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 청년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소설가 15인의 짧은 소설
강윤화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셋 청년 전태일이 불꽃 같은 생을 마감한 지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절규하며 죽어간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짧은 생애가 남기고 간 열정과 분노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일깨우는 데 어느 정도 힘을 보탰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전태일은 죽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분노하고 투쟁하는 또 다른 전태일들. 여기 수록된 열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바로 이 시대의 전태일, 노동자들의 초상을 담아냅니다.

 

   노동자가 뭔지 아시죠. 나는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도 노동자라구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나도 알아요. 노동자는 더러워요. 늘 땀 냄새가 나요. 역겨운 냄새가 나요. 집에 오면 빈둥대요. 돈도 못 벌구요. 싸움이나 하다 병원에 가구요. 선생님도 그러세요? 아니잖아요. 선생님도 노동자 맞다구요? 그럼 난 선생님은 안 될래요. 사장님이 될 거예요. (손홍규 _ 게으름뱅이 형 중에서)

 

 

   내레이터 모델, 이주노동자, 학원강사, 교수, 농부 등 열다섯 명의 작가가 그리는 노동자들의 초상은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꿈(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은 그들 노동력의 근거지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일하고 있지만 꿈을 향한 도약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데, 여전히 그들은 곤궁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 노동자들의 처지는 자본주의의 허점을 아프게 증명합니다.

 

 

   표제작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은 제1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김남일의 작품인데요. '왼발잡이'는 자유와 평등을 희구하는 모든 좌파를 상징합니다. 최근 화제에 오른 개그맨 최효종 씨의 속 시원한 입담을 떠오르게 하는 풍자가 인상적입니다. 김남일은 이 작품에서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자본제일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입지는 그만큼 빈약해지고 있다현실적 논리를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습니다. 저항의 상징인 왼발잡이 토끼의 죽음마저도 상품화하려는 '사장님들'의 욕망은 자본주의의 함정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당함에 대항하는 '왼발잡이 토끼'들에게 힘센 '사장님'들은 심드렁하게 경고하시겠지요. 네 무덤 네가 파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저항하거나 순종하거나 절망하면서요. 세상 참 좋아졌다고들 합니다만 그 좋은 세상은 누구의 몫입니까. 노동자들의 피땀 없이 지금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정작 그들의 현실이 암울하다면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기는 한 것일까 회의를 품어보아야 합니다. 생각을 해봐야 하고 필요에 따라 행동도 해봐야... 그렇죠. 안하는 것이 아니죠. 왼발잡이 토끼들의 투쟁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으니까요. 투쟁하는 것은 어쩌면 쉽습니다. 오랜 투쟁과 좌절의 기억을 안고도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이상을 지켜나가는 일에 비하면 말입니다.

 

 

   각자의 개성을 담은 열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내는 목소리는 하나로 통일됩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전태일의 절규를 기억하라는 것. 매우 중요한 메시지임에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형식입니다. 무려 열다섯 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 이 작품집은 300쪽을 훨씬 밑도는 분량입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단편보다는 콩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분량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거의 모든 작품에서 제가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선생님께 주제와 분량에 대한 지시를 받은 학생의 착실한 숙제장 같다고 할까요. 소설이 아니라고 하면 문제 삼을 것도 없겠지요. 주제와 분량의 제한이 이야기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이야기는 미미하고 주제만 부각되는 글들을 읽으면서, 이럴 바엔 사회비평집을 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작품들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김도언의 <그건 아니야, 오빠>와 손홍규의 <게으름뱅이 형>이 그랬습니다. 두 작품 모두 소박하고 진실한 시선으로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와 느끼는 것이 또 다르겠지요. 제 개인적인 평에 너무 의지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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