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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손가락의 기적
루이스 새커 지음, 이진우 옮김 / 사람과마을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만약 못된 아이한테 뜨거운 태양아래서 하루종일 구덩이를 파라고 한다면 그아이는 분명 착한 아이로 변할 것이다"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뚱뚱보 스탠리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초록호수캠프에 들어가 하루종일 구덩이를 팝니다.
몇개의 구덩이를 파야만 스탠리는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플롯은 왕따 소년 스탠리의 성장기이지만 성장소설로 간단히 분류하기엔 이 소설이 가진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합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 부터 내려오는 스탠리가의 운명적인 저주, 양파장수와 전설적인 서부의 무법자의 사랑이야기, 갖가지 사연으로 이름을 버리고 별명으로 불리우기 자처한 캠프의 아이들. 시공간을 달리하는 짧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모여 놀라우리만치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들게 됩니다. 이 이야기들은 내러티브의 재미뿐 아니라 운명을 가로지르는 인과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미묘한 가르침을 주는데, 신기한건 이게 하나도 교훈적이지 않다는 겁니다.(전반부에서는 키팅선생이라도 된 듯이 교훈적인 선생의 전형이던 펜덴스키 선생이 뒤로 갈수록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의도는 교화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한데도 기어코 여기서 교훈을 찾아내는 저도 참..너무 도덕교과서에 익숙해졌나봐요.ㅎㅎ).
작가가 다루고 있는 운명이란 팔자려니 하면서 순응하는 그런 체념적인 운명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구멍(holes)에 빨려들어갔을때, 그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책임을 다해 극복하고, 소중한 것을 잃지않고 발견해내는가 하는 것에 관한, 숙연한 운명입니다. (그래서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읽으며 운명을 가장한 우연의 남발이 아닌가 했던 의심을 이 책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 스탠리가 말하는 운명이란 이런겁니다.
"구덩이 속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올라가는 것 뿐이야"
이책이 가진 또하나의 장점은 유머입니다. 스탠리와 아이들이 처해 있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너무나 우울해서 간간히 내비치는 낙천적인 유모가 빛을 더 발하는 것 같아요. 먹구름 가장자리의 은빛 라인처럼 말입니다.
기가막히도록 놀랍고, 진지하고, 우울하고, 재미있고, 경이로운 이 소설을 찾아내서(!) 읽게 해준 앞의 리뷰어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사족1) 가끔 보이는 오타와 결정적인 탈자(탈'그림'이라고 해야 맞겠군요)로 반 페이지가 덩그러니 빈 장이 거슬리네요. 제로의 그림을 보여다오~
사족2) 읽으면서 스탠바이미같은 영화를 생각했는데, 역시 헐리웃기획자들은 발빠릅니다. 이미 영화화되었네요. 작가가 직접 극본을 쓰고 단역으로 출연까지 했나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파트리샤 아퀘트가 여선생 카테린으로 나온답니다.
사족3) 첫페이지의 생뚱맞은 푸쉬킨 시를 보고 흠칫 했다는...ㅋㅋ..이발소생각이 나서리.
사족4) 루이스 사샤냐, 새커냐, 새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