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자의식이 싹트면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기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질문을 풀어나가는 여정이 바로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이와 젊은이와 늙은이. 철학자와 예술가와 노동자...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과 방식으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에서 우주생물학자인 크리스 임피우주의 탄생과 소멸을 통해 우리의 기원을 이야기하는데요. 우주생물학,이라 해서 뭔가 굉장히 난해하고 딱딱할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전작(《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원제: How It Ends》)에서 보여준 지적 유머와 문장력을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적 지식은 물론이고요. 전작에 비해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다면 구성입니다. 각 장의 시작과 끝부분에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나'의 이야기를 삽입하고 있는데요. 대단합니다. 우주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탄탄한 문장력을 자랑합니다. 이 부분은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이론과 추론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는데요. 막연한 우주 이론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주 이론과 무관하게 읽어도 손색없는 하나의 매혹적인 이야기가 되고요.

 

      최초의 빛. 나는 최초의 가장 무거운 별을 찾고 있다. 이 별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저 별이 최초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당해 보인다. 이 별은 소리 없이 죽음을 맞이했고, 폭풍파가 다가오고 있다. 폭풍파가 도착하자 나는 마치 헝겊인형처럼 흔들린다. 입을 벌려 맛을 보니..., 그을음 맛이다. 그렇다! 나는 몸도 없고 집도 없지만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는 몸을 돌려 폭풍파에 올라탄다. 나는 우주 속의 소우주, 탄소다. (...) 얼마 동안 떠다녔는지 모르겠다.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 주변은 거미줄에 걸린 이슬 같은 구조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있다가 이제 새롭게 만들어지는 별 속으로 들어간다. (...)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나는 하나의 원자일 뿐이다. (...) 나는 어떤 느낌에 사로잡혔다. 슬픔은 아니다. 나는 슬픔을 느낄 수 없다. 상실감과 허탈감이다. 그리고 열기, 강한 열기가 느껴진다. 나는 다시 바람에 올라탄다. 자유는 탄소의 숙명이다. (본문 중에서)

 

     목차에서부터 문학성이 드러나네요. 우리의 잃어버린 쌍둥이, 깊은 시간, 잃어버린 지평선, 안개가 걷히다, 동틀 무렵의 피리 연주자... 우주론을 담고 있는 책을 소개하면서 왜 자꾸 문학성만 운운하는 거야. 하시는 분도 있겠네요. 그냥 소설이나 시를 읽지, 라고요. 그런데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요.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이 책에 담긴 과학이론이 생소하고 난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크리스 임피는 상당한 배려를 하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짧은 에피소드부터, 개인적 체험과 철학, 신화와 문학적 지식을 동원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지요. 의인화된 별과 행성들, 우주를 떠도는 '나'의 이야기가 이 책을 여타 과학이론서와 구분 짓는 장점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복잡한 별들 사이에서 태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는 노란색으로 따뜻하게 빛나는 이 별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창백한 푸른 점이 있다. 이 점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역시 거칠고 낯설다. 문명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순간 광활한 배경에서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몇 개의 작은 무리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이 털 없는 원숭이들은 다른 동물의 무리들과 구별하기 어렵지만 천천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빛이 내 눈에 닿는 데까지는 2만 7,000년이 걸린다. 나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로 등장하기 위해서 막 준비를 하고 있을 때의 지구를 보고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렵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우리는 네안데르칼인을벗어났지만 아직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지는 못했다. 약 100만 년 동안 우리는 이 행성을 떠돌고 있다. 나는 너무나 젊고 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그 종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다. (본문 중에서)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가까운 달에서 시작해 오리온성운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 블랙홀과 빅뱅이론 다중우주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500쪽에 달하는 분량만큼이나 무게와 깊이를 담고 있어요. 크리스 임피는 자신의 우주생물학적 지식을 철학적 사유와 인간적인 유머,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내고 있는데요. 과학적 지식을 넘어선 통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지구는 캄캄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물을 연상시켰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크기는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구슬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따뜻하고 살아 있는 지구는 너무나도 깨지기 쉽고 연약해 보여서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앞서 인용한 문장은 아폴로 15호 달착륙선의 조종사였던 제임스 어윈의 말이라고 하는데요. 달 위를 걸었던 사람들 모두가 미치거나 종교를 갖거나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 사실에 대한 설명이라고 합니다. TV쇼에서 칼 세이건은 말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반드시 우주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사과와 파이 껍질에 포함된 탄소와 산소 원자가 만들어지려면 여러 세대의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야 합니다. 파이를 만들 사과와 사람이 형성되기까지는 또 수십억 년이 걸리고요. 사과파이 한 조각에도 우주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어윈과 칼 세이건의 말은 삶에 대한 허무와 애착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너무나도 깨지기 쉽고 연약해 보여서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은 존재인 우리는 수십억 년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우주의 한 조각입니다. 수십억 년의 세월이 우리 안에 흐르고 있어요. 별의 탄생과 소멸. 폭발하면서 새로운 별이 생성되는 우주의 경이. 이 경이로운 우주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떠도는 별의 잔해. 그 아름답고 앓음다운 우주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서평) http://gray_shoes.blog.me/30131573798?Redirect=Log&from=postView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