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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뻐?
도리스 되리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노희경의 거짓말에서 초로의 엄마 윤여정은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건 참 불쾌하고 서글퍼. 얼굴에 생긴 주름이 서글픈게 아니라, 이왕 늙을거면 몸도 마음도 함께 늙지, 마음은 어릴때 그대로 라는게.."
30살이 되기 전 나는 무슨 속세를 떠나기로 결심한 수도승이라도 되는 양 20대의 나와 작별을 고했지만 (그즈음에도 도리스 되리의 파니핑크를 보았더랬습니다) 정작 30대가 되어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혼란도 그대로고 욕심도 그대로고 불안정한 상태도 그대로고, 달라진 건 피부의 수분함유량 정도였죠.
그러니까 30살에도 손님없는 잔치는 계속되더란 말입니다.
어느 여배우가 했다는 30대 예찬은 위선이거나 안스러운 자기최면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 30대는 확실히 20대보다 불쾌하고 서글프며, 40대는 30대보다 더 불쾌하고 서글플겁니다.
도리스 되리의 소설속 여주인공들도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세월의 흐름도 상관없이 여전히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다른삶'에 대한 욕망 속에 갖혀있습니다. 어릴때 바비인형의 분홍색 구두를 훔치며 꾸던 꿈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겁니다. 다행인지 그녀들의 일상은 그녀들의 욕망을 가둘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만, 그래서 그녀들의 영혼은 더 외롭게 부유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같은 속도로 늙지만 아이들이나 남자들이 먹는 나이와 여자들이 먹는 나이는 같은게 아닙니다. 젊은 여자애와 바람난 동갑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늙었고, 혼자고, 그는 젊고 혼자도 아니야" 시간은 여자들에게 더 냉정합니다.
끊임없이 "나 이뻐?"하고 되물어 존재를 확인해야 할만큼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붙잡고 살아가는 여자들이지만, 난 그녀들의 건재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하루 하루의 일상은 그녀들에게 끔찍한 비극인 동시에 삶을 지탱하게 하는 마리오네뜨의 줄일수도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life is go on~!
P.S. 1 : 책의 무게에 비해 나이뻐?란 제목은 너무 가볍습니다. 가벼움을 기대한 독자들은 실망할테고, 무거움을 기대한 독자들은 이 책을 아예 선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P.S. 2 : '훙부인에게 새신을' 이란 에피소드는 노통의 소설, 오후 4시와 상당히 유사한 소재입니다만..훨씬 맘에 듭니다.
P.S. 3 : 여성작가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자의식과잉이나 발육부진의 기미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안보입니다(뜬금없이 일반화시킨 여성작가들에겐 미안하지만). 군더더기없으나 필요한 묘사는 충분하며 문장은 경쾌합니다. 독일문학답게 실용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