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깨닫는다 - 인간은 모르거나 착각했던 동물의 마음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
버지니아 모렐 지음, 곽성혜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과 동물이 모두 땅에서 살던 태초에는 사람이 원하면 동물이 될 수 있었고 동물이 원하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모두 때로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동물이었고,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말이 요술 같던 시대였다.

 

                                           -    나룽그라크, 네트실리크 에스키모인 Nalunglaq, Netsilik Eskimo

 

    

 

     어린 조카가 내가 기르는 개의 눈을 찌른 적이 있다. 신기한 듯 개의 눈을 응시하더니, 스위치를 누르는 듯한 무심함으로 검지 손가락을 쑥 찔러넣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개도 아픔을 느낀다고 말해주었다. 피도 나요? 아이가 물었다. 너랑 똑같아. 다치면 피가 나지. 진짜 빨간 피.

 

     어린 아이의 호기심은 대부분 잔인한 놀이로 충족된다. 개구리를 좁은 유리병에 가두고 개미들의 긴 행렬을 단숨에 뭉개버리고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 날리면서 놀던 유년 시절을 떠올려 보라. 그건 그냥 놀이였다. 뛰고 기고 나는 작은 동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우리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의 가벼운 장난이 가여운 저 생명체들에게는 크나큰 재앙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거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이 물고기도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불이익을 겪는다. 물고기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뿐더러 어떻게 대해주는 게, 어떻게 사육하는 게, 야생에서 어떻게 관리해주는 게 최선인지 자기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 동물들에게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없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지 않는 한. 그런데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우리가 들을까? (본문 중에서)

 

     가까운 과거에는 동물을 살아 있는 기계 또는 농작물 정도로 취급하는 일이 아주 흔했다. 동물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통점이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했다. 마음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오만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이 오만의 장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어서 정신적인 경험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도 비웃음을 사고 묵살당했다. 동물을 의인화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도 상황이 썩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숲을 갈아엎고 강을 오염시키면서 인간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약탈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가혹한 훈련에 시달리거나 좁은 우리 안을 뱅뱅 맴돌면서 인간의 구경거리가 된다. 간혹 탈출을 감행하다 총살당하기도 한다. 버려진 개들은 거리를 헤매다 붙들려 대부분 안락사당한다.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의 사육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이들보다 작은 쥐나 새, 물고기는 동물의 정의에서 제외되기도 한다니 말 다 했지.

 

     어떤 쥐들은 온순하고 쾌활한 데 반해 어떤 쥐들은 침울하고 비관적이다. 고통을 받으면 얼굴을 찡그리고, 발바닥에 더 이상 전기 충격이 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본문 중에서)

 

      그럼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동물의 마음을 연구해 온 과학자들도 있다. 과학 전문 기자로 일하는 버지니아 모렐은 세계 각국을 돌며 그들의 연구실을 방문한다. 이 책에서 버지니아 모렐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실 정황을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 생태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동물들의 인지 능력을 연구하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따른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내, 특히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연구자들은 입을 모았다. 수만 마리의 개미 등에 일일이 색칠을 하거나 앵무새 앞에서 똑같은 단어를 수백 번씩 되뇌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짹...짹...짹...짹...짹." "저 '짹' 소리 말이에요?" 쌍안경으로 그 앵무새를 관찰하면서 내가 물었다. 내색은 안 하려고 했지만 사실 황당하고 조금 실망스러웠다. 유리앵무의 서명 접촉 신호, 즉 이름이라는 것은 막 알에서 깬 병아의 짹 소리만큼이나 짧고 가냘팠다. "네, 그 '짹'요. 그게 제가 연구하는 소리예요." (본문 중에서)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놀랍게도 우리 인간과 매우 유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개나 고양이라면 익숙하지만 개미와 쥐, 물고기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적인 감정은 낯설고 경이롭다. 쥐들의 감정과 웃음, 개미의 학습 능력, 물고기의 기억력, 애도하는 코끼리, 간통과 사기, 이혼, 영아 살해, 절도 등으로 파란만장한 앵무새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의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동물의 인지 능력, 즉 마음의 발견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일까. 어미를 잃고 실험실에 갇히고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고 인위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 실험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우리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둬. 물론 이마저도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에 불과한지 모르겠다. 책에서는 실험 동물과 연구자 간의 특별한 교감이 자주 언급된다. 

 

    죽기 전날 저녁, 알렉스는 늘 하던 대로 페퍼버그와 작별인사를 했다. 불을 끄는 그녀에게 해준 말, "착하게 있어.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녀가 대답했다. "내일 올 거지?" "응. 내일 올 거야." 그녀가 대답했다. 그날 밤 알렉스의 심장은 남은 힘을 모두 소진했다. 다음 날 아침, 새장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알렉스를 시설 관리인이 발견했다. (본문 중에서)

 

     동물에게도 정신 능력이 있다는 발견이 동물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만물의 우두머리라는 인간의 오만을 버리지 않는 한 동물이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날이 오더라도 인간과 동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책에 소개된 동물들의 마음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와는 전혀 별개의 생명체라 여겼던 저 동물들에게서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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