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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작은 책 한권에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루쉰의 철학과 인생이 빼꼭이 들어있습니다. 그의 산문들은 혼돈의 시대를 중심을 잃지 않고 제대로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쏟아 낼 수 없는 격정과 분노, 그리고 애정과 염려의 글들입니다.
민중을 자극하는데 급급한 치기 어린 글이거나, 언행일치되지 않는 미사여구이거나, 인간에 대한 애정없는 한낱 속물지식인의 원칙론 뿐이었다면 결코 그런 울림을 이끌어낼 수 없겠지요.
루쉰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 정당성은 분노의 대상인 민중이 어리석고, 타락하고, 비도덕적이고,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가 민중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문화권력화되어가는 이문열의 끊임없는 독설이 루쉰의 정치평론과 구분되는 분명한 지점이기도 하구요.
선생의 말대로 “독이 없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그러나 글로 나타내는 독은 단지 소독(小毒)일 뿐, 최고의 경멸은 무언(無言)이다. 그것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 채로의 무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치의 기득권도 양보하기 두려워하는 기성세대와 방향 잃은 정치인, 섣부른 지식인과, 한마디씩 보태는 필객과 논객들이 난무하는 요즘의 한국 사회에서 루쉰 선생의 충고대로 말을 아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하지만 무언의 경멸과 무관심은 구분되어야 겠지요. “ 꽃을 위해 썩는 풀처럼 희망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처럼 살지는 못할지라도 무엇을 하겠다고 한다면 독사처럼 칭칭감겨들고 원귀처럼 매달리고 낮과 밤 쉼 없이 매달리는 악착같은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랑한다면.. “
*간지러운 제목과 얄팍한 두께에 속아 이 책을 지나칠 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