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적 사례이해
Nancy McWilliams 지음, 권석만 외 옮김 / 학지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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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적 사례이해, Nancy McWilliams 저, 권석만·김윤희·한수정·김향숙·김지영 공역, 2005, 학지사>


정식분석의 태동기에는 이해(understanding)를 정신 건강에 이르는 주된 과정으로 강조하였다. Freud는 치료의 핵심을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떠올릴 수조차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사건들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Freud의 임상적 경험과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곧 이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과학적 실증주의에 토대를 둔다. 진실과 자유가 통한다는 진리는 델피의 신탁(너 자신을 알라라는 모토로 대표되는)만큼이나 유래가 깊은 것으로서, 정신분석학의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의 분석가들은 이해, 특히 ‘정서적 통찰’로 불리는 정서가가 부과된 ‘아하 경험’과 같은 이해의 치료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비특정적’인 요소들(예: 치료자가 현실적이고 자기 존중적인 태도의 귀감이 되거나, 내담자가 치료자의 수용을 경험하고 내면화하거나, 환자의 고통과 분노에도 치료자가 상처받지 않고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등의) 또한 이와 유사한 치료적 효과를 지닌 것으로 여긴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치료요인에 대한 대부분의 정신역동적 문헌들에서는 통찰의 전통적 개념보다 치료경험의 관계적 측면을 더욱 강조해왔다. : p36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주체 의식의 손상을 이유로 치료자를 찾는다. 이들은 우울, 불안, 해리, 강박사고, 강박행동, 공포 혹은 편집성에 좌우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주체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때때로 이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 번도 책임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러한 책임감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하에 치료장면을 찾기도 한다. : p38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나의 역할은 분명하고, 내 의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겠지만 심리적 안정성은 보장될 것이다. 나는 내 존재의 의미 그리고 전체 구조 속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지 여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에 내가 끊임없이 낯선 이를 대하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권력과 권위를 지닌 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차단되고, 내가 모르는 이들이 간접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통해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며 누구를 존경하고 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충되는 정보를 전달하는 거대사회 속에서 성장한다면, 나는 누구이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이다. : p40

Carl Rogers와 Heinz Kohut는 그들의 기념비적 저술을 통해서 자아정체감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 어떤 치료적 의미를 지니는지 상세히 설명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의 이해·반영·수용·확인되기를 원한다. 자신이 속한 문화를 통해 의지할 수 있는 그리고 미리 정해진 평생 동안의 역할을 얻지 못한 개인은 내적인 통합감과 확실성,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살고, 감정, 태도 및 동기에 진실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자신이 누군인지에 대한 인식을 얻어야만 한다. 오늘날 개인이 정체성을 자기 밖의 맥락 속에서만 경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 자신을 정의해오던 직장을 잃은 경우, 삶의 의막 되는 배우자로부터 이혼을 당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적당한 지지적 맥락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믿고,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경험하고 언어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치료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 p41

치료를 통해 내담자의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치료자가 자신 또한 결점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기꺼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사실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불완전한 자신도 존중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분석가는 자신이 실수와 한계를 지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확신을 전달할 수 있다. : p42

정신역동적 입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분노를 그 순간에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고 이러한 에너지를 문제 해결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느 방법을 찾는 것이다. : p45

역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분석적 용어로 자아강도(ego strength)라고 한다. : p46

현실에 적응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인(denial)하지 않는 것, 마술적 사고로 빠지지 않고 현실을 수용하고 대처하는 것, 병리적 신념 대신에 현실적인 기대를 지니는 것을 포함한다. 변화시킬 수 없는 요인을 수용함으로써 더 긍정적이고 진정한 관계가 가능하다. 사실, 현실을 수용하는 일은 그 자체가 대단한 변화다. : p90

치료자가 치료 불가능한 부분을 명확히 해줌으로써 환자는 자신의 헛된 소망을 슬프지만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대화는, 치료자가 매우 곤혹스러운 현실을 언급하면서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직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통을 견디어내는 자아감도의 모범을 환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 p91

치료란 불합리한 소망과 믿음을 의식화하여 검토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며 보다 현실적이고 달성 가능한 목표로 대체하는 것이란 생각은(고전적인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의 의식화, 원초아의 역할을 자아가 한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현대 정신분석가들이 다소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 p106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초기 발달문제로 되돌아가서 그 시기의 특징적인 대처방식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테면 ‘고착(fixation)’의 지점으로 ‘퇴행’한다. : p118

그러나 치료자에게 있어 반사회적인 성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지표들은 전적으로 내면적인 속성을 지닌다. 여기에는 정서적 위선, 양심불량, 타인을 압도하는 것에 대한 경멸적 즐거움, 공감의 결여, 자기중심성 혹은 웅대성, 정서적 무감각, 분노와 질투에 대한 예외적인 예민성 그리고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능한 통제라는 원시적 방어에 대한 의존이 해당된다. : p147

그러나 숙련된 임상가들은 그들이 만성적으로 전능한 통제(omnipotent control)라는 방어기제에 의존해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임을 인식한다. 여성의 다소 도발적인 질문, 여성 치료자가 들어오는 동안 문을 잡아주는 남성의 매력적인 행동 또는 다른 회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기뻐하는 회사간부의 행동을 통해서 임상가는 이를 짐작할 수 있다. : p148

이와 같이 특정 방어기제가 너무도 깊이 자리 잡고 있어 내담자 자신도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 분석적 치료에서는 기본적으로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친 치료의 초기 기간 동안, 자아 동질적으로 여겨지는 바를 자아 이질적으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방어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치료를 시작하자마자 해석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환자는 오히려 이를 비판적이고 경멸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른 방식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로 인해 그 개인의 기본적인 생활방식(modus vivendi)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자는 문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가능한 방법이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점진적으로 제시하면서 매우 참을성 있게 내담자를 대해야 한다. : p156

예컨대, 자신의 히스테리적 특성을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한 내담자의 경우, 그 이면에는 불신과 적개심, 경쟁심이 자리잡고 있으며, 보다 심층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취약감과 이와 관련된 강한 두려움이 내재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동을 나타내는 연극성 성격구조를 지닌 환자를 대하는 경우, 다음과 같이 치료적 면담을 시작한다. “당신은 언제나 제가 하는 말에 동의하고 너무나도 공손하세요. 때로 제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도 분명 있을 법한데 말이지요.”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위협감을 주지 않는 정도 내에서 방어를 다루어 내담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이후 내담자는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경향성이 있음을 깨닫고 치료자와 함께 도대체 무엇을 감추기 위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지 그 이유를 탐색할 수 있게 된다. : p161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해받는다고 느낄 때 보다 성숙한 역동을 보이게 된다. 그 개인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방어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그의 전반적인 심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해당되는 방어를 전적으로 차단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러한 이해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는 심리치료의 핵심적 기술이다. : p167

정서 통합 능력은 성숙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러한 감정경험이 자기통합을 위협하여 자신을 일관성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적절한 조건하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 p171

Spezzano(1993)는 성격을 “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자 조절하는 기관으로서 현재의 감정과 미래에 경험할지 모르는 감정의 균형상태이며, 최대의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과 정서적 고통을 회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개인의 신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 p172

만일 환자가 털어놓는 고통을 경청하면서 치료자가 공감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비난을 하고 싶은 가학적 기분을 느낀다면 그 환자는 자기파괴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로, 내담자가 마치 치료자를 얕잡아보고 제압하려 하거나 속이려 드는 것같이 느껴진다면, 그 내담자는 반사회적인 사람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 밖에, 표면적으로 우울해 보이는 환자를 만나고 있으나, 치료자가 자신도 모르게 환자가 혹시 치료과오를 두고 소송을 걸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찬 공상을 떠올리고 있다면 그 환자의 핵심은 편집증에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 p174

학대를 일삼는 사람들을 치료할 때, 노출시키고 통제해야 하는 ‘핵심’ 감정이 분노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핵심에 있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덜어내려고 분노를 이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학대자들은 견딜 수 없는 감정상태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고 배우자를 폭행하는 과정, 곧 투사와 행동화를 통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 p186

죄책감이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악한 힘, 파괴성과 악의를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수치심은 자신이 무력하고 취약하다고 느끼는 것, 그 결과 금방이라도 타인의 비난과 경멸을 받을 것만 같은 느낌을 말한다. : p187

우리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있어 그 정확성이 증가함에 따라, 이상적으로는 감정의 가지치기, 곧 여러 기분상태를 섬세하게 명명하고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생애를 통해 향상된다. 자신의 감정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쁨은, 그 감정이 고통스러운 것인 경우에도, 자존감과 유능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내 친구 한 명은 바로 이러한 경험을 하고는 스스로를 “감정 수집가(affect junky)”라고 불렀다. 그녀가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기분 상태에 이름을 붙일 수만 있다면, 감정이 무감각해지고 무뎌지며 혼란스러워지거나 사고형태로 전환되기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 p193

감정을 지켜봐주고, 이름 붙여주고, 확인해주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치료이든 치료자가 감정을 언어화함으로써 환자가 자신의 복잡하고 어려운 각성상태에 대해 통제감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유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p194

감정은 동기를 유발한다. 어떤 경험이라도 감정과 결부시키면 희망이 없던 것처럼 느껴지던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정서적 자원이 생겨난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도 일어난다. 정치가들은 일반적으로 절박한 사안일수록 이를 감정(흥분, 긍지, 두려움, 분노)과 결부시키려 노력한다. 이때 감정은 대중이 어떤 목표를 이루도록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 p195

치료 초반 내담자들은 문제가 자기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이른바 동화(assimilation) 과정에 수개월에서 수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 이후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내담자들은 비록 문제가 내 탓은 아니지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 나간다. 환자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자신을 수정시키는 것, 이른바 조절(accommodation)은 구체적으로 어떤 전지전능한 대상(아마도 치료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포기하고 애도할 때 가능하다. 이런 과정은 사실 성장해나가는 인생길에서 우리 모두가 겪는 과정이다. 곧, 우리는 피할 길 없는 문제에 맞서 현실의 불공평함을 수용하고, 부족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p197

내담자는 자신의 성장과 삶의 만족을 방해하고 있는 내면화된 대상을 치료자에게 투사한 다음, 아동기에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대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 p210

원시적이고 일차원적인 내적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와 타인의 복잡성과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심리적 성숙과 개인적 안정에 매우 핵심적인 측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는 장기 심리치료의 중요한 목표다. 임상가는 내담자가 전부 좋거나 전부 나쁘다는 식의 내적 표상을 조절하고, 증오하는 대상의 긍정적 모습과 사랑하는 대상의 부정적 모습을 의식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하며, 미움 속에도 사랑이 있고 사랑뿐인 줄 알았던 감정 속에 미움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리치료가 잘 이루어지면, 경직되고 일차원적이던 표상이 한 인간의 장단점에 대한 현실적인 지각으로 대체된다. 타인의 정서적, 도덕적 복잡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자신의 강점과 약점과 모순도 더 잘 수용할 수 있다. : p214

학대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분노감정을 발견하고, 비극적인 과거를 애도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학대했던 사람들도 자기처럼 힘든 과거를 가진 상처받은 인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학대한 사람을 증오하기도 했고 사랑하기도 했음을 모두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p214

누구를 본받고자 하며 그 사람의 어떤 면을 닮거나 닮지 않으려고 하는지가 동일시의 문제라면, 주된 애정 대상과의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관계양상(relational pattern)의 문제다. : p223

오늘날 정신역동에 토대를 둔 많은 임상문헌에서는 반복되는 대인관계양상을 “내면화된 대상관계(internalized object relations)"로 명명한다. : p228

자신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방식은 매우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온, 좀처럼 자각되지 않는 심리구조의 한 측면이기 때문에,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 p251

자존감의 유지와 고양은 모든 인간 활동의 중심적인 동기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자각할 때 견디기 어려운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자신이나 타인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행동을 택할 수도 있다. 또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 p252

자존감에 대해 가장 효과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씨는 사람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합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통해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자부심을 느낍니까?” 또는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는 어떤 때입니까?”라고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유용한 경우도 있다. 아울러 “○○씨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편입니까, 아니면 실망스럽다고 생각하고 자기비하를 하는 편인가요?”라고 물어봄으로써 전반적인 자존감 수준을 파악할 수도 있다. : p255

정신분석을 받는 동안 자존감이 고양되는 이유 중 하나는, 치료자가 모든 것을 좋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가 아니다. 내담자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약점과 단점을 드러냈지만, 분석가는 이를 알고도 그를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담자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거나 그것은 결점이 아니라고 왜곡해준 것이 아니라, 그런 결점을 모두 잘 알면서도 내담자를 수용해준 것이다. 피상적인 정서적 지지만으로 자존감이 유지될 수 있다면, 친구가 있는 사람은 심리치료가 필요 없을 것이다. : p256

집중적인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치료자는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자기의 일부(disowned part of self)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 보상은 치료자 스스로 자신에 대한 통찰을 힘들여 얻을 때마다,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의 범위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 p268

고전적 분석기법에서는 가능한 한 내담자 스스로 통찰과 해석을 하도록 한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저항을 없애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분석가가 자신의 생각(preconception)에 따라 환자의 생각과 말에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잘 된 분석이라면 치료자와 내담자 모두 내담자의 무의식에서 도출되어 올라오는 내용에 종종 놀라는 경우가 생겨야 한다. 스스로 자기 모습을 이해했을 때 느껴지는 자기애적 고양을 통해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몰랐음을 인정하는 자기애적 상처가 보상될 수 있다. : p269

자기애적 취약성을 가진 내담자에게 잠재적 상처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중요한 얘기를 해주는 방법은, 자신이 존중되고 수용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말을 같이 해주는 것이다. : p272

운명은 늘 해오던 방어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그녀를 던져놓은 것이었다. : p275

자존감의 기반을 확장하는 방법을 제안하려면 먼저 내담자가 기존에 자존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회피하는 방식에 대해 치료자가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ㅇㅇ씨에게는 통제감이 아주 중요하신 것 같네요."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매우 우울해지시는군요."와 같이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내담자의 특성을 이처럼 간단히 반영해주는 말에도 다음과 같은 암묵적인 의미가 함께 전달된다. "그렇게 많이 통제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해서 실망했어도 이를 더 빨리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Freud 구조이론의 용어로 설명하자면, 내담자는 자신의 초자아에 동조되어 있던(syntonic) 것을 이제는 낯선 것으로 느껴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 p276  

치료자가 내담자의 분노를 환영하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이 오히려 친밀감을 증가시키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피상적으로 예의만 갖추는 것보다 나으며, 반드시 거절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내담자가 배울 수 있다. 내담자는 치료자가 자신을 공격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공격을 받은 것이 자기 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자기패배적 특성임을 인식할 수 있다. : p277
 

인간의 소망은 끝이 없으며, 그 소망들도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방법은 돈이든 경험이든 명예든 무언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으로는 '충분히' 가질 수가 없는 법이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즐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p278 

규율이 엄격한 종교와 종파가 그토록 호소력이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이 좋고 나쁜지, 무엇에 근거해서 자존감을 느껴야 하는지, 무엇이 죄악이고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해 분명하고 권위적인 지침을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280 

우리는 모두 체계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수준에 존재하는데 이러한 신념들은 자이이행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처럼 작동한다. : p285 

Freud는 소망이 공포 뒤로 모습을 감추곤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내담자의 두려움 뒤에는 실상 보이고 싶고 알리고 싶은 소망, 즉 과시욕구가 있었다. : p300 

비합리적인 신념은 일단 의식화되면 변화가 용이하다. 그래서치료자는 내담자의 과거 대상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내담자로 하여금 기저의 역기능적 신념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이때 비로소, 내담자들은 그러한 기대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다. : p302 

전이시험에서 내담자는 치료자가 자신의 병리유발적 신념을 든 초기대상처럼 행동하는지를 시험하려 한다. 수동-능동 전환시험에서, 내담자들은 치료자로 하여금 자신이 어린시절에 받았던 그 대우를 같이 경험하도록 행동한다. 그리고 과연 치료자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자신이 어린 시절 동일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그 신념에 의지하지않고 견디어낼 수 있는지를 면밀히 지켜본다. : p305 

치료자들은 그와 같은 시험을 만들어내는 내적 신념이 무엇인지, 그러한 신념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그것이 원래 내담자를 지켜주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금은 내담자에게 어떻게 해가 되는지를 내담자들이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p307 

진실은 대부분 경이로운 것이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것이다.이러한 사실은 내담자뿐만 아니라 자기도취로 인해서 자신의 무지와 오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치료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진실한 것이 치료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진실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일에 전념해 온 점이야말로 영욕으로 얼룩진 정신분석학의 역사에서 가장 높이 살 만한 점일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려깊은 치료자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지혜를-그러한 치료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내담자들의 경험은 차치하더라도-포기하도록 만드는거대한 압력에직면해 있는 이 시대에,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야말로 우리가 지닌 가장 강한 버팀목이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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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최영민 지음 / 학지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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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오 사례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치료자가 환자의 말을 호기심을 갖고 따라가고, 환자는 말을 함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통해 Breuer는 말을 하면서 감정적인 발산이 이뤄지고 이것이 치료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정신치료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써서 환자의 증상이 좋아진 사례다. - p72


환자가 말하는 성적 상처가 실제 사건이 아닌 환자의 환상이라는 이해는 유혹가설(seduction theory)에서 유아성욕설(infantile sexuality)로 히스테리아의 원인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유혹가설은 신경증의 원인이 외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뜻하는 반면, 유아성욕설은 환자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실제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억압이란 방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 p76


억압은 받아들이기 힘든 욕동을 무의식적 수준에서 보존하려 한다. 또 그것들을 밝혀내려는 치료에 저항한다. 그러므로 정신분석은 억압의 기제를 다루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치료 상황에서도 지속되는 억압과 저항의 동기와 과정에 대해서 계속 다뤄 줘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갖는 의미는 환자의 심리과정과 분석과정을 진정한 의미에서 ‘역동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 p78


이렇게 본능적 욕동에 근거한 초기 프로이트 이론을 현재는 모두 이의 없이 욕동심리학(drive-psychology)이라 부른다. 시기적으로는 1897년부터 1923년 사이가 해당되는데, Fine(1979)은 이 시기를 ‘이드심리학(Id Psychology)’의 시기라고 칭하면서 최초의 정신분석 체계는 무의식(지형학적 이론), 리비도 이론, 전이와 저항의 세 개념에 기초를 둔다고 설명하였다. - p78


심리학에서 의식은 주체가 마음의 활동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의식적 과정이 “철학이나 일상적으로 쓰이는 의식의 개념과 같다.”고 하였지만, 의식이 정신적 삶의 ‘본질(essence)’로 간주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 p82


의식외부 세계로부터 오는 감각들과 내부 과정으로부터 오는 억압되지 않은 감정과 사고들을 인식하고 등록한다. 동시에 보통 각성 시 생각들을 담당한다. 프로이트는 의식을 인식(perception)과 나눌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 인식-의식 체계라는 단일 구조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였다. - p82


전의식은 무의식과 대조를 통하여 이해될 수 있다. 전의식은 무의식에 반대하는 것이다. 전의식은 검열 기능과 억압의 장벽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무의식과 구별된다. 억압의 에이전트로서, 전의식은 무의식의 표상들을 무의식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힘을 제공한다. - p83


전의식이 무의식의 내용(사물)을 언어로 전환시키는 연결장소가 되고 있다. 안나 오가 스스로 ‘말로 치료하기(taking cure)’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전의식이 언어-표상과 연관시키는 특성을 잘 나타낸 것이다. - p84


전의식이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지역이라는 언급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전의식은 사물-표상과 언어-표상의 중간 영역이고 일차과정과 이차과정의 중간지역이다. 이러한 전의식의 중간지역 역할은 정신분석 과정 중에 지속되고 확대된다. 지금은 전의식이 심리적 작업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로 간주된다. - p85


무의식은 해부학적으로 존재하거나 구체화된 어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 p86


프로이트(1917)는 무의식이 신체와 정신 사이의 사라진 연결고리라고 기술하였다. - p86


꿈을 꾼 사람이 회상하는 내용을 발현몽(manifest dream)이라 하고, 발현몽을 형성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소망들을 잠재몽 내용(latent dream contents)이라 한다. 프로이트는 잠재몽 내용들을 발현몽으로 변환시키는 무의식적인 심리 작동을 꿈 작업(dream work)이라 하였다. - p89


프로이트는 꿈 형성(dream formation)을 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소원 성취(wish-fulfillment)라고 보았다. - p90


프로이트는 sexual을 신체나 장기로부터(꼭 성기뿐만 아니라) 비롯되는 관능적인 쾌감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리고 리비도(libido)는 그러한 관능적 쾌감의 기저에 있는 가설적인 에너지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리비도 이론은 일차적으로 내부 과정에 의해 생성되는 행동이나 정신활동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 p94


프로이트에 따르면 전이(transference)는 ‘환자의 본능에 근거한 소망이나 충동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즉, 전이는 정신분석 상황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냉정하게 심사숙고하지 않고 치료자와 강렬한 관계에 들어가 자신의 욕동을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 p106


환자는 분석 상황에서 전이 만족을 하게 되면 분석을 지속할 동기를 잃게 된다. 그렇기에 환자의 욕동 만족은 절제되어야 하고 분석가는 환자의 전이를 만족시켜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절제의 규칙이다. - p108


정신분석 이전 시기에 자아(ego)는 개인(person), 자기(self), 의식(consciousness)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방어(defense)는 의식으로부터 기억을 해리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는 억압(repression)도 이러한 단순한 개념의 방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억압이 요즘 알려진 의미로 변화되고 다양한 방어기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후다. - p129


쾌락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원본능은 현실에 맞게 적절하게 조절되어야만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그와 같이 원본능의 본능적 욕동을 현실에 맞게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이 자아(ego)다. - p135


내부 세계와 외부 현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자아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다. 자아는 현실 감각(sense of reality), 현실 검증(reality testing), 현실 적응(adaptation to reality)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외부 현실과 관계를 맺는다.


현실 감각: 영아의 신체적 감각이 증가하면서 같이 발달해 간다. 무엇이 신체 외부에서 느껴지는 것이고 무엇이 신체 내부의 감각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 감각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

현실 검증: 내면의 환상과 외부 현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는 한 사람이 정신병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예를 들어, 꿈속의 내용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나,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내면의 소망과 ‘나는 지금 대통령이다.’라는 현실 상황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현실검증 능력이다. 이는 쾌락주의가 점차 현실주의로 대체해 가면서 발달해 간다.

현실 적응: 전에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충동을 조절할 수 있고 외부에서 부과되는 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 p139


정신분석이론의 초기부터 프로이트는 불안을 신경증의 핵심으로 생각하여서, 견딜 수 없는 욕동과 그와 연관된 생각들이 불안을 유발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가득 찬 리비도가 정상적인 성적 표현 속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때 불안으로 변화된다고 보았다. 구조이론은 내면의 심리 상태를 원본능과 자아 그리고 초자아 사이의 투쟁으로 간주한다. 그렇기에 각 심리 구조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불안이 생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144


성숙한 처리방법부터 퇴행된 미숙한 방법까지 예를 들면, 우선 성숙한 해결방식은 교수님과 의논하고 주위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며 하나하나 논문을 진행하는 것이다. 남근기적인 해결방식은 실제 논문을 쓰는 것보다 교수님에게 잘 보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교수님과의 독점적 관계를 통해 논문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문기적인 해결방식은 어떤 규율과 방법만 잘 지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료만 계속 모으고 계획 세우는 것에만 매달리거나 연구방법론에 매달려 생산적인 진행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p154


자아는 자기(self)와 유사어가 아니라, 3분 된 인격구조의 하나다. 자아는 의식의 부분과 무의식의 부분이 다 관여하며, 무의식의 자아 부분은 방어기제를 담당한다. 한 사람의 행위는 직접 무의식에 의해 설명되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자아의 기능은 정신분석가들의 탐구의 초점이 되었다. - p162


갈등불안 그리고 방어는 증상 형성을 초래한다. 즉 갈등의 최종 결과는 증상 형성이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자아와 이드 사이의 절충이다. 이드로부터 나오는 소망은 한편으로는 자아에 의해 방어되고, 동시에 증상이라는 위장된 형태로 약화된 방출이 허용되는 것이다. - p163


억압은 자아의 무의식적인 행위이고, 신호 불안에 의한 반응이며, 심리적 재료들을 의식으로부터 떨어뜨려 보관하기 위해 반-부착하려는(anti-cathectic) 에너지를 사용하는 심적 작용으로 인식되었다. - p163


Anna Freud는 퇴행(regression), 억업(repression),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격리(isolation), 최소(undoing), 투사(projection), 함입 혹은 동일시(introjection or identification), 자기로의 전향(turning against the self), 반전(reversal)에 승화(sublimation)를 더하여 10개의 방어기제를 제시하였다. - p170


어떤 방어기제는 보다 적응적이고 기능적이어서 건강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어는 기본적으로 개인을 불안으로부터 보호하는 자아의 무의식적인 기능이다. 적절한 대처 능력이 결핍되었을 때, 자아가 너무 약할 때, 그리고 상황 자체가 아예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일 때, 개인은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방어기제는 개인이 이런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 p172


억압이 많을수록 억압된 생각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편견선입견이 많다. - p181


갈등을 일차 방어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불안이 생기는데, 이때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이차 방어기제들이 동원된다. 만약 전환(conversion)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불안을 처리하면 불안이 사라지는 대신 전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공격성을 말에게 전치(displacement)하여 말을 아버지 상징물로 삼은 다음(symbolization) 말을 두려워하며 피하면(avoidance) 말 공포증이 된다. 격리, 취소, 반동형성의 방어기제를 주로 써서 불안을 처리하게 되면 강박 증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갈등과 불안을 처리하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신경증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 p188


Hartmann은 적응을 “일차적으로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관계”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상호관계를 유기체와 환경 양자의 측면에서 관찰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관점에서 유기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세 가지다. 즉, 환경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자기 변형적(autoplastic) 방식, 자신에 맞추어 환경에 영향력을 주거나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타자 변형적(alloplastic) 방식 그리고 보다 호의적인 환경을 찾는 것이다. - p190


신경증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자신을 환경에 맞추려는 자기 변형적 성향이 있다. - p191


인격장애 환자들은 신경증 환자들과 대조적으로 타자 변형적 적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p193


Hartmann에게 환상은 단순한 현실로부터의 철수만은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 환상은 현실적인 이차과정 사고를 포기하고 퇴행하는 때로 병리적 현상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환상은 현실과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이고, 때로는 논리적인 사고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해결책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혹은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 철수하여 숨을 고르게 함으로써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창조적인 시선을 갖게도 한다. - p196


처음엔 본능적 충동에 대한 방어기제가 고유한 기능이었으나, 나중엔 그 자체가 하나의 자율적인 목적을 갖는 기능이 된 경우, 그 변화된 기능을 이차 자율기능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기능이나 의미를 기원적으로 최초의 기능으로 환원시키거나 혹은 전구 기능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Hartmann은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성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하였다고 하여 지적인 탐구를 단지 성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이러한 잘못을 Hartmann은 기원적 오류(genetic fallacy)라고 불렀다. - p198


중성화는 탈성욕동화(desexualization), 탈공격성화(deaggressivization) 모두를 포함한다. 전에는 리비도 부착(cathexis)이라는 방출을 통하여 욕동의 만족을 얻던 것을, 이제는 욕동의 방출 대신 자아의 영역 내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Hartmann의 중성화 개념은 프로이트의 승화 개념을 확장한 것이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갖는다. 첫째, 앞에서 언급했듯이 승화는 리비도만을 다루는 반면 중성화는 리비도와 공격성을 모두 탈본능한다. 둘째, 승화는 욕동이 고조됨에 따라 동원되는 방어기제인 반면 중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으로 단순한 방어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아 형성에 관여한다. 셋째, 승화는 욕동 에너지의 방향을 사회가 용납하는 쪽으로만 굴절시키는 것인 반면 중성화에서는 욕동 에너지가 이드 에너지에서 자아 에너지로 에너지 자체가 변형된다.

내재화(internalization)는 전에는 외부에 있던 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다. 외부 대상은 대상 표상으로 내면화되고, 점진적으로 대상 표상이 증가한다. 그러므로 내재화는 대상관계 개념과 함께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일련의 반응들(배고픔을 느껴서 울었을 때 엄머가 오고 이어서 배고픔이 사라지고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 기억들과 연계하여 점차 내부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전에는 배고프면 즉각 울었지만 이제는 배고파도 지연시킬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 때문에 인간은 생물학적 종으로서 발전함에 따라 점차 즉각적인 환경의 자극으로부터 독립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욕동 에너지를 중성화하는 능력과 욕동 방출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상호작용하여 에너지를 자아형성(ego building)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아형성 과정을 구조화(structuralization)라고 부르는데, 자아형성이 이뤄질수록 유아가 쓸 수 있는 자아 기능은 확대된다. - p198



Spitz가 볼 때 유아는 기능적으로 미분화(undifferentiated)되었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분화(non-differentiated)된 존재다. 즉 유아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하는 유아(infant-with-mother)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때 어머니가 유아와 심리적 융합(psychological fusion)을 이루어 유아의 ‘보조 자아(auxiliary ego)'와 같은 역할을 해 준다고 보았다. - p203


약 18개월이 되면 걸음마기 아이들은 급작스럽게 증가하는 그들의 자율성을 행하고 싶어 한다. 점점 더 그들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잘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서서히 분리감과 자기 과대감 및 전능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와 그들의 소망을 마술적으로 채워 주는 어머니를 갖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를 밀어 버리려는 욕구와 어머니에게 밀착하려는 욕구가 특정적으로 급변하며 나타난다. Mahler는 이런 모습을 ‘양가적 경향(ambitendency)'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고 하면서 실질적인 양가감정(ambivalence)이 dlal 이 시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 p220


어린아이는 자기를 만족시켜 주는 사람에 대해서 좋은 대상(good object)의 이미지를 발전시키고, 자기를 버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쁜 대상(bad object)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렇게 대상들을 완전히 좋음/완전히 나쁨(all-good/all-bad)으로 구분하는 것을 분열(splitting)이라 하는데, 아이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all-good이 되기도 하고 all-bad가 되기도 한다. - p222


아빠는 엄마와 아이 사이에 밀고 당기는 갈등이 많은 화해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뚜렷한 역할을 하게 된다. 공생단계나 분화단계 동안, 아빠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친밀감을 공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화해단계에 들어서면 아빠는 단순히 공유하는 위치에서 뚜렷한 제 3자로서 구별된 역할을 맡게 된다. 아빠는 엄마와 아이가 두 사람만의 공생관계에 빠지지 않게 해 줌으로써 엄마와 아이가 자율성을 얻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와 엄마가 각각 분리-개별화를 촉진할 수 있게 해준다. - p229


엄마가 있든 없든, 또는 자기를 만족시키든 그렇지 못하든 상관없이 엄마에 대한 일정한 고정된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는 능력을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라고 한다. - p229


대상영속성은 눈앞에 보이던 물체가 갑자기 사라져도 그 사물의 존재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조금 더 큰 12~18개월 된 아이들은 마지막 숨긴 장소에서 물건을 찾는다. - p231


대상항상성을 형성하고 개별성을 발달시키는 과정은 초기 성장과정에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상과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로서 자기 항상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일생을 두고 지속된다. - p233


대상은 내적 대상(internal object)과 외적 대상(external object)으로 구분될 수 있다. 외적 대상은 사회환경 내에 있으면서 직접 관찰이 가능한 실재하는 사람, 사물, 장소 등을 말한다. 내적 대상은 외부 대상과 관련되어 심리적으로 경험되는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서, 내적 대상이란 주체에 의해 경험되고 묘사되는 외부 대상의 이미지, 생각, 환상, 감정, 기억 등을 말한다. - p250


자기 표상은 대상 표상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자신에 대한 심리적 느낌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독립적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사람이나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되는 표상이다. 그렇기에 자기 표상은 타인 혹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 p254


타인들과 맺었던 중요한 관계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마음속으로 내재화된다. 이렇게 마음속에 형성된 대상들은 이론가에 따라 내적 대상(internal object), 대상과 자기의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s of object and self), 혹은 내사체(introjects) 등으로 불린다. - p256


애도(mourning)와 우울증(melancholia, 멜랑콜리아)는 모두 대상 상실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실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애도 반응을 거치면서 대상을 자신의 자아 안으로 동일시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여 ‘대상 표상’이 ‘자기 표상’이 된다. - p262


Hamilton(1990)은 환자들에게 발견되는 심리적 과정 중에서 특히 아이들의 초기 발달단계와 연관되는 심리기제들로 분화(differentiation)와 통합(integration), 투사(projection), 내면화(introjection), 분열(splitting), 이상화(idealization)와 평가절하(devaluation),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이행기 대상형성(transitional object formation), 대상항상성(object consistency), 동일시(identification) 등을 들었다. - p269


대상관계이론에서 말하는 분열은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Jacobson의 지적대로 유아의 경험은 쾌-불쾌 경험이라는 양축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즉, 전체 대상(whole object)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부분 대상(part object)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말한다. Kernberg는 1세 이전에는 이런 분열된 대상관계가 정상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2~3세 이후에는 부분 대상이 전체 대상으로 통합된다고 생각하였다. - p270


Kerngerg는 경계선인격장애의 핵심적인 정신병리는 3단계에서 4단계로 진행하지 못해서 통합된 자기 개념과 대상 개념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좋은 자기와 나쁜 자기 그리고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이 통합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원시적인 분열을 기본적인 방어기제로 사용하게 된다.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통합된 자기 개념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외부 대상에 의존하고 혼란스러운 대상 관계를 맺는다. - p272


Klein은 유아는 외부 대상을 그 본래의 모습으로 지각하기보다 먼저 내면의 환상을 투사하여 경험한 후 그 내용을 다시 내사해서 대상을 재경험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투사와 내사 과정을 반복하면서 대상을 더욱 정교하게 이해해 가는 과정이 바로 대상관계의 기본이 된다. - p284


Klein 이론의 특징은 죽음 본능의 파괴적 공격성이 출생 초기부터 있으며 유아 심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쾌락 추구가 삶의 동력이라는 프로이트와 달리, Klein은 원시적인 타고난 파괴성이 유아의 삶의 동력이 되고 또 갈등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유아 불안의 원인도 공격적 환상 때문이라고 보았다. Klein은 유아의 초기 정신은 공격성을 기본 동기로 대상과 환상적 관계들로 이뤄진 구성물이라고 보았다. - p286


무의식적인 환상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공포가 사라지는 현상은 정신분열병 환자의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이 된다. - p288


E씨의 불안이 좋아진 것은 내적 경험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생생한 내적 대상 경험의 영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 p289


Klein은 원하지 않는 자신의 일부분이나 원하지 않는 내부 대상을 분리시켜(split), 투사하고(projection), 해를 입히려 하고(harm), 조정하고 (control) 소유하려고 하는(possess) 것을 투사적 동일시라고 하였다. - p332


투사적 동일시의 첫 단계는 자기의 일부를 제거하려는 소망이란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이유는 제거하려는 부분이 내면으로부터 자기를 파괴하려는 위협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부분이 자기의 다른 부분들에 의해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고 느낄 때 그 부분을 다른 사람의 내부에 안전하게 두기 위해 투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 p341


이 사례의 아이는 부모로부터 학대당하고 침범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주위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도록 조종하고 있다. 특히 치료자를 압박하고 있다. 자신이 느꼈던 당혹감, 무력감, 좌절감, 분노 등을 동일하게 느끼도록 치료자를 조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Ogden은 투사적 동일시의 두 번째 시기를 ‘끌어들임의 단계(induction phase)'라고 불렀다. - p344


Hinshelwood에 의하면 일차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죽음의 본능에서 대상(생명의 원천으로서)을 파괴하려는 시기심으로의 이동이 한 단계라면, 생명의 원천을 파괴하려는 것에서 경쟁자로 공격성이 옮겨 가는 것(질투)은 그다음 단계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건강한 경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랑의 충동이 공격적 충동을 점점 더 완화시키고 점차적으로 더 지배하게 된다. - p392


감사는 관용에도 밀접하게 관여한다. 좋은 대상을 동화하면서 내적 풍요로움을 갖게 된 개인은 그 선물을 타인과 나눌 수 있다. 이런 나눔은 보다 다정한 외부 세계를 더욱 함입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 더욱 풍요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반면에 내적 풍요로움이나 자아의 강함이 충분하게 형성되지 못한 사람은 관용을 베풀고 난 후 그에 대한 인정과 감사를 지나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나눈다고 느끼지 않고 뺏겼다거나 궁핍해졌다며 피해 받았다고 느낀다. 이렇든 Klein은 시기심이 ‘칠대 죄악(seven dedly sins)'의 하나로 꼽히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더 나아가 삶의 근원인 좋은 대상들을 파괴하는 시기심은 무의식적으로는 가장 큰 죄악으로 느껴진다고 개인적인 소감을 밝혔다. 흥미롭게도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중에 Klein의 시각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 나온다.

시기심이 가장 나쁜 죄악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다른 죄들은 단지 하나의 덕목에 대한 죄인 데 비해 시기심은 모든 덕목과 모든 선함에 대한 죄이기 때문이다. - p399


인간의 조건에 대한 Klein의 최종적인 견해는 인간은 자신의 파괴성과 시기심이 스스로를 파편화시키려는 것에 저항하여 그 자신과 타인에 대한 경험을 통합하려고 분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 p400


Fairbairn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타인과 관계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분석의 대상은 독립된 ‘자기(self)'가 아닌 ’타자와 관계 속에 있는 자기(a self in relation to an other)'다. 즉, 그에게 분석의 요소는 자기, 대상(타인) 그리고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된다. - p409


유아는 부모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부모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부모의 선함을 유지하려는 환상 속에서 부모의 나쁜 측면들을 분리시켜 심리 내면으로 내재화한다. 즉, 내재화를 통해 ‘나쁨’은 유아의 내면에 자리 잡는다. 모든 아이들은 그의 부모가 정당하고 의지할 만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만약 아이들이 부모를 그렇게 느낄 수 없다면 ‘나쁜 무거운 짐(burden of badness)'을 그 자신에게 부과하게 된다. 내면에 자리 잡은 부모의 나쁜 것들을 동일시함으로써 이제 나쁜 것은 부모가 아닌 그 자신이고, 유아는 자기 사랑이 나쁘다고 느낀다. Fairbairn의 표현대로, 아이는 내면의 안전을 희생하는 대가로 외부의 안전을 산 것이다. - p439


분열성 상태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의 사랑이 대상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즉, 리비도 자체가 파괴적이며 리비도가 대상으로 향하게 되면 대상 상실이 뒤따르게 된다. 자아는 전혀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없게 되고 완전히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Fairbairn은 분열성 상태의 가장 특징적인 감정이 ‘쓸모 없음의 느낌’이라고 생각하였다. - p456


참자기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회에 순응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진정으로 존재하고 자발적이며 창조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자발성과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것이 참자기의 핵심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창조성을 갖기 때문에 상징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Winnicott은 건강한 개인은 꿈과 현실 사이의 중간 영역인 문화적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거짓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 상징사용 능력과 문화적 생활은 빈약해진다. 대신 극단적으로 산만하거나 집중하지 못한 채 외적 침범에 어떻게 반응할까 몰두하게 된다. - p491


선한 행동을 하고도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치 않게 선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신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J양의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다. 남에게 맞춰 주는 그녀의 모습은 거짓자기의 모습을 나타낸다. - p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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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나를 위한 용서 그 아름다운 용서의 기술
프레드 러스킨 지음, 장현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용서하기 위해서, 당신은 우선 거짓말이 나쁜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용서한다는 것은 것짓을 용인하는 것과는 다르다. - p12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망각하는 게 용서가 아니다. 용서란, 이미 일어난 나쁜 일이 비록 나의 과거를 망가뜨렸을지언정 오늘과 미래는 결코 파괴할 수 없다는 힘찬 자기 선언이다. - p17 

삶의 아름다움에 우리를 눈멀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울화가 우리에게 끼치는 가장 큰 피해다. - p34 

울화가 처음 발생하는 배경에는 언제나 두 가지 요소가 자리잡고 있음을 기억하자. 첫째, 당신에게 원하지 않던 일이 일어나고, 둘째, 그 시점에서 당신은 아픈 감정을 다스릴 어떤 방법도 알지 못한다. - p37 

화를 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응책인 경우는 매우 적다. 화를 내서 문제가 해결될 경우에만 이는 도움이 되는 것이다. - p41 

누군가에게 우리 문제의 원인을 미룸으로써 탓 돌리기 게임은 진행된다. 그런데 이 게임이 갖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문제의 원인을 우리 바깥에서 찾으면, 해결책 역시 바깥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 p54 

당신을 위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당신에 대한 권한을 주어버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당신을 상처낸 사람에게 당신의 느낌을 지배할 권한을 양도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 p67 

단언하건데, 자신이 아무 영향력도 갖지 못한 일을 반드시 되게 하려면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에게 문제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그 입장에서 최선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당신을 방해한다. 화가 나거나 절망한 상태,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기가 보통 때보다 훨씬 어렵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벌금 고지서를 쓰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교부할 수 없을 때,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p95 

실현 불가능한 규칙은 우리의 판단을 왜곡시킨다. 규칙을 관철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우리는 이 규칙이 야기하는 폐해를 보지 못한 채 규칙을 위반했다고 다른 사람들을 욕한다. 그리고 그들을 처벌한다면서 위반 딱지를 쓴다. 남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스스로 제동을 거는 것이다. 분노한 상태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함구로 굴면서, 정작 도움이 될 일은 안 하고 상처낼 일만 한다. 우리가 내건 규칙이 정말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 p109 

용서할 수 있는 준비로서 필수적인 세 가지 기본 조건을 열거해보겠다.  

^ 발생한 일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확히 알 것 

^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나에게 상처를 냈는지 분명히 의식할 것 

^ 나의 체험에 대해, 최소한 한두 명의 믿을 만한 친지와 얘기해볼 것 - p116 

용서란 평화의 느낌이다. 어떤 마음의 상처가 자기하고만 관계된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자기 느낌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고 마음먹을 때, 지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씩씩한 주인공으로 자신을 그려낼 수 있을 때 우리 마음 안에 들어서는 평화로움이다. - p121 

그 어느 누구에게도, 과거가 현재를 가두는 감옥이어서는 안 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과거의 아픈 기억을 해소할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용서는, 과거를 받아들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감옥 문의 열쇠를 우리 손에 쥐여준다. 용서하고 나면, 두려워할 일이 적어진다. - p126 

용서는 강함을 보이는 행위다. 자신의 느낌을 알고 말로 표현하고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강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 상했음을 분명히 하고도 그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남들에게 용기를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 p128 

용서란 개인적으로 공격받았다는 느낌에서 해방되는 것, 우리를 끊임없는 고통의 순환 속에 가두어놓은 '탓 돌리기'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겠다는 결심이다. - p130 

재결합이란, 당신에게 상처를 낸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감을 뜻한다. 용서란 이와 달리, 당신이 과거의 아주 괴로웠던 부분과 화해하는 한편 당신을 공격한 사람을 더 이상 비난하지않는 것을 가리킨다. - p131 

HEAL 실천을 위한 가이드(전문) 

1. 내 안에 아직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울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중에서, 이건 나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하나 고른다. 

2. 마음 집중 훈련을 3분에서 5분가량 실시한다. 심장 주변부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런 중에도 숨은 복부를 향해 깊고 느리게 들이쉬고 내쉰다. 

3. 아까 골라냈던 울화 상황에서 일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았을지, 잠시 궁리를 해본다. 이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긍정적인 희망문을 작성해본다. 

4. "나는 .....기를 희망했었다"라는 희망문을 기억해둔다. 

5. 희망문을 확정한 다음, 세상일이 늘 내 마음대로 되어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킨다. 되도록이면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도록 교육문을 작성한다. 동시에, 바라는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 

6. 나의 좋은 취지, 처음에 든 울화 상황에 대한 내 소망의 토대가 되었던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목표를 받아들인다. 

7. 이 긍정문을 따뜻한 마음으로 꼭 붙든다. 좋은 취지를 두세 번 반복해서 말한다.  

8. 아래의 사항들을 다짐하는 L문장을 만들어본다. 

-HEAL 연습을 실천할 것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의 좋은 취지에 따를 것 

-좋은 취지를 견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를 배워서 갖출 것 

-HEAL의 네 가지 항목을 차례대로, 최소한 두 번씩 연습할 것 

9. 깊은 복식 호흡을 30초에서 1분가량 천천히 계속한다.  

 

HEAL 실천을 위한 가이드(축약문) 

해결되지 않은 울화로 인해 화가 나거나 상처를 받을 때 언제나 쓸 수 있는 방법은,  

1.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천천히 두 번 반복하면서, 신경을 위장 쪽으로 완전히 집중시킨다. 

2. 세번빼 숨을 들이쉴 때, 내 마음을 경외로움과 평화로 채워주는 아름다운 경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본다. 긍정적인 느낌이 심장 주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위로가 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깊고 느린 복식 호흡은 여전히 병행한다.  

3. 지금 이 상황에서 일이 어떻게 되어가기를 내가 바라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이른 바탕으로 하여 개인적, 구체적, 긍정적인 희망문을 작성한다.  

4. 그러나 세상일은 내가 원하는 꼭 그대로만 되어가진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교육시킨다. 

5. 희망문은 지금 내가 겪는 울화에 관계된 구체적 소망을 나타낸다. 이 희망문 뒤에 숨어 있는 원래의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목표, 즉 나의 좋은 취지를 긍정한다.  

6. HEAL을 실천하고 나의 좋은 취지를 따르겠다는 장기적 다짐을 자기 자신에게 한다. - p277 

^분노나 마음 상함으로 인해 불쾌하게 지내는 시간을 인생에서 되도록이면 줄이고 싶다. 일이 내 뜻대로 되어가지 않아도 분별 있게 대응하고 싶다. 이 결심 덕분에 나는 이제 나 자신을, 남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생 자체까지도 용서할 수 있다. 

^인생은 좋은 일과 언짢은 일을 다 포함한다. 그런데도 나는 오로지 좋은 것만 경험하고 싶어진다면, 그게 과연 생각 있는 사람의 태도일까? 나는 좋은 것을 희망한다. 그리고 나쁜 것을 용서할 수 있음도 알고 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도전이다. 나는 여기서 살아남고 싶다. 희생자가 되기는 싫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사랑이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시험을 받는 셈이다. 내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도전을 나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나는 안다. 그런 식으로 남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하되 그럴 수 없는 문제는 그냥 넘겨버리기로 한다. 

^인생은 아름다움과 온갖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케케묵은 상처에 발이 묶여 있으면 이런 좋은 것을 체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원래 길에서 자꾸 탈선하는 나 자신을 용서한다. 

^사람은 누구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누군가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이해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첫걸음이 바로 용서다. 구체적으로 그가 무슨 짓으 했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완전하지 못하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 그러기를 바랄까? 

^나늘 포함하여 이 세상 사람들 전부가, 기본적으로는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을 다치는 것이 때로는, 남이 자기의 이익을 고려하여 한 말을 내가 내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임으로써 일어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것이 인생의 범상한 일부일진대, 거기에 그리 흥분할 게 있는가? 자기 이익이란 게 삶의 기본 원칙임을 아는데,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여기엔 나 자신도 포함된다-을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 p287 

교육문을 통해 당신은, 남을 상처입히고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으로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임을 받아드린다고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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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의식(意識)에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사가 인간 공통의 조건, 사회적·문화적 범주라든가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삶을 개선할 수 잇는 길이 무엇인가를 성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리라. 다행히도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현실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 p17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그런데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 p18 

사랑·부끄러움·고마움·행복을 정말로 느끼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점에서 감정은 의식의 주관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의식을 가장 객관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사랑에 빠질 때, 수치심을 느낄 때, 겁을 먹을 때, 행복에 겨울 때 우리를 강타하는 '실감'은,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관찰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혹은 우리가 과학이나 논리학으로 깨우치는 그 어떤 지식보다도 생생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은 한 귀로 흘려듣고 오직 그의 행동에만 무게를 두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자처럼 구는 반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더 중시하면서 마치 현상학자처럼 구는 모순된 자세를 종종 보이곤 한다. - p30  

자신이 능동적이고 강인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큼 거기서 맛보는 행복감도 커지기 마련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선택한 일이 행복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같은 이치로 보통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남과 같이 있을 때 자기가 명랑하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쉽게 가진다. 대체로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이유도 명랑성과 사교성이 이처럼 행복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p35 

감정의 의식 안의 상태를 말한다. 슬픔·두려움·떨림·지루함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심리적 엔트로피'를 조성한다. 무질서도를 뜻하는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내부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데 온통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과단성·민첩성 같은 바람직한 감정은 '심리적 반(反)엔트로피' 상태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추스르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으므로 아무 걸림돌 없이 정력을 우리가 선택한 과제로 온전히 투입할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지향점 또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표현한다. 목표를 얼마나 끈질기고 일관되게 추구하느냐는 동기 부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도·목표·동기 부여는 심리적 반엔트로피를 조성한다. 정신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작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면서 의식 안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질서가 없으면 정신적 과정은 두서가 없어지고 감정의 질은 급격히 저하된다. - p36 

심리적 엔트로피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일에서 가장 높이 나타났다. 결국 내적 동기 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상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준다. 동기 부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에게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p37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 p40 

... 이러한 순간의 공통점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일상 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을 나는 '몰입(沒入)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 p44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 p46 

   

 

 

 

 

 

 

 

 

 

 

 

 

 

 

 


하루의 리듬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고독으로 들어가기와 고독에서 빠져나오기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우울하다가도 여럿이 모인 곳에 가면 다시 생기가 감돈다는 건 수많은 연구에서 확인된 결과다. 고립되어 지내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도 저하되며 무기력해진다. 수동성‧ 고립감‧ 열등감처럼 좋지 않은 감정의 상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 가난한 사람,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한 사람같이 기댈 만한 언덕이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혼자 있으면 약해진다. - p58


그 원인은 무엇일까?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남과 어울릴 때 우리의 주의력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 구조화된다. 타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목표를 제공하고 행동의 결과를 곧바로 알려주는 효과를 낳는다. 남에게 시간을 물어보는 아주 간단한 교섭도 어느 정도의 사교술이 동원되어야 하는 결코 만만찮은 행위다.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는 목소리‧ 웃음‧ 몸짓에 크게 좌우된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 있고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과의 교제에는 집중이 필요하다. 반면에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혼자 있을 때는 정신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무언가 걱정거리를 찾게 된다. - p59


정말로 성숙해지려면 대화를 통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긴요한 것은 결국 고독을 견디는 능력, 아니, 고독을 즐기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 p61


이제까지 든 예에서 우리는 마치 사람은 무엇을 하고 누구와 같이 있고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그 내면이 영향을 받는 수동적 대상인 것처럼 말했다. 일면 타당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는가다. 집에서 혼자 살림을 하면서도 행복을 느끼고, 직장에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아기와 대화에 몰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눈부신 일상 생활은 결국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 p65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다. 문제는 일을 어떻게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서 어떤 경험을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 p84


여가 시간을 수동적 활동으로 채우면 아주 즐겁지는 않아도 어쨌든 골치 아픈 상황은 피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수동적 여가 활동의 바로 이런 점에 끌리는 듯하다. - p92


여가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정력을 쏟아야 한다. 사람을 성숙시키는 능동적 여가는 저절로 굴러오는 게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여가의 의미를 찾았다. 과학과 예술이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 연구, 시작(詩作), 그림 그리기, 작곡 등은 여가 활동으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 p100


우리는 여가 활동이 사회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원인과 결과로서 동시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회 집단의 생활 방식이 생명력을 잃고, 일이 지겨운 타성으로 변질되고, 공동체의 책임감이 그 의미를 잃어갈수록 여가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오락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기술적․ 경제적 난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 p102


자유롭지 못하므로 의미가 없는 일과 목적이 없으므로 의미가 없는 여가로 삶이 양극화되는 위험성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앞 장에서 소개한 창조적 개인들의 실례가 하나의 출구를 제시하는 건 아닐까. 전통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처럼 창조적 개인의 삶에서도 일과 놀이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 사람과는 달리 그들의 삶은 화석화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로부터 얻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미래를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 p103


산업화가 일찍 이루어진 서구 사회는 개인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압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서구인은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가 개인의 자기 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한다는 의식이 적어도 루소 이후로는 굳게 뿌리내렸다. 반면에 아시아의 전통적 사고 방식에 따르자면 개인은 타인과의 어울림을 통해 조형되고 정제되기 전까지는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 p106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 남들과의 어울림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타인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시하고, 그 영향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 경험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 관계에서 마음이 무질서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질서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목표와 다른 사람의 목표 사이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성공적인 어울림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다른 사람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긍정적 결과를 끌어낼 수 있고, 적절한 어울림에서 맛볼 수 있는 몰입 경험을 하게 된다. - p109


우리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선택한 것은 그와 나의 목표에 합치점이 있어서이며 서로 평등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서로에게 득을 준다. 이쪽이 저쪽을 착취하는 외적 강제 관계가 아니다. 이상적 우정은 결코 한 자리에 고여 있지 않다. 우정은 늘 새로이 정서적․ 지적 자극을 주어 권태나 무감각이 스며들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대상․ 활동․ 모험을 추구하고 새로운 태도․ 관념․ 가치를 개발하면서 친구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많은 경우 몰입 경험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활동의 내용이 금방 시시해지기 때문이지만, 친구는 일평생을 가도 끊임없이 자극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정서적․ 지적 기량을 갈고 닦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p110


허기와 관계없는 폭식이 부자연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애정․ 관심․ 일체감과 동떨어진 성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빗나간 자세다. - p113


과거에 성이 억압되었던 것은 성에 실린 강력한 에너지를 생산적 목표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적 자기 실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성의 에너지를 소비행위로 끌어모으기 위해 성욕의 발산이 권장된다. 어느 경우에든 삶의 가장 깊고 내밀한 희열을 가져올 수 있는 힘이 바깥 세계의 이익에 의해 뒤엎어지고 농락당하고 있다. - p113


경제적․ 정치적 결속의 강화에 혼인이 크게 기여하고 자식이 부모로부터 유산과 직위를 세습받던 시절에는 우정의 밑바탕이 되는 평등과 호혜의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몇 세대 사이에 가정은 필수 불가결한 경제적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다. 물질적 혜택에 의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가정이 주는 정서적 보상의 의미가 한층 부각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정은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최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다. - p114


가정의 형태가 아무리 변화무쌍하게 펼쳐져 왔다고는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곧 성이 다른 두 어른이 결합하여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자식에 대해 책임을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사실이다. - p116


오늘날 가정에서도 배우자간 성차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아버지의 기분은 가족 모두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아이들의 기분은 어머니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어머니의 기분은 식구들에게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약 40퍼센트의 아버지와 10퍼센트 미만의 어머니가 자식이 어떤 일을 해냈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고 대답한 반면, 45퍼센트의 어머니와 20퍼센트의 아버지가 자식들이 기분 좋아하면 자신들도 기분이 좋다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남자는 아직도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관심을 두는 반면, 여자는 아이들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가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 역할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 p118


날씨나 어제 저녁의 야구 경기처럼 아무리 하찮은 주제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우리 의식 안에 공동의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조심해서 가세요” 같은 인사 한마디를 통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고 나의 안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므로 밥 먹듯이 자주 이루어지는 만남에도 ‘현실에의 유지’라는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의식이 무질서로 와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능이 필요하다. - p120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독일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는 우리가 그 점에 있어서 얼마나 자기 기만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노이만은 수천 명의 응답자에게 산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 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또 한 장은 같은 배경에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질문은 “이 둘 중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였다. 한적한 곳을 선택한 사람이 60퍼센트였고 붐비는 곳을 고른 사람이 34퍼센트였다. 다음 질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둘 중 어디인가?”였다. 이 질문에는 61퍼센트가 붐비는 곳을 지목했고 23퍼센트가 한적한 곳을 짚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내려면 본인의 선택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서 그 사람이 내리는 판단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 p121


창조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해를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 p126


격랑을 헤치고 시티코프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영인 존 리드의 하루 일과에는 내면 지향적 성찰과 강도 높은 사회적 활동이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아침잠이 없는 사람이다. 언제나 새벽 다섯시면 눈을 떠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시각이 다섯시 반. 그때부터 집이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그날 일의 경중을 정한다. 아홉시 반이나 열시까지는 그렇게 나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수많은 면담이 이어진다. 기업의 총수는 부족의 추장과도 같다. 집무실로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개인성이 강한 예술 영역에서도 교제 능력은 중요하다. 조각가 니나 홀턴은 자신의 작업에서 교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가지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동료 예술가로부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런 질문도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종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단 소리다. 죽어라고 한자리에 붙어 있는다고 해서 일이 잘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가서 자기를 드러내야 할 때는 연고라는 것도 있어야 한다. 화랑 사람들도 알아야 하고 내 분야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거기에 속하고 싶건 속하고 싶지 않건 간에 어떤 동질적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 p127


결정론에 치우친 이 시나리오는 행복으로 종종 오해되어 받아들여지곤 하는 쾌활함을 행복의 척도로 삼을 때만 옳다. 쾌활함은 한 사람의 성격에서 상당히 안정되게 나타나는 특성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몰입 경험에서 맛볼 수 있는, 밖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내면의 즐거움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 p133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직장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첫째는 하나마나한 일을 한다는 불만이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고 사실은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세일즈맨들, 심지어는 과학자들 중에서도 가령 군수 산업이나 담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심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만저만 마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데서 느끼는 불만이다. 참신한 맛도 없고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일을 하다 보면 응당 가질 법한 생각이다. 몇 해만 지나면 그런 일은 눈을 감고서도 할 수 있게 되고 성장한다는 느낌보다는 정체하고 퇴보한다는 불안감이 싹트게 되나. 셋째는 직장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특히 상사가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간다.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사람이 자기 일에서 만족을 얻느냐 못 얻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보수나 안정성보다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인이다. - p136


사소한 변화에 주목하면 위대한 발견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지긋지긋하고 넌더리나던 일이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기다려지는 환상적 활동으로 변모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지금의 방식이 업무에 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셋째, 대안을 모색하면서 더 좋은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실험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직장인들이 더 힘든 자리로 승진하는 것은 그들이 이전의 직책에서 이런 단계를 충실히 밟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력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직장일에서 더욱 만족을 느낄 것이다. - p140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요구들 속에다 질서를 세우는 일은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한 긴 여정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처리해야 할 일의 성격과 자기 실력을 면밀히 비교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작업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일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가? 주어진 시간 안에 필요한 실력을 습득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 그 일을 단순하게 변형시키거나 쪼갤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하나라도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스트레스만 잔뜩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었던 상황이 몰입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탈바꿈된다. - p143


그들도 게오르크 클라인처럼 일과 여행을 결합시킴으로써 활기에 차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의무감에서 그렇게 하느냐 아니면 시간을 줄이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런 전략을 채택했느냐에 달려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일하다 보면 몰입 경험보다는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다. 의무감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창 밖의 구름을 보거나 잡지를 읽거나 옆자리에 앉은 승객과 담소를 나누는 편이 낫다. - p145


어느 집단에서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음식, 따뜻함, 신체적 보살핌, 돈이 제공하는 물질적 에너지며,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정신적 에너지다. 부모와 자신이 사고 방식․ 정서․ 활동․ 기억․ 꿈을 공유하지 못하면 그들의 관계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신히 유지된다. 그 경우 정신적 공감대는 원시적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 p147


같이 있는 시간이 정말로 즐겁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목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모두가 공통의 목표에 정성을 쏟을 줄 알아야 한다. - p151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지식이든 감정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쌍방이 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러자면 내키지 않더라도 자연히 정신적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대화에 정말로 몰입하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드높은 존재가 된다. - p154


흥미롭지 않은가. 그것은 내 만족의 원천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의식이랄까 의욕이 없으면 인생은 무료하고 허망할 것 같다. 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가치 있다고 느낄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만 밝히는 그런 인생을 나는 죽기보다 싫어한다.


우리는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사람의 성격을 자기목적성으로 충만해 있다고 말한다. - p155


자기목적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수동적으로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한다. 사람은 몰입을 낳기에 좋은 활동, 곧 정신 노동이나 능동적 여가 활동을 할때 비로소 몰입을 경험한다. - p160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력을 높이고 우리의 가능성을 채워 우리를 성장시키면서 행복을 맛보는 일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무위도식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 p162


관심을 사심 없이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그런 사람은 경이를 느낄 줄도 모르고 놀랄 줄도 모르고 감탄할 줄도 모르며, 인간의 공포와 편견이 정해 놓은 울타리를 감히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과 관심을 키우는 연습을 해오지 않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점에 신경을 써야 한다. - p168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 의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자아상이 없이는 멀리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자아상에는 맹점이 있다. 어린 시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이 자아상은 곧바로 의식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경직된 자아상에 자기를 비끄러맨 나머지 자아는 의식의 여러 내용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라는 인식에 머물지 않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지어낸 가공의 대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 정력을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만든 자아가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은 터무니없이 일방적이고 자기 주장에 급급한 자아를 공고히 굳히면서 큰다. 사랑 없이 자란 아이들이 키우는 자아는 자기애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고삐 풀린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아, 턱없이 과대망상증에 걸려든 자아가 엄연히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한다. 그런 삐뚤어진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면서 살아간다. 자아가 권력․ 돈․ 사랑․ 모험을 요구한다 싶으면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기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눈앞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빗나간 자아의 요구에 정력이 놀아나면 의식만이 아니라 주변 상황도 어지럽히게 마련이다. - p175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상념의 무게 중심은 자기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되면 현재의 불안이 과거를 채색하고 다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현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이 고리를 깨부수는 한 가지 묘책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 기분이 상승세에 있을 때 삶을 반추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보다 간접적으로 자아에 조화를 가져다 주는 목표와 인간 관계에 정력을 쏟는 것이다. - p180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혹은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하는 일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실 가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끼고 살아간다. 그런 입장에 놓이면 아까운 정력을 탕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이 집중력을 높이고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며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 p181


에이브러험 매슬로의 연구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임상적 관찰과 자기 실현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면접을 통해 그는 성장의 과정이 절정감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절정감은 자아와 환경의 일치를 뜻한다. 그것은 ‘내적 필요성’과 ‘외적 필요성’, 혹은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것’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매슬로는 말한다.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다.” - p182


오늘의 시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하여 알고 있는 내용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초월성을 가진 목표들의 새로운 터전을 발굴하는 것이다. 즉 삶에 의미를 주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신화는 고대의 신화들이 이미지와 비유와 사실을 통해 우리의 선조에게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가 현실을, 가까운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고대인들이 신화를 진심으로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율법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 p185


예언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는 과학자와 사상가가 꾸준히 쌓아올리고 있는 지식에서 바람직한 삶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에 대해 이미 밝혀진 지식만으로도 우리는 어떤 행동이 복잡성과 질서를 높이고 어떤 행동이 파괴를 낳는지 너무나 잘 안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 상호간의, 또 환경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재발견하고 있다. 작용과 반작용이 맞물려 있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질서와 에너지를 창조하기는 어려운 반면 무질서는 한순간에 도래한다는 걸 알았다. 만물은 긴밀하게 얽혀 있으므로 어떤 행동의 결과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먼 곳에서 파급 효과를 낳는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삶을 사려 깊게 관찰한 북미 인디언․ 불교․ 조로아스터교가 이런 방식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강조한 바 있는 가르침이다.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설득력 있는 언어로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늘의 과학이 풀어야 할 숙제다. - p186


상대성 원리나 최근의 프랙탈 기하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같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상이한 다발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관찰자의 시점, 보는 각도, 시간대, 렌즈의 배율에 따라서 동일한 밑바닥의 진리가 아주 판이한 모습으로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주입된 믿음과는 판이한 세계관이나 인생에 대한 발언을 이단으로 몰아붙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현실의 저변에서 진행되는 복잡한 과정은 국지적으로는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 p187


현대 과학이 알아낸 물질과 에너지의 성격은 선과 악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악은 물질계에서 나타나는 엔트로피(무질서)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영혼이나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괴롭게 만드는 원인물을 악이라고 부른다. 악은 대체로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하며 저급한 수준의 원리를 좇아 움직인다. 의식을 가진 인간이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 또는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존재가 타산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좋은 예다. 만일 과학자들이 파괴의 수단을 완성하는 데 전력 투구한다면, 그들은 아무리 최첨단의 지식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결국 엔트로피에 굴복하는 셈이 되고 만다. 엔트로피와 악에 저항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든 체계는 엔트로피와 악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거기에 맞서는 것이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힘이다. 선은 경직성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질서를 지켜나가려는 행위, 가장 발달된 체계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행위를 말한다. 선은 미래, 공동의 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행위를 뜻한다. 선은 타성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힘이요,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키려는 원동력이다. 새로운 조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고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의 투입을 요구한다. 그것을 이루어내는 능력을 우리는 덕이라고 부른다.

엔트로피가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쪽이 훨씬 편한데 왜 우리는 굳이 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영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진화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영생을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행동은 오래도록 울려퍼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상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 의식이 죽고 난 뒤 어딘가에 보존되든 아니면 깡그리 사라지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전체 현실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의 일부분으로서 영원히 남으리란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미래에 더 많은 정력을 투자할수록 우리는 그 생명의 일부분으로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 거대한 진화의 틀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의 의식은 작은 개울이 거대한 강물로 합류하듯이 우주와 하나가 된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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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에서 대상관계와 자아기능 - The Self And The Ego In Psychotheraoy
N. Gregory hamilton 지음, 김진숙 외 옮김 / 학지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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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관계이론가들은 인간을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욕구가 주된 동기인 존재로 생각한다. -p17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감정을 처리하며 다른 사람을 대하는지는 전통적으로 자아기능(ego functioning)이라 불려 왔다. - p18 

대상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소원함은 욕동에 대해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에 맞서 내적 관계와 외적 관계를 방어하는 것이다. - p19 

A씨의 치료 초기에 치료자는 욕동이론-자아심리학과 대상관계이론을 혼합했다. 자아심리학이론에서는 성적·공격적 충동과 욕동이 원초아에서 분출되는 것으로 여긴다. 자아는 초자아의 압력과 완화되지 않은 욕동의 방출을 흔히 용인하지 않는 외적 사회의 현실 및 생리적 현실에 대한 인식 때문에 방어와 방출을 위한 대안적 통로를 발달시킨다. 따라서 정교하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이 모델은 밑에서부터 압력을 가하는 힘과 이 힘을 생산적이거나 부적응적인 결과로 이끄는 저항과 방어에 맞서는 힘에 초점을 둔다(Hamilton, 1989). 욕동과 정서를 의식적인 자아의 통제 아래 두려고 시도하는 이런 접근에서 방어는 자기인식의 목표를 거스르는 저항으로 여겨진다. 저항분석은 실제로 무의식을 의식화하고 원초아와 초자아를 자아로 대체하는 도구와 과정이 된다. - p22 

Klein과 Riviere(1964)가 언급했듯이, 애도(grieving)는 감정적으로 상반된 것을 동시에 마음에 두는 능력, 즉 사람과 사물을 현재 모습이나 과거의 모습대로 소중히 여기지만 여전히 그들의 현재 결점이나 부재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을 요구한다. C씨는 그 사고나 아들과 그 자신의 건강 및 그의 이전의 직업적 능력의 상실에 대해 슬픔을 느끼거나 수용할 수 없었다. 이런 주제는 그가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화만 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비록 장기기억 속에서 과거의 온전한 대상관계를 기억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상반된 것을 동시에 마음에 보유할 수 있는 자아 능력이 없었다. - p51 

Winnicott은 부모가 아동의 감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과도한 순응을 요구할 때, 아동은 진정한 친밀함에 대해 단념하고 가까워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순응적인 거짓 자기를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꾸며 낸 모습에 만족하는 대가로 애착을 얻는다. 화나고 외로운 진짜 자기(the true self)는 내면으로, 무의식으로 물러난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은 적이 없는 이런 진짜 자기의 측면은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분리된 채 존재하고, 영원히 버림받는다. Winnicott의 영향을 받은 자기심리학자들은 '진짜 자기'에 대한 공감적 조율을 적절한 치료로 제안한다. - p54 

분열(splitting)은 모순된 경험을 분리된 상태로 두는 정신 활동과 때로는 대인(對人) 간의 활동을 일컫는다. Klein(1946)의 본래 정의와 Fairbairn(1954)의 분리된 자아-대상 구도에 대한 설명에 기초하여 미국의 정신과의사들은 비록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나타나긴 하지만 극단적 분열이 경계선 성격의 뚜렷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대상관계의 발달을 기술한 Mahler의 분리-개별화 도식에서 분열은 재접근단계 유아가 보이는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 사이를 오가며 변동하는 상태에 상응한다. Kohut(1971)과 Stern(1985)은 이런 자기-분할(self-division)을 자기 응집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부적절한 자기-대상 기능으로 인한 장애의 산물로 간주한다. - p68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기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을 확립할 때 아이가 피상적으로 부모의 기대에 순응하려는 것이 아이 자신의 진정한 욕구보다 우세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의 진정한 감정과 욕구를 부모가 부인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너무 강력하여 아이가 친밀함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부모의 기대와 동일시하고 마치 자기가 부모의 기대인 것처럼 동일시하고 실제로 자기를 그렇게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자신이 정말 실재하지 않는다는 느낌, 확실히 실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가져올 수 있다. Winnicott은 이런 반응의 결과, 거짓 자기가 취약하고 외롭고 격분한 '진짜' 자기를 감추고 보호한다는, 부수적이고 아주 무의식적이며 은밀한 감각이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이런 관계 구도는 자기-타인 관계가 아니라 자기-자기 관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기술했던 것과 다르다. 거짓 자기 기능에서는 진짜 자기와 대상 간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기가 되며, 심지어 대상의 기대조차 자기가 된다. 정말 실재라고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유는 개인이 실재냐 실재가 아니냐를 규정하려면 자기와 대상이라는 이원성을 반드시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상적인 관계성과 사회적인 교제조차도 거짓 자기 기능에서는 실체가 없는 가공적인 것이 된다. 그것들은 Fairbairn(1954)과 Guntrip(1969)이 묘사한 분열성적 소외와 철회에 가까운, 외부세계로부터 좀 더 근본적인 철회를 뒤덮고 감춘다. - p107 

만약 혼란의 정도가 좀 더 심한 사람뿐만 아니라 좀 더 건강한 사람도 대상관계에서 변동을 겪는다면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장에서 논의된 두 사례 모두 좀 더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의 순간에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복잡하고 조절된 자기-대상 이미지와 정서-감각을 더 많이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좀 더 건강한 사람은 자아능력의 더 많은 부분이 더 자주 활성화되고, 그래서 그들 자신의 좋은 자질과 덜 좋은 자질을 동시에 인식하며 자신의 이런 모순된 측면을 수용한다. 이들은 자신의 내적 대상과 외적 대상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과 연민 그리고 조절된 최책감을 표현한다. 이들의 감정은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대상관계의 복잡성에 맞는 복잡한 방식으로 통합된다. 자아는 분화하고 통합하고 균형 잡고 그리고 조절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이 된다. 특히 이들은 타인과 동일시하고 공감하고 영향을 주고받고 관계하는 능력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자기와 타인 그리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주된 대상관계 패턴이 무너지면 자신이 이전에 다르게 느끼고 행동했다는 것을 흔히 잊어버리는 많은 경계선 환자와는 달리, 이전의 좀 더 균형 잡혔던 기능을 기억하는 능력을 대개 유지한다. 

정서가 통합적인 자아기능을 압도할 때, 중독성이나 혹은 구조적 뇌손상이 자아능력을 손상시킬 때, 극단적인 대인관계 사건이나 생애 과제가 이용가능한 기존의 관계 방식과 맞지 않을 때, 그리고 부모가 삶의 한 영역에서 담아내기(containment)와 공감하기에 지속적으로 실패하여 대체적으로는 건강한 사람을 삶의 많은 도전 가운데 한 부분에 취약하게 만들었을 때 좀 더 건강한 대상관계도 흔들린다. - p174 

환자가 자신의 꿈을 기술한 후 치료자가 "무엇이 마음에 떠오르나요?"라고 묻는 단순한 질문은 연상이라는 자아기능을 활용하도록 주문한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라는 질문은 인지나 지각이 아닌 정서에 대한 기억을 암시한다. "내가 말없이 있으면, 이런 상황이 당신이 어머니와 놀고 싶었을 때 어머니가 책을 읽으셨던 일이 떠오르나 봅니다."라는 해석은 치료 중에 겪는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기억을 비교하고 대비시키는 통합적 자아기능을 암시한다. - p198 

자신을 추스른다는 것은 정서를 조절하는 자아기능으로 볼 수 있다. - p199 

대상관계 접근에서는 억제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어떤 것을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접어두고, 일시적으로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저변의 기제는 욕동이나 충동의 억제가 아니라 주의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하는 인지적인 노력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자아가 대상관계의 상태나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 p200 

"아마 당신은 당신의 형과 누이들처럼 내가 인기있는 운동선수이고, 내가 당신에게 '그냥 해 봐라.' 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전이를 지적함으로써 치료자는 환자가 통찰을 갖게 되도록, 즉 사람들이 그의 내적 대상과 다를 가능성이 높은 때에도 그들을 내적인 대상으로 본다는 점을 깨닫도록 유도했다. 이런 통찰만으로도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통찰은 실제로 그의 내적인 대상관계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치료자와 환자 간에 발생하는 전이가 갖는 치료적 가치는 그것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즉시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환자가 예상하는 것과 다르게 치료자가 반응함으로써 환자의 내적인 관계를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환자는 자신이 전이를 통해 외부로 전가했었던 것을 이제 다소 변형된 행태로 다시 내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전에 치료자는 환자에게 '그저 자신감을 가지라.'고 요구하기보다 정서적으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었다. 치료자의 이런 태도는 환자에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주었으며, 이것은 전이에 대한 해석이 갖는 담아내기의 측면이다. - p210 

L씨의 예에서 치료자는 환자가 예상하고 있던 역할에 따르지 않고 치료자를 '무조건 자신감을 갖는' 방법을 아는 사람으로 보는 환자의 이상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담아내는 기능을 수행했다. 즉, 치료자는 환자를 정서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 p211 

이제 나는 이런 발달단계 가운데 어떠한 단계든 순조롭고 순차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다. 사람들은 심지어 유아조차도 다른 사람과 관계하면서 자신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하고, 아울러 투사와 내사를 통해 누가 자기이고 누가 대상인지를 때때로 바꾸고 모호하게 하는 능력도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상적으로, 적어도 성인에게서는 환자가 자신과 타인에게 갖는 다양한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과 이런 경험이 기억과 전이, 역전이 그리고 현재의 관계에 어떤 관련을 갖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관계성의 궁극적 혹은 기본적 단위를 찾는 것보다 더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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