대화와 조정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베르카우어는 가톨릭 신학자들과의 대화에서 바르트 신학을 공통분모로 삼아 교류의 길을 찾으려 했지만, 반틸은 이것이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르트나 신정통주의는 근본적으로 인간 자율성을 전제하는 사상인데, 이를 통해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려 하면 결국 개혁주의 진리를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 반틸의 견해였습니다. 반틸은 변증학에서 성경적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베르카우어처럼 이성에 대한 지나친 양보나 타협적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요컨대, 반틸은 베르카우어의 변증 접근이 정통 신앙 수호보다는 신학적 대화에 치우쳐 있다고 보고 비판한 것입니다.
신학적 방법론과 개혁주의 정통성에 대한 우려
베르카우어의 신학 방법론 변화에 대해 반틸이 가장 크게 우려한 부분은, 개혁주의 정통 교리가 현대신학과 접목되며 변질되는 위험이었습니다. 베르카우어는 후기 저작들에서 신학의 체계화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교리의 역사적 맥락과 형식을 구분하여 해석하려고 했는데, 반틸은 이러한 **“반(反)체계적 태도”와 신학의 주관화 경향이 개혁신학의 토대를 약화시킨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베르카우어는 도르트 신조의 엄격한 인과관계적 틀을 시대적 산물로 간주하여 재해석함으로써 특정 교리를 사실상 폐기하거나 변형하려 했는데, 반틸은 이를 은연중에 인간 자율성을 신학에 끌어들이는 위험한 시도로 간주했습니다. 실제로 반틸은 베르카우어의 이런 변화가 **“개혁신앙의 근본을 사실상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그 영향으로 교회의 권위적 가르침(성경 무오성, 신조의 견고함 등)이 훼손되고 교회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반틸에 따르면, 베르카우어가 바른 교리적 토대 대신 현대 철학(실존주의)의 사조를 일부 수용함으로써 개혁주의 신앙의 일관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베르카우어 신학의 내적 긴장을 지적하면서, 베르카우어를 따르는 이들 사이에서 성경 권위 약화, 교리 상대화, 인간 자유에 대한 과도한 강조 등이 나타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요컨대 반틸은 베르카우어의 신학 방법론이 초기의 개혁주의적 확고함을 잃고, 현대 신학과 절충함으로써 정통성을 위협한다고 본 것입니다.
두 신학자의 논쟁과 교류 사례
반틸과 베르카우어가 직접적으로 공개 논쟁을 벌인 사례는 많지 않지만, 학문적 교류와 상호 평가는 여러 차례 이루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1971년 Jerusalem and Athens 논문집에서 두 사람은 간접 토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르카우어는 그 기고글에서 반틸 변증학의 약점을 지적하였고, 반틸은 이에 대한 짤막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또한 반틸은 베르카우어의 신학을 평가하는 저술들을 남겼는데, 특히 The Sovereignty of Grace: An Appraisal of G. C. Berkouwer’s View of Dordt (1969)에서는 베르카우어의 예정론과 은혜론 변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이어서 The New Synthesis Theology of the Netherlands (1975)에서도 네덜란드 신학계의 새로운 종합 신학을 논하면서 베르카우어와 그 추종자들이 개혁주의 전통에서 이탈하여 바르트식 해석을 수용하는 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저술들은 반틸이 베르카우어의 신학적 전향을 예의주시하며 공개적으로 비평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베르카우어는 자신의 저서 반세기의 신학(A Half Century of Theology, 1977 등)에서 변증학 논쟁과 현대 신학 동향을 다루면서 반틸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지만, 직접적으로 반틸에 응답하거나 논쟁을 이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개혁주의권 내에서 영향력이 컸던 만큼, 서로의 저술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학문적 상호작용을 한 것입니다.
결론 및 요약 인용
정리하면, 반틸은 베르카우어에 대해 초기에는 같은 개혁신학 진영으로서 기대를 걸었지만, 후기의 신학적 변화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며 강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반틸은 베르카우어의 바르트 신학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개혁주의의 순수성을 흐리는 것이라고 보았고, 변증학적 접근에서도 성경 중심의 전제적 입장을 벗어나 인간 이성에 양보하는 경향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베르카우어 신학에 **서로 충돌하는 두 원리(개혁주의 전통 vs. 현대 자율사상)**가 있다고 지적하며, **“첫 번째 원리가 점차 눈에 파묻혀 형식주의로 치부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베르카우어가 바르트와 유사한 원리들로만 은혜의 복음을 변호하려 한다며 그 불균형을 지적했고, 이러한 변화가 **“개혁 신앙의 근본을 배신”**하여 교회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반틸 자신의 말처럼, 베르카우어 신학에는 역사적 개혁신앙의 입장과 현대 실존주의적 사상의 입장이 공존하지만 결국 양립하기 어렵기에 긴장을 초래하며, 전자가 “점차 뒤덮이고(formalist and determinist로 낙인)” 있는 실정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반틸은 베르카우어를 향해 개혁주의 신학의 토대를 끝까지 견지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 신학과 교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반틸, The Sovereignty of Grace (1969) 및 A Christian Theory of Knowledge (1969) 등에서 베르카우어 언급 부분; Jerusalem and Athens (1971) 논문집 및 현대 학자들의 해설 등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