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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어문각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고백하건데, 나는 이책을 인내심을 가지고 두 번이나 읽었지만 단 한줄의 문장도 제대로 아니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인터넷의 한 신간 안내코너에서 이책이 새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내 방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을 이 책을 생각해내었습니다.그리고 몇 년 전 이책을 읽었던 당시의 당혹스러움도 함께 떠올렸습니다. 단 한줄도 읽어 낼 수가 없었던 기억.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설마 내 지적능력이 몇 년동안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로)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후훗..역시..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네요.
감당못할 책을 왜 샀느냐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굳이 변명하자면 비극적으로 요절한 천재 재미 예술가가 주는 묘한 기대치도 있었고(전혜린의 그것), 페미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아방가드르니 하는 지적허영심을 자극하는 홍보문구에도 혹했었고, 무엇보다 ‘소설’이라는 이름이 떡하지 붙어 있어서 안심하고 샀던 것이죠.
이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실험적인 작가의 퍼포먼스에 가까운 책입니다. 3대에 걸쳐 모국어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작가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작가의 이야기, 받아쓰기를 연상시키는 문장과 웅얼거리듯 부자연스런 문체, 오래된 사진과 글씨, 불어와 영어의 혼용 등은 억압된 언어에 대한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유관순을 통해 일제에 억압받는 한국의 식민지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어느새, 억압의 대상은 잔다르크와 테레사수녀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여성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하이퍼 텍스트의 변주가 수렴하는 지점이 어느 곳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책 곳곳에서 새삼 낯설게 보이는 단어와 문장을 통해 막연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에 대한 공포를 마주치기는 했으나, 나는 울리는 메아리 속에서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책을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비평가들에게 수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문제적 소설을 나도 읽어 보기는 했다는 정도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_-;;
낮은 별점은 나 같은 유치한 수준의 독서능력을 가진 독자들의 흥미를 만족시키는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혹시나 이책에 매료된 분들은 오해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