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요 - 아들이 써내려간 1800일의 이별 노트
다비트 지베킹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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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년의 내가 지켜본 가족의 죽음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고 깔끔했다. 비통함이라고는 끼어들 여지도 없이 완벽해 보이는 평화 그 자체였다. 돌아가셨다, 라고 어른들은 그저 나에게 통보해 주었다. 주무신다, 라고 말하듯이 심상한 어투였다. 아이고 아이고 하던 곡소리도 그래서 연극적으로 느껴졌다. 눈물 없이 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감정 표현에 서투른 폐쇄적인 집안 분위기는 나에게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가르쳤다. 오래도록 순수한 감정의 교류가 없으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때가 온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당시 나는 부끄러움과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나의 불행을, 슬픔을, 고독을 저들의 죽음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누운 기다란 땅에 작은 산처럼 흙이 덮이고 어른들의 커다란 신발들이 꽝꽝 흙을 다졌다. 두 사람의 죽음보다도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조각난 이미지들이다. 땅을 파고 자신의 슬픔을 휙 내던지고 흙을 덮고 오랫동안 꾹꾹꾹 다지던 그때 그 어른들의 고독에서 나는 강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      내 옆의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서 멀리 가야 할 때가 많다. (하이미토 폰 도데러 Heimito von Doderer,1896~1966)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투병부터 임종 과정을 담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렸다. 단단해 보이던 작은 봉분들이 거짓말처럼 허물어지고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매장했던 감정들이 깨어났다. 당시엔 감히 입어보지 못했던 외투를 껴입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목을 넣고 팔을 끼워 본다.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울음이 터져나왔다. 망각은 살아서 겪는 죽음이다. 기억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파괴되면, 그러니까 뇌기능이 소진되면 그 사람 전체가 소진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위쪽에 있는 무화과 나뭇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떼어내버렸다. (142쪽) 

 

    기억을 잃어가는 병, 치매를 앓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동네나 근처 숲길을 헤매고 다녔다. 마루에 앉은 할머니를 두고 나선 등굣길에서 방향을 바꿔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숨을 고르고 대문을 열어젖히면 할머니의 텅 빈 얼굴이 거기 있었다. 할머니, 어디 가면 안 돼? 나 올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해? 어린애 타이르듯 몇 번이나 당부하고 학교에 가던 기억. 병이 진행되면서 할머니는 심각한 어휘력 장애를 보였다. 우리들 이름은 물론 숟가락 젓가락 같은 단순한 단어들도 잊어버렸다.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떠듬떠듬 이어가는 할머니가 나는 무서워졌다. 내 이름도 존재도 잊어버린 할머니는 더 이상 내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     ​"그런데 넌 누구니?" "엄마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라고?" 엄마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당신이 제 엄마예요." "그러면 좋을 텐데." 엄마는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에요! 내가 엄마 자식이에요. 엄마가 날 낳았어요." "내가, 너를? 하지만 그러기엔 네가 너무 큰 것 같은데." "물론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아주 작았죠!" (15쪽)

    어떤방식으로든 빠르게 죽어가는(잊어가는) 사람의 시간과 아직 건강한 사람들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전혀 다른 시간과 기억의 간극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한 가족에게 닥친 망각과 죽음은 어떤 면에선 축복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지난) 삶을 부각시키고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의 배경이었던 어머니의 세세한 부분이 클로즈업된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고해성사하듯 회개하고 아들은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는 경악하며 묻는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    다음날 아침, 공원으로 산책을 갔을 때 엄마는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옳아, 옳아"라고 해석했다. 호수에 떠다니는 오리들이 꽥꽥거리자 "모두 괜찮아"라고 통역해주기도 했다. 작은 나뭇잎이 길을 가로질러 바람에 흩날릴 때는 동작을 멈추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오, 불쌍해라......" 우리는 그곳에서 떨어진 낙엽을 몇 개 주워모아 장식품처럼 엄마의 주머니에 끼워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비교적 푸른빛이 도는 낙엽을 보고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오, 새파랗게 어린 것이로군. 늙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직 모를 거야." (147쪽)

    뿌리가 뒤흔들린 식물이 노랗게 노랗게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이 전해진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미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시간. 잃어버린 어머니의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가족의 몫이 된다. 한 사람의 기억과 시간이 무질서하게, 난폭하게, 수줍게, 낯설게, 미친듯이 범람하고 뒤섞이고 부풀어오르고 빵 빵 터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소진한 어머니는 비가역적으로, 빠르게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엄마는 이미 꽤 오랜 시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식물을 보살피는 것처럼 우리는 엄마가 시들지 않게 지키고 있다. 이 꽃이 시들도록 놔두어야 하는 것일까? (282쪽)

    갑작스럽게 닥친 상실의 예감, 이별 앞에서 다비트 가족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인 고민들을 이 책은 충실하게 담고 있다. 서로 소원했던 가족들이 기억의 파편을 주워들고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어색하게 포옹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사랑이나 이별은 언제나 뜻밖에 찾아온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이르거나 늦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바로 이때가 가장 적절한 때는 아닌가. 다비트 가족의 사랑과 이별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라는 것. 안녕, 인사하고 보내줄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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