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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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학자 미즈바야시 아키라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개 멜로디를 추억하면서 쓴 책이다. 생후 두 달부터 12년을 함께 한 반려견에 대한 살뜰한 애정이, 마음을 두드리는 선율이 행간마다 흐르고 있다.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미즈바야시의 음악적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개에게 붙여준 이름만 보아도 그의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십대 후반부터 심취한 프랑스어 때문에 모국어인 일본어에 소홀해지면서 자연히 무리에서 소외된 그의 삶에 큰 위안을 준 것이 음악이었다고 한다. 미즈바야시는 이 책에서 모차르트의 아리아와 말러의 교향곡, <장미의 기사> 같은 오페라를 곁들인 음악적인 사유와 감성을 보여준다. 음악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문학과 철학, 사회학, 그림, 영화 등 전방위적인 관점에서 개와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고 있다.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유, 개인적 추억이 어우러진 특별한 회고록이라고 하면 될까.

 

    율리시즈와 아르고스의 은밀한 재회의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점은 인간의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던 늙고 초라한 거지의 모습을 한 율리시즈의 겉모습이 아르고스의 태도와 애정에는 전혀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늙은 개가 율리시즈에게서 보았던 것은 그가 왕이건 거지였건 간에 역사적으로 형성되거나 인위적으로 구성된 겉모습을 거둬낸 후에 마지막으로 남는 한 개인의 존재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완전한 일본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경계인>이라는 자기 인식 속에 살던 미즈바야시는 멜로디와 함께하면서 야생과 문명의 경계를 떠도는 개의 존재에 깊이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개의 애매한 사회적 존재감에 대한 의식은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미즈바야시는 멜로디와의 특별한 교감의 순간들을 회고하면서 동물을 영혼이 없는 기계라고 했던 데카르트의 입장에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개는 기다린다. 멜로디, 그는 기다리는 존재, 오직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의 일생은 기다림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기다리나? 그가 애착을 느끼는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본문 중에서)

 

    채플린의 영화 <개의 삶>, 하치 이야기, 율리시스의 늙은 개 아르고스 같은 다양한 본보기와 멜로디의 추억을 통해 미즈바야시가 개의 미덕으로 꼽는 것은 <비인간적 충실성>이다. 자기 자신보다 주인을 사랑하는 존재. 모든 사회적인 치장을 걷어낸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존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 할 줄 모르는 존재. 모든 순간을 기다림으로 채우는 존재. <멜로디>는 개의 충실성과는 정반대되는 사회성을 우월함의 증거로 뽐내는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멜로디는 가능한 한 자주 내 곁에 있으려 했다. 자주 내 팔이나 다리에 매달려, 우리 사이에 1밀리미터의 간격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에게 힘주어 기댔다. 멜로디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와 뒤섞이고 녀석의 따스한 배가 항상 차가운 내 발을 따스하게 덥혔다. 녀석의 깊은 숨이 내 귓가에 울렸고 따스한 숨결이 내 폐를 파고들었다. (본문 중에서)

   

    책을 펼치기까지 오래 머뭇거렸다. 반려견과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도 잘 못 보는 나로서는 <12년을 함께 한 개><떠나 보낸> 사람의 추억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심정이지 싶다. 어쨌든 나는 해냈다. 마지막 한 자까지 다 읽어버렸다. 역시나 몇 번의 울음과 심호흡을 거쳐서 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작은 생명체와의 첫 만남부터 첫 산책, 임신과 출산,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순간들의 기록과 사유들은 지금 내 자리를 돌아보게 했다. 나를 둘러싼 인간적 삶과 그 안팎의 경계에서 변함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충실한 친구의 우정. 우리에게 주어진 짧지만 기적적인 순간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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