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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보면 '이 책은 꼭 정복(?)하고 싶다!'는 일종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책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두께가 상당하고 내용이 어려워서 왠지 이 책을 다 읽으면 굉장히 똑똑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장에 꽂아놓으면 괜시리 마음도 뿌듯하고 남들에게 내가 이런 책도 읽는 사람이라고 은근히 뻐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욕구도 한몫 한다. 어떤 분야든 한 가지라도 더 알고 싶은 욕망이 평소에는 잠자고 있다가 내용이 꽤 어려워 보이는 책이 눈에 띄는 순간 깨어나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한 오프라인 서점에 갔다가 그런 책을 봤다. 바로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한 4부작 시리즈 <중세>가 그것이다. 웬 백과사전처럼 생긴 책이 신간코너에 있기에 들춰봤는데 일단 엄청난 두께에 혀를 내둘렀고, 책 집필에 참여했다는 세계 석학 리스트에 경이를 느꼈다. 80,000원이라는 가격은 오히려 놀랍지 않았다. 내가 봐도 가격을 그 정도는 매겨야겠던데 뭐.

 

 

 

 

 

 

집필자 못지않게 역자의 이름도 많다. 1000년에 달하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만큼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권이 나오기 전에 일독하고 싶은데 내 독서력으로 가능할지? ㅋㅋㅋ 독서 관련 저서들을 보면 책을 반드시 완독할 필요는 없다고들 하는데 이런 류의 책은 그 동안 머리가 깨지도록 읽어온 게 아까워서라도 마지막 한 글자까지 다 읽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세계적인 비교종교학 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의 책도 만만치 않게 도전의식을 자극한다. 수년 전에 그의 저서 <신을 위한 변론>을 읽은 적이 있는데 책에 메모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난생 처음으로 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이슬람>은 적당한 두께의 소프트커버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았는데 어쩐 이유인지 지루해서 중간에 덮었고, 지금은 종교의 역사를 다룬 <축의 시대>라는 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저자는 수녀원에서 7년간 생활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뛰쳐나온 뒤 세계의 여러 종교를 공부했고 평생에 걸쳐 연구를 해왔다고 한다. 그의 책을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읽은 책의 내용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기억한다. 신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우주의 축이라는 것. 신의 실재나 서로 다른 종교의 상대적인 우월성에 대한 논쟁 자체가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가 저자의 의도를 곡해했는지도 모르지만 작년 여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종교가 없으면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살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생각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도 읽고 나면 굉장히 똑똑해질 것 같은 책 중 하나다. 역자 중 한 명인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이 우리 집에 있는데 이런 분이 번역에 참여했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다 다르지만 번역서의 경우 역자의 명성과 업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단 한 권이지만 최재천 교수의 책을 인상깊게 읽었다는 이유로 한번 들춰본 적도 없는 <통섭>에 신뢰가 가는 것을 보면 역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각 분야별로 전문화된 현대사회의 세태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는데 지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분야에 정통한 것이 경쟁력이 되고 장점이 되는 세상이지만, 그만큼 내가 아는 분야와 관계가 없는 쪽에는 전혀 무지해서 세상을 넓게 보는 시각을 갖기 어렵다는 부작용이 분명 있으니까. 내가 끊임없이 반성하고 돌아보며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 '편협함'이다. 지식의 편중, 사고방식의 편협함, 머릿속 지식을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좁은 마음. 별 수 있나. 계속 읽고 생각하고 배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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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교실 뒤쪽에 있는 책꽂이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어린이용 세계명작전집 축약본이 꽂혀 있었다. 그 때는 학기초마다 반 아이들에게 책을 한 권씩 걷어서 미니 도서관을 만들어놓곤 했는데, 초등학교 4~5학년 때 교실에 <제인 에어>나 <노트르담의 꼽추>같은 고전 축약본이 많이 있었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접한 때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하는 생각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열 살을 갓 넘긴 어린이가 읽기에는 그다지 재미가 없는 작품이다. 아무리 아이가 읽기 쉽게 편집하고 내용을 축약해도 그 당시 미국의 사회상이나 남북전쟁, 노예문제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든 작품이므로. 축약본이다 보니 스칼렛 오하라나 레트 버틀러 같은 개성적인 인물들의 성격도 평면적이 돼 버려서 매력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물론 그 때는 이런 의식(?)이 없었으니까 몇 장 읽어보고는 스토리가 이해도 안 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덮어 버렸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여학생이 가져온 책이었는데 그 친구가 스칼렛이 나쁜 년이라고 욕했던 것만 기억난다.

 

그 후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고1 담임선생님이 국어선생님이었는데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언급하시면서 졸업 전에 꼭 한번 읽어보라고 하셔서 학교 도서관에 있는 한 권짜리 책을 빌렸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원작의 방대한 분량을 감안할 때 청소년용 세계명작전집 시리즈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 책도 5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다. 그걸 밤을 새가며 이틀만에 다 읽고 토끼눈이 돼서 학교에 갔던 추억이 있다.

 

이후 20대 초반이었던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상, 중, 하 3권짜리 번역본을 발견했다. 출판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번역이 괜찮았고(비슷한 시기에 완독했던 <제인 에어>가 대학생이 보기에도 번역이 너무 형편없었던 터라 번역에 매우 민감할 때였다......), 내용을 다 알고 읽는데도 무척 재미있어서 한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었다. 소설에 있어서 캐릭터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가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착한 여자'와 '멋진 남자'가 아니라서 좋았으니까. 그렇다고 스칼렛이 마냥 악녀인 것도 아니고, 레트가 답 없는 나쁜 남자인 것도 아니다. 그 둘은 분명 도덕심이 결여된 부분이 있고 지독하게 고집이 세며 이기적이지만,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도의 결점이지 그들 성격의 전부가 아니다.

 

 

 

명작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고 한다. 10대에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20대에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분명 같은 작품이지만 소감은 달랐다. 30대인 지금은 또 다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게 될 것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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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름에는 어찌하다 보니 추리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7월 마지막주가 휴가였기에 추리소설을 한 권 사서 완독할까 했었는데, 배우에게 이끌려서 구입한 <두 도시 이야기>가 예상 이상으로 재미있는 바람에 '추리'는 까맣게 잊었더랬다. 휴가지에서도 가족들이 모두 낮잠을 잘 때 난 이 책을 읽었으니까. 평소 나는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인데 <두 도시 이야기> 리뷰를 쓸 때 옆에 책이 없었는데도 거의 모든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역시 책은 기억에 남으려면 재미있고 봐야 하나보다. 특히 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 한글판+영문판 구성을 산 것은 순전히 실수였다. 한글판 2권이 묶여 있는 구성인 줄 알았던 것이다. 2권에 만 원도 안 되다니, 엄청 싸다! 싶어서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주문버튼을 눌렀나보다. 영어고자인 내게 영문판은 별 소용이 없거늘. 그래도 책이 예뻐서 소장가치는 있다.

 

 

 <두 도시 이야기>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맛보게 되어서 머릿속 한켠으로 밀려났던 추리소설에 대한 갈증이 되살아났다. 추리소설을 떠올리자 가장 먼저 생각난 작가는 엘러리 퀸.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아가사 크리스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국 작가를 은근히 얕보는 심리도 있었다. 그런 심리가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로 와장창 깨지고 연이어 <Y의 비극>으로 굉장히 충격을 받으면서 나는 이 머리 좋은 두 사촌형제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Y의 비극>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뚤어진 집>을 접하기 전에 읽은 작품이어서 범인을 1도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에(요새 이 "1도 ~하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유는 웃겨서ㅋ) 사건의 실체와 결말이 더욱 충격이었다.

 

 

 

 

* 정확히 언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 다 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해문출판사 문고판 시리즈였는데 현재 두 권 모두 소장하고 있다. 해문출판사가 추리문학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추리소설을 출간하는 것은 고맙고 좋은 일이지만 번역을 좀 새로 해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표지가 바뀌고 가격이 올라도 어색하고 이상한 리말 문장은 그대로니 원.

 

 

 

 이후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검은숲에서 엘러리 퀸 컬렉션을 출간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책의 만듦새도 마음에 들고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까지 모두 출간할 예정이라는 출판사의 의지를 응원하고자 국내 최초 출간작 중 하나인 <샴 쌍둥이 미스터리>를 구입해 읽었다.

 

 

 * 초판 한정 별색띠를 삽입한다고 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구매욕에 불을 지른 검은숲의 엘러리 퀸 시리즈. 출간 초기에 산 것은 분명한데 이 별색띠를 두른 책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긴 으면 뭐 어때. 몇 년이 걸리더라도 다 사서 읽으면 되지. <샴 쌍둥이 미스터리>는 엘러리 퀸의 작품치고는 별로라는 평도 있지만 나는 꽤 재미있었다. 제목처럼 소설에 샴 쌍둥이 형제가 등장하는피해자가 이들을 연구하던 학박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난 사건보다도 탐정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처한 '산불'이라는 상황이 더 흥미진진했다. 산불이 나면 그 재와 연기가 모두 꼭대기로 집중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어찌어찌 사건은 해결했고 범인은 스스로 처리(?)되었으나 산불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길이 없서 모두 쓰러져 죽기 일보 직전, 괴력을 발휘해 집 밖으로 탈출한 감의 마지막 한 마디가 인상적이다. "비가 내리고 있어!"

 

 

 고전 추리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엘러리 퀸의 작품에도 탐정이 등장한다. 그는 저자의 필명과 같은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으로 아버지인 퀸 경감과 함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혼자 해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파트너가 있는 탐정들은 거의 다 그렇다.) 고전 추리소설의 이러한 클리셰 때문에 미스터리 독자들 중에는 작품의 중반부에 이르면 누가 범인인지 짐작이 가고, 또 그 짐작이 맞아서 김이 빠졌다는 이가 꽤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범인을 맞힌 적이 없어서 김이 빠진 적도 없다. 왜냐하면 첫째, 나는 고전 추리소설의 뻔한 구성을 좋아하고, 둘째, 추리소설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마지막의 반전이므로 이것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 굳이 범인을 맞히려고 애쓰지 않는다. 되도록 모르는 상태에서 범인의 정체를 알아야 그만큼 강하게 뒤통수를 맞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정말 강력한 한 방을 날려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와 <Y의 비극>의 작가 엘러리 퀸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국명 시리즈'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국명 시리즈'보다 더 유명한 '비극 시리즈'는 전권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다 읽지는 못했다.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은 손에 땀을 쥐면서 읽고 감탄했는데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반쯤 읽다 말았던 적이 두 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들 중에도 취향이 안 맞거나 지루해서 읽다 만 작품이 몇 권 있고, 까치에서 나온 아르센 뤼팽 시리즈도 2권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을 읽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덮어 버렸었다. (시리즈를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그냥 전부터 궁금했던 <813의 비밀>부터 읽을까 한다.) 경험상 중간에 덮은 책을 다시 펴기는 쉽지 않지만 믿고 보는 엘러리 퀸이니까, 처음엔 별로였던 작품이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었던 적도 분명 있으니까 언젠가는 비극 시리즈도 완독하겠지.

 

 국명 시리즈보다 비극 시리즈를 먼저 산 이유는 비극 시리즈가 더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탐정의 영향이 더 크다. 드루리 레인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편인데 엘러리 퀸은 탐정으로서의 능력은 높이 사지만 인물이 별로다. 잘난 척하는 건 그렇다 쳐도(사실 이것도 별론데) 사건을 마치 재미있는 퍼즐 풀기처럼 여기는 태도는 정말 아니다. 똑같이 잘난 척을 해도 에르큘 포와로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고, 가끔 헤이스팅스를 무시하는 게 얄밉기는 해도 그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꼭 감사를 표시하며 추켜세워주기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엘러리 퀸은 그냥 나 잘났소 하며 사건 현장을 들쑤시고 다니기 바쁘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셜록 홈즈는 연민이나 동정 따위는 차가운 이성을 방해하고 이성이 방해를 받으면 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코난 도일 원작의 셜록은 드라마 속의 셜록보다는 인간적이다.), 작가 엘러리 퀸도 같은 생각으로 탐정의 성격을 이리 설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빈말이라도 겸손한 척한다던가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는 장면이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탐정 엘러리 퀸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포와로는 어울리지 않게 겸손을 떨다가 상대가 자기를 추켜세워주면 어깨를 으쓱하며 콧수염을 쓰다듬곤 해서 참 귀여운데 말이다.

 

 하지만 탐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엘러리 퀸 시리즈 탐독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누가 뭐래도 퀸의 작품은 재미있고, 논리정연한 추리에서 얻는 만족감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를 읽어보니 그 머리 좋은 탐정 퀸도 보기좋게 범인에게 속아서 높은 코가 납작해진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 일을 계기로 조금은 덜 거만해지고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새로 살 엘러리 퀸의 작품은 이 셋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는 퀸의 처녀작이고,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와 <미국 총 미스터리>는 국명 시리즈 중에서 사건의 내용이 가장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라 골랐다. 국명 시리즈 중 이미 <샴 쌍둥이 미스터리>를 읽었기 때문에 출간된 연도 순서로 읽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나 <미국 총 미스터리> 중 택일하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두 권을 다 지르던지, 다른 책을 다음으로 미루고 세 권 다 살 수도 있다. 지금은 2만 명의 관객이 들어찬 로데오 경기장에서 선수가 살해당한 <미국 총 미스터리>가 좀 더 흥미롭긴 한데...... 뭐가 더 재미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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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오랜 꿈 중 하나는 NGO 단체를 통해 정기후원을 하는 것이었다. 2010년 9월 7일에 쓴 <그건, 사랑이었네>의 리뷰에도 "지금은 사정이 사정인지라 정기후원은 못하고 여럿이서 힘을 모으는 곳에 십시일반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꾸준히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 그래서 한비야 같은 행동하는 양심가가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써놓았다. 그땐 하루 6시간짜리 편의점 알바를 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허리가 휠 때여서 정기후원은 꿈도 못 꿨기 때문이다. 다시 취직하면, 그래서 매달 일정한 수입이 생기면 꼭 정기후원을 해야지, 라고 속으로 몇 번을 다짐했는지.

 

 그러다가 2011년 8월에 재취업에 성공했고, 2012년 10월부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해외아동 1명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해외아동 2명, 국내아동 1명, 그 외에 4가지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사랑의 빵 저금통에도 틈틈이 동전을 모아서 작년 한 해에만 2번 입금했다. 비록 금액은 얼마 되지 않지만 동전을 모으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과 회사에 저금통을 1개씩 놓아두고 동전이 생길 때마다 넣고 있다.

 

 정기후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나서였다. 그 전까지는 오지여행가인 줄로만 알았던 한비야가 월드비전이라는 생소한 NGO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현재는 UN 식량계획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월드비전 소식지를 보면 여전히 그 단체에서도 활동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 TV에서나 보던 아프리카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프리카 외에도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이것이 단순히 기근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자연재해라면 선진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문제는 '식량의 재분배'인데, 이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보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 역시 한비야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나는 의지가 참 약하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어서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목표했던 독서량을 채우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런 내가 막연하게 '언젠가는 해야지'라고만 생각해왔던 정기후원을 1년 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랍다. 내가 뭔갈 실천하기도 하는구나, 다른 건 못해도 이것 하나는 이뤘구나. 금연이나 금주, 다이어트, 독서도 그렇지만 정기적으로 누군가를 후원하는 것도 보통 결심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돈이 들고, 독서만큼이나 꾸준히 해야 하며, 돕는다고 해서 그 결실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한다'는 생각에 정기후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국제 NGO들의 후원사업 종류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후원이란 단순히 식량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진이나 홍수처럼 극심한 자연재해를 입어서 당장 먹을 것과 물이 없는 지역에는 수일 내지 수개월 동안 식량을 나눠준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구호활동이고, 어느 정도 식량난이 해결된 후에는 피해 지역의 복구와 주민들의 위생보건, 심리치료 등에 중점을 둔다. 이것이 한비야가 월드비전에서 맡아 했던 '긴급구호활동'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정기후원은 긴급구호와는 또 다르다. 우선 후원금이 단순한 식량분배가 아닌 후원아동의 교육과 집안의 경제 활동을 돕는 데 쓰인다. 그래야 후원아동이 성인이 돼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훈련시킨다는 뜻이다. 지금보다 세상이 더 어려웠던 시절엔 식량을 퍼다주기만 했는지 몰라도, 이젠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NGO 단체들이 잘 안다. 일례로 내가 후원했던 한 아동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어서 며칠 전에 후원이 종료되었다. 그 뿌듯함이란 목표했던 책 한 권을 뗀 기쁨, 또 계획했던 다이어트에 성공한 기쁨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비록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내가 살면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을 만난 것은 행운 중에서도 엄청 큰 행운이다. 그 책 덕분에 정기후원을 꿈꾸게 되었고, 또 그 꿈을 이뤘으니까. 올해에도 이루고 싶은 큰 꿈이 2가지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꼭 이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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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가 "메리 웨스트매컷"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로맨스소설을 여러 권 발표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작품들을 읽어볼 기회가 없어서 아쉽던 차에 아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포레"라는 출판사에서 크리스티 여사의 일반소설(?)들을 모아서 시리즈로 출간한다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스페셜 콜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추리소설들도 섞어서 출간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사가 메리 웨스트매컷으로서 발표한 작품들만 추려서 출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나는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 이래서 시리즈가 좋다니까.

 

 이 시리즈의 시작점을 찍은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에 대한 출판사 제공 소개와 100자평, 리뷰를 모두 읽어보았다. (지난 1월에 출간된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남편과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여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막에 고립되면서 겪는 내적 갈등이 주요 줄거리인 것 같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크리스티 여사의 그 많은 추리소설 중에서도 <누명>이나 <잠자는 살인> 같은 심리 서스펜스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이지 싶다. 크리스티 여사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성의 자극인데(그래서 "연애소설이나 쓰라"는 말도 들은 모양이지만), 그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한 명작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밑줄 긋기에 소개된 몇 구절만 읽어봐도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2월말, 혹은 3월초에 <로마제국 쇠망사> 2권을 사면서 아르센 뤼팽 전집 3권인 <기암성>을 함께 구매하려고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부터 사서 읽고 뤼팽 시리즈는 그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어제 도착한 <뤼팽 대 홈즈>도 꽤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어쩌면 내 올해 독서 목표도 약간 수정될지 모르겠다. <정글만리> 대신 <아르센 뤼팽 전집> 읽기로. ㅎㅎ 가능하면 다 읽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다독을 해봐야겠다. 바라건대 2014년은 잘 여문 이삭처럼 알찬 독서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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