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와 생명의 불 - 살만 루슈디 장편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15
살만 루슈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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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매혹적인 이야기는 이 년 전, 살만 루슈디가 당시 열두 살이던 둘째 아들 밀란을 위해 쓴 것인데요. '루카'는 밀란의 중간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1990년에 장남 자파르를 위해 쓴 《하룬과 이야기 바다》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는 어린 아들에 대한 늙은 아버지의 애틋한 정이 녹아 있습니다. 《하룬과 이야기 바다》에서 루슈디는 이야기 능력을 잃어버린 이야기꾼 아버지를 구하는 아들 하룬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데요. 허풍 대왕으로 불리는 이야기꾼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마법 세계로 뛰어드는 루카의 이야기 역시 큰 줄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입니다. 두 작품 작은 차이라면 루슈디의 현실 상황과 정서적 연결고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은둔 생활 도중 씌여진 전작에서 작가로서의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현실적 갈등을 엿볼 수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는 어린 아들이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늙은 아버지의 위기감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중요한 질문의 대답은, 그 질문을 받을 때까지는 우리도 몰라. 질문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된단다. (본문 중에서)

 

    루카의 모험은 한 서커스단의 몰락에서 시작됩니다. 불꽃 단장 아아그가 이끄는 '거대한 불고리' 서커스단. "믿을 수 없는 불의 환상 곡예"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유명 서커스단을 단숨에 해체시킨 것은 열두 살 루카의 분노였습니다. 서커스단 행렬을 지켜보던 루카의 눈에 비친 서커스단의 실상은 매우 비참했습니다. 눈먼 암호랑이와 굶주린 코끼리, 새장에 갇혀 풀이 죽어 있는 앵무새들과 충치를 앓는 암사자의 참상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던 루카가 불꽃 단장을 향해 외친 말이 그대로 저주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숲으로 달아났고 불고리는 서커스단의 천막을 활활 태워 없애버렸습니다. 악에 받친 아아그의 보복으로 루카의 아버지 라시드는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지요. 죄책감을 느낀 루카는 아버지 라시드를 위해 '생명의 불'을 훔치러 마법 세계로 뛰어듭니다.

 

     이야기일 뿐이라고? 내 귀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게 분명해. 건방진 애송이. 네가 그런 어리석은 말을 했을 리가 없어. 어쨌든 너 자신도 공상의 바다에서 떨어진 작은 물방울 하나, 허풍 대왕의 입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온 짤막한 말일 뿐이야.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너는 인간이 이야기하는 동물이라는 것, 이야기 속에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의 의미, 그리고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활력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 (본문 중에서)


 

    마법 세계는 허풍 대왕이라 불리는 아버지 라시드가 창조해 낸 것입니다. 열두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서사에서 아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데요. 마법 세계를 가상 현실로 설정하고 게임 형식을 차용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스핑크스를 연상시키는 강의 노인과 수수께끼 대결을 해서 충전한 '생명'을 소진하며 지식의 산에 올라 '생명의 불'을 훔치게 되면 레벨 9단계, 클리어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장애물이죠. 도깨비와 박쥐, 전갈인간, 고대의 신들, 괴물과 끈적끈적한 점액질 생물, 존경 생쥐, 욕설여왕 등 기괴한 방해자들과 얽힌 위기상황이 단계적으로 펼쳐집니다.  

 

    왼쪽 길로 가려면 그 길이 거기에 있을 거라고 믿어야 해. (본문 중에서)

 

    마법 세계의 심장부, 지식의 산에 이르는 루카의 긴 여정은 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힙니다. 아버지 라시드의 유령 '아무버지'와 퇴락한 고대의 신들을 통해 루카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불멸성이 얼마나 끔찍한 욕망인가를 깨닫게 되지요. 작가 인터뷰에서 루슈디는 "성인 문학과 아동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이 작품을 쓴 목적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씌였지만, 어른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감동을 주는 하나의 우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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