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칼 바르트(Karl Barth)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20세기 개신교 신학에서 계시(啓示)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여준다. 바르트는 계시를 인간이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계시로 이해하여,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반면 판넨베르크는 바르트 이후 시대에 등장하여, 계시는 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바르트의 계시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였다. 본 글에서는 먼저 바르트가 계시를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현현으로 이해한 방식과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주요 비판 논점을 정리한다. 이어서 판넨베르크가 왜 계시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그 신학적 배경과 의미를 분석한다. 이러한 논의에는 두 신학자 간의 학술적 대화와 논쟁이 담겨 있으며, 관련 주요 참고문헌도 함께 제시한다.

칼 바르트의 계시 이해: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계시

칼 바르트는 계시를 철저히 하나님의 주도적 행위로 보았다. 그는 인간의 종교적 노력이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때에만 참된 하나님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계시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주어(主語)**이며 동시에 계시되는 객체이고, 그 계시 행위 자체도 하나님이다​

. 바르트는 이를 삼위일체적 용어로 설명하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계시의 근원인 **계시자(揭示者, the Revealer)**이고, 예수 그리스도 성자는 계시의 **내용(揭示, the Revelation)**이며, 성령은 그 계시를 우리에게 실현시키는 **계시의 매개(揭示性, the Revealedness)**라고 보았다​

. 이처럼 계시는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건으로서, 하나님이 자유롭게 그리고 주권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르트의 계시관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계시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완전히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강조했다​

.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증언이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말씀 선포를 통해 하나님이 현재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보았다​

. 따라서 계시는 항상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 있는 사건이지, 인간이 객관적으로 취급하여 분석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歷史)의 한 속성이나 일부가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는데​

, 이는 하나님이 역사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실지라도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역사 속 사물들과 동일시될 수 없을 만큼 초월적(other)**이라는 뜻이다​

.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계시 사건은 일반 역사가 다루는 검증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없다고 바르트는 보았다​

. 요컨대 바르트에게 계시는 인간이 심판하거나 증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사건이며, 신학은 오로지 이 계시에 “복종”하여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인간이 다른 경로로 하나님을 알려는 시도는 하나님의 자유와 은혜를 거부하는 불순종의 표현이라고까지 경고할 정도로, 바르트는 계시의 일방성초월성을 철저히 옹호했다​

.

판넨베르크의 비판: 계시의 역사성과 합리성

판넨베르크는 바르트 이후 세대의 신학자로서, 바르트의 계시론적 독단이 현대인에게 신앙의 진리성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바르트식의 “말씀 신학”(Theology of the Word)이 교회를 지성사회로부터 고립된 울타리(ghetto) 안에 가두며, 무신론의 도전에 답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 현대인 다수에게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 소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저 믿으라는 식의 신학은 설득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 판넨베르크는 따라서 신학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해야 하며​

, 최소한 신앙이 순전히 주관적 체험이나 결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조차 자기 믿음이 허상에 불과한 것 아닌지 의심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

판넨베르크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계몽주의의 이성적 비판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이성적 근거에 의존하지 않는 긍정 신학(positive theology of revelation)은 결국 “주관적인 의지의 행위나 불합리한 믿음의 도박”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바르트처럼 계시를 오직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하여 인간 이성과 경험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주관주의나 **맹신(fideism)**뿐이라는 것이다​

.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의 계시론이 객관성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아무 외적 정당화도 없는 신앙 모험의 비이성적 주관성”에 기초한다고 비판했다​

. 쉽게 말해, 바르트의 하나님 말씀 신학은 겉으로는 거룩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믿는 사람 마음속 결단 외에는 근거가 없지 않느냐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 판넨베르크는 이런 방식의 신앙은 이성 간 대화(intersubjective dialogue)를 가로막고 기독교 신앙을 사회적 담론의 장 밖으로 밀어내며, 신학 자체를 **고립된 방언(glossolalia)**처럼 만들어버린다고 우려했다​

. 실제로 그는 바르트의 “위로부터” 계시 노선이 신학을 “절망적이며 자기유폐적인 고립(higher glossolalia의 고독)”으로 이끈다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요컨대 판넨베르크에게 바르트의 계시론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보였고, 이는 신앙을 독단적 영역에 가두어 비신앙인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의 계시론: 역사적 검증 가능성과 신학적 의미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와 달리 계시의 역사성(historicity)을 신학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가 구체적 역사 사건들을 통하여 일어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 사건들은 역사적 연구와 검증에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61년 출간된 《계시와 역사》(Offenbarung als Geschichte) 논문집에서 판넨베르크는 “참된 하나님의 계시는 일시적인 신비체험이나 단순한 언어적 선언이 아니라, 역사적 보도(reportage)와 분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 이는 계시를 오직 성경의 문자나 초자연적 음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역사 일반이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폭넓은 관점이었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제한하지 않고 “모든 역사가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담지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며, 전 우주 역사의 통일성 속에서 계시를 보려고 했다​

.

특히 판넨베르크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그는 예수의 부활이야말로 하나님의 최종계시의 전조(前兆)이자 세계 역사의 완성에 대한 미리 보기(preview)라고 강조했다​

. 더 나아가 부활 사건은 일반 역사 연구의 통상적인 기준으로도 검증 가능하다고 주장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이는 20세기 신학자들 가운데 흔치 않은 입장으로, 판넨베르크는 신약 성서의 부활 증언이 역사적 사실로서 충분한 증거를 지닌다고 보았다. 만일 예수 부활이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라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계시임이 공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다. 판넨베르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나의 역사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상식적 전제를 신학에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그는 현대 신학자들이 계시를 피하기 위해 역사(Historie)와 이야기(Geschichte)를 분리하거나, 초역사적 “구원의 역사”(Heilsgeschichte) 개념으로 역사 비평의 눈을 피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 역사의 통일성객관성을 철저히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의 신학적 배경에는 19세기 이상주의 철학, 특히 헤겔의 역사철학 영향이 일부 있다는 평가도 있다​

. 판넨베르크는 역사를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로 본 헤겔의 틀에서 계시의 보편사적 전개를 사유하려 했고, 궁극적으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 존재의 진리가 입증된다고 전망했다. 그의 계시 이해는 또한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는데, 그는 최종적인 계시의 완성은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지며, 현재의 계시는 그 완성을 향해 미리 앞당겨진(proleptic)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은 장차 모든 인간의 부활과 하나님의 최종 승리를 앞서 보여주는 사건이며, 최종 종말 때 그 의미가 완전히 밝혀져 모든 이에게 자명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점 덕분에 판넨베르크는 현재 역사 연구로 신학을 개방하면서도, 동시에 신앙의 미래 지향적 확실성을 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역사적 가설의 형태로 신앙의 진리를 탐구하지만, 종말에 가서 그 진리성이 최종 확증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계시를 현재 완결된 교리로 보는 바르트와 대조적으로, 계시를 진행 중인 역사 속의 개방된 진리로 보는 판넨베르크의 신학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이 지닌 신학적 의미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그는 계시와 역사를 밀접히 결합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계시를 역사적 사실들과 연결시키면, 신앙의 주장들은 공개된 역사 연구의 장에서 검토와 논박의 대상이 된다​

. 판넨베르크는 바로 이러한 비판 가능성이 신앙을 허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한 토대 위에 세우는 일이라고 보았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한 것처럼, 기독교 신앙은 사실적 진위 여부에 중대한 의존을 한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부활을 비롯한 계시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객관적 사실이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입증하거나 최소한 역사적으로 설득력 있게 변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이렇게 함으로써 신앙은 사적 경험이나 신비적 직관이 아니라 공적 진리 주장으로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둘째, 판넨베르크의 입장은 신학과 타 학문(예컨대 역사학, 철학) 간의 대화를 촉진한다. 바르트의 계시관 아래에서는 신학이 자기 고유의 언어 게임에 머물 위험이 있지만, 판넨베르크는 신학이 보편 학문성을 가져야 함을 역설했다​

. 이는 현대 세속화된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지성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고, 무신론자에게도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셋째, 판넨베르크는 계시의 범위를 교회 울타리 밖으로 넓힘으로써, 하나님이 세계 역사 전체의 하나님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나 신약 교회의 경험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모색함으로써, 신학을 보다 포괄적인 역사 해석학으로 승화시키려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신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동시에 헤겔식의 거대한 역사 철학에 의존함으로 인한 위험도 내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물론 판넨베르크의 이러한 주장은 신학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바르트를 비롯한 신학자들은 계시를 역사적 검증에 종속시키는 접근이 자칫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바르트는 1964년 판넨베르크의 주요 저서 *《예수: 신과 인간》(Jesus: God and Man)*을 읽은 후 보낸 편지에서, 판넨베르크의 방식이 자신의 신학과 “매우 다른, 어쩌면 결별된 입장”이라고 평했다​

. 바르트는 판넨베르크가 역사적 예수 연구와 부활의 확률적 해석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역사적 개연성이라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 그는 부활에 대한 역사비평 결과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데, 그렇게 가변적인 토대 위에 하나님 계시의 확실성을 놓는 것은 위험하며 신학의 후퇴라고 보았다​

. 요컨대 바르트는 판넨베르크의 노선을 **“아래로부터의 신학”**으로 규정하며, 이는 위로부터의 계시에 집중한 초대교회 신앙보다 퇴행적이라고 혹평한 것이다​

. 이러한 비판에 대해 판넨베르크는, 역사적 탐구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계시의 공개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그는 오히려 바르트 식으로 계시를 폐쇄적 신앙공동체 내부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기격리된 신학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반박하였다​

. 이 논쟁은 계시를 둘러싼 신학의 두 길: 곧 신앙의 내적 확실성역사적 합리성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현대 신학이 계속 숙고해야 할 주제임을 드러낸다.

결론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와 칼 바르트의 계시론 논쟁은 20세기 신학사에서 계시의 본질과 인식 가능성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을 제공한다. 바르트는 계시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로 이해하여, 계시의 초월성과 독자성을 지켰지만 현대 이성이해와는 단절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판넨베르크는 계시를 역사적 현실과 접목시켜 신앙의 객관적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했고, 그로써 신학을 공적 담론의 영역에 놓으려는 야심찬 시도를 펼쳤다. 그의 주장대로 계시가 역사 속에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은 신학을 사회와 소통하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 한편, 계시의 신비와 초월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결국 이 논쟁은 계시에 대한 이중적 요구—곧 신적 주권성공적 검증성—사이에서 신학이 어떠한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에도 신앙의 진리를 증언함에 있어, 바르트가 강조한 계시의 은혜성과 우월성, 그리고 판넨베르크가 강조한 계시의 역사성과 이성적 소통 가능성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두 신학자의 대화는 우리에게 계시를 하나님의 자기현현이자 역사 속 사건으로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신학적 과제를 상기시키며, 신앙과 이성의 생산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참고 문헌:

  •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1 (Edinburgh: T&T Clark, 1936-1962).
  • Wolfhart Pannenberg 외, Offenbarung als Geschicht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1); 영어판 Revelation as History (New York: Macmillan, 1968).
  • Wolfhart Pannenberg, Jesus – God and Man (London: SCM Press, 1968).
  • Hilbert VanderPlaat, “Pannenberg’s Critique of Barth’s Theology of the Word,” MA Thesis, McMaster University (1983)​.
  • Kevin Diller, Theology’s Epistemological Dilemma: How Karl Barth and Alvin Plantinga Provide a Unified Response (Downers Grove: IVP Academic, 2014), pp. 72–73​derevth.blogspot.comderevth.blogspot.com.
  • Richard Lischer, “An Old/New Theology of History,” Christian Century 91:8 (1974), pp. 288–290​.
  • Karl Barth, “Letter to Wolfhart Pannenberg (1964),” in Karl Barth: Letters 1961-1968 (Grand Rapids: Eerdmans, 1981), pp. 15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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