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꿈 중 하나는 NGO 단체를 통해 정기후원을 하는 것이었다. 2010년 9월 7일에 쓴 <그건, 사랑이었네>의 리뷰에도 "지금은 사정이 사정인지라 정기후원은 못하고 여럿이서 힘을 모으는 곳에 십시일반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꾸준히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 그래서 한비야 같은 행동하는 양심가가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써놓았다. 그땐 하루 6시간짜리 편의점 알바를 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허리가 휠 때여서 정기후원은 꿈도 못 꿨기 때문이다. 다시 취직하면, 그래서 매달 일정한 수입이 생기면 꼭 정기후원을 해야지, 라고 속으로 몇 번을 다짐했는지.
그러다가 2011년 8월에 재취업에 성공했고, 2012년 10월부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해외아동 1명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해외아동 2명, 국내아동 1명, 그 외에 4가지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사랑의 빵 저금통에도 틈틈이 동전을 모아서 작년 한 해에만 2번 입금했다. 비록 금액은 얼마 되지 않지만 동전을 모으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과 회사에 저금통을 1개씩 놓아두고 동전이 생길 때마다 넣고 있다.
정기후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나서였다. 그 전까지는 오지여행가인 줄로만 알았던 한비야가 월드비전이라는 생소한 NGO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현재는 UN 식량계획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월드비전 소식지를 보면 여전히 그 단체에서도 활동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 TV에서나 보던 아프리카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프리카 외에도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이것이 단순히 기근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자연재해라면 선진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문제는 '식량의 재분배'인데, 이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보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 역시 한비야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나는 의지가 참 약하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어서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목표했던 독서량을 채우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런 내가 막연하게 '언젠가는 해야지'라고만 생각해왔던 정기후원을 1년 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랍다. 내가 뭔갈 실천하기도 하는구나, 다른 건 못해도 이것 하나는 이뤘구나. 금연이나 금주, 다이어트, 독서도 그렇지만 정기적으로 누군가를 후원하는 것도 보통 결심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돈이 들고, 독서만큼이나 꾸준히 해야 하며, 돕는다고 해서 그 결실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한다'는 생각에 정기후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국제 NGO들의 후원사업 종류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후원이란 단순히 식량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진이나 홍수처럼 극심한 자연재해를 입어서 당장 먹을 것과 물이 없는 지역에는 수일 내지 수개월 동안 식량을 나눠준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구호활동이고, 어느 정도 식량난이 해결된 후에는 피해 지역의 복구와 주민들의 위생보건, 심리치료 등에 중점을 둔다. 이것이 한비야가 월드비전에서 맡아 했던 '긴급구호활동'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정기후원은 긴급구호와는 또 다르다. 우선 후원금이 단순한 식량분배가 아닌 후원아동의 교육과 집안의 경제 활동을 돕는 데 쓰인다. 그래야 후원아동이 성인이 돼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훈련시킨다는 뜻이다. 지금보다 세상이 더 어려웠던 시절엔 식량을 퍼다주기만 했는지 몰라도, 이젠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NGO 단체들이 잘 안다. 일례로 내가 후원했던 한 아동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어서 며칠 전에 후원이 종료되었다. 그 뿌듯함이란 목표했던 책 한 권을 뗀 기쁨, 또 계획했던 다이어트에 성공한 기쁨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비록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내가 살면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을 만난 것은 행운 중에서도 엄청 큰 행운이다. 그 책 덕분에 정기후원을 꿈꾸게 되었고, 또 그 꿈을 이뤘으니까. 올해에도 이루고 싶은 큰 꿈이 2가지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꼭 이루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