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전환점이 된 일란성쌍둥이에 관한 기록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알마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965년 8월. 캐나다 매니토바 주(州) 위니펙의 한 병원에서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난다. 건강한 남자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부모인 론과 재닛은 쌍둥이에게 브루스와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브루스와 브라이언이 생후 7개월 무렵, 작은 문제가 생긴다. 두 아이가 소변 볼 때마다 불편해 하는 걸 엄마 재닛이 발견한 것이다. 성기 포피가 요도구를 막고 있었다. 소아과의사는 '포경으로 인한 병증'이라고 진단했다. "흔한 증상이고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1966년 4월. 쌍둥이 형제 중 첫째인 브루스가 수술대에 오른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챔 박사는 이렇게 기억한다. "스테이크 써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아이의 다리 사이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살이 타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본문 중에서)
   ​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의사의 부주의로 브루스의 성기가 타버린 것이다. "석탄 조각"처럼 새까만 브루스의 성기는 "조그만 노끈" 같은 흔적만 남기고 부서져 내렸다. 복구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수술을 받지 않은 브라이언의 포경은 저절로 사라졌다. 론과 재닛은 애초부터 불필요한 수술 때문에 브루스가 사고를 당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고가 있고 십개월 정도 지났을 때, 론과 재닛 부부는 희망적인 해법을 찾게 된다. 바로 성전환수술이었다. 당시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문제전문연구원 겸 임상심리학자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던 존 머니 박사가 티븨 토크쇼에서 '성전환 수술의 기적'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논리는 매우 명확하고 단순해서 "가방끈이 짧은" 론과 재닛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반음양(중성) 또는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잃은 아이에게 성전환 수술을 하고 꾸준한 양육을 통해 성 정체성을 심어주면 자연히 후천적인 성을 따르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론과 재닛은 브루스를 여자아이로 '만들' 결심을 한다.
 
    부모님이 예전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제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죠. 자식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부모가 어딨겠어요? 하지만 부모님을 위해서 행복한 척할 수는 없잖아요? 나를 위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요. 내가 되어야지. (본문 중에서)
    존 머니는 당시 성전문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 ​'성 정체성 gender identity'이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자신의 저서와 다양한 매스컴을 통해 머니는 가학피학증, 호분증, 절단도착증, 자기교살증 등 성도착에 대해 "독특한 기호"라고 소개하면서 소아성애가 반드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전환 수술'은 "성의 금기를 깨뜨리는 머니의 실험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정체였다. 성 정체성 연구는 윤리적 제약이 많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머니는 중성으로 태어난 영아와 불가피하게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발달상으로 정상인 유아를 상대로 실험을 진행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온다. "정상적으로 태어났지만 포경수술을 받다 성기를 잃은 남자애"가 부모와 함께 머니 박사를 방문한 것이다.
    머니 박사는 남녀 생식기의 차이와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었다. 머니 박사와 일대일로 만나야 했던 브렌다는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남자아이들이랑 싸울 때가 있는지, 여자아이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는지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질문에 시달렸다.  (본문 중에서)
​   브루스는 전례가 없는 특이한 사례였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였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인간의 한도 내에서 생물학적으로 최대한 동일한 한 쌍"이라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궁극의 대응 짝"이었다. 머니는 자신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를 거머쥔다. 일명 '쌍둥이 케이스'라 불리는 사상 초유의 성 심리 실험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나도 수염을 깎으면 안 되느냐고 말한 기억이 나요." 데이비드는 브렌다로 살았던 시절의 가장 초반부에 속하는 그때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빠가 '안 돼, 안 돼. 넌 엄마랑 놀아라' 하고 말씀하셨죠. 전 그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나는 왜 수염 깎으면 안 돼?' 하고 물었어요." (본문 중에서)
   머니 박사의 요청은 간단해 보였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자신을 방문할 것. 브루스에게 여성의 정체성 심어주기. 론과 재닛은 브루스의 이름을 브렌다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한다. 머니 박사에 의하면 꾸준한 양육을 통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만 하면 브루스는 온전한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부부는 브렌다의 머리를 여자아이처럼 꾸미고 한겨울에도 치마만 입혔다. 소변도 앉아서 보게 했다. 엄마인 재닛은 브렌다에게 여성적인 몸짓과 말투를 선보이기도 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렌다는 여아보다는 남아에 가까운 행동 양상을 보였다. 남자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하는가 하면 언제나 무리의 대장이 되고 싶어했다. 소변을 서서 누었고 여자아이들과 노는 걸 시시하다고 여겼다. 브렌다가 성장하면서 문제는 더 크게 불거진다. 브렌다는 자신이 여느 여자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주변의 강압 때문에 여자아이를 흉내내는 일을 그만두기도 어렵다. 심신의 부조화가 깊어져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간다. 당시 브렌다를 가까이서 지켜본 교사나 아동심리상담가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진다. 브렌다는 여자아이다운 면모가 하나도 없다는 것. 머니 박사는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말괄량이 기질'에 불과하다고 부모를 안심시킨다.
   ​다들 저더러 여자라고 하는데, 저는 여자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게다가 남자아이들처럼 노는 게 좋고,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뭔가 이상하구나. 나는 저기 저 여자아이를 닮아야 하는데 저 남자아이처럼 굴고 있잖아. 그래서 별종 취급당하는구나. (본문 중에서)
 
   사춘기에 이른 브렌다는 부모로부터 그간의 모든 사정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여성 흉내를 그만두고 자신의 본래 성으로 되돌아간다. 브렌다를 버리고 데이비드 라이머로 개명한다. 수술을 통해 인공 페니스를 갖추고 여성과 결혼도 한다. 본성보다는 양육이 성 정체성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에 힘을 실어줄 '쌍둥이 케이스'에 희망을 걸었던 머니 박사의 계획은 대패하고 만 것이다.
​   "나는 남자로 태어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역겨운 남자의 상징을 달고 있었다." '역겨운 남자의 상징'이란 페니스와 고환을 말한다. 머니가 훗날 성인과 유아의 성전환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다음과 같은 고백은 불길한 여운을 남긴다. "가축은 물론이고 인간도 수컷이 태어나자마자 거세하면 여자들이 살기에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본문 중에서) 
​   자아의 성 감각을 형성하는 것이 본성인가 양육인가 하는 논쟁의 일대 전환점이 된 '쌍둥이 케이스'의 전말을 밝히는 이 책은 객관적인 자료(브렌다의 상담녹취 원고, 정신과 상담 기록, 사건을 둘러싼 증인과 사건 당사자의 진술)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브렌다(데비이드)의 부모 론과 재닛의 연애와 결혼부터 브렌다가 데이비드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한편 본성 대 양육 논란으로 뜨거웠던 당시 과학계의 생생한 현장감을 전한다.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존 머니 박사의 이중적 태도와 사악한 면모, 개인적 트라우마​는 그 어떤 스릴러보다도 섬뜩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런 괴물!이 세계적인 명망을 떠안고 당시 과학계를 이끌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보다 놀라운 건 이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이다. 미키 다이아몬드의 끝없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머니 박사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에 굴종하는 비겁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억지와 모순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 애석하다. 브렌다(또는 데이비드)의 비극적 - 데이비드 라이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생애와 과학계의 복잡한 음모를 담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죽은 개구리들의 원통함을 생각했다.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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