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의식(意識)에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사가 인간 공통의 조건, 사회적·문화적 범주라든가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삶을 개선할 수 잇는 길이 무엇인가를 성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리라. 다행히도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현실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 p17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그런데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 p18 

사랑·부끄러움·고마움·행복을 정말로 느끼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점에서 감정은 의식의 주관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의식을 가장 객관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사랑에 빠질 때, 수치심을 느낄 때, 겁을 먹을 때, 행복에 겨울 때 우리를 강타하는 '실감'은,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관찰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혹은 우리가 과학이나 논리학으로 깨우치는 그 어떤 지식보다도 생생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은 한 귀로 흘려듣고 오직 그의 행동에만 무게를 두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자처럼 구는 반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더 중시하면서 마치 현상학자처럼 구는 모순된 자세를 종종 보이곤 한다. - p30  

자신이 능동적이고 강인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큼 거기서 맛보는 행복감도 커지기 마련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선택한 일이 행복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같은 이치로 보통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남과 같이 있을 때 자기가 명랑하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쉽게 가진다. 대체로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이유도 명랑성과 사교성이 이처럼 행복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p35 

감정의 의식 안의 상태를 말한다. 슬픔·두려움·떨림·지루함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심리적 엔트로피'를 조성한다. 무질서도를 뜻하는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내부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데 온통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과단성·민첩성 같은 바람직한 감정은 '심리적 반(反)엔트로피' 상태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추스르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으므로 아무 걸림돌 없이 정력을 우리가 선택한 과제로 온전히 투입할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지향점 또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표현한다. 목표를 얼마나 끈질기고 일관되게 추구하느냐는 동기 부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도·목표·동기 부여는 심리적 반엔트로피를 조성한다. 정신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작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면서 의식 안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질서가 없으면 정신적 과정은 두서가 없어지고 감정의 질은 급격히 저하된다. - p36 

심리적 엔트로피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일에서 가장 높이 나타났다. 결국 내적 동기 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상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준다. 동기 부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에게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p37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 p40 

... 이러한 순간의 공통점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일상 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을 나는 '몰입(沒入)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 p44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 p46 

   

 

 

 

 

 

 

 

 

 

 

 

 

 

 

 


하루의 리듬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고독으로 들어가기와 고독에서 빠져나오기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우울하다가도 여럿이 모인 곳에 가면 다시 생기가 감돈다는 건 수많은 연구에서 확인된 결과다. 고립되어 지내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도 저하되며 무기력해진다. 수동성‧ 고립감‧ 열등감처럼 좋지 않은 감정의 상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 가난한 사람,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한 사람같이 기댈 만한 언덕이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혼자 있으면 약해진다. - p58


그 원인은 무엇일까?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남과 어울릴 때 우리의 주의력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 구조화된다. 타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목표를 제공하고 행동의 결과를 곧바로 알려주는 효과를 낳는다. 남에게 시간을 물어보는 아주 간단한 교섭도 어느 정도의 사교술이 동원되어야 하는 결코 만만찮은 행위다.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는 목소리‧ 웃음‧ 몸짓에 크게 좌우된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 있고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과의 교제에는 집중이 필요하다. 반면에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혼자 있을 때는 정신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무언가 걱정거리를 찾게 된다. - p59


정말로 성숙해지려면 대화를 통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긴요한 것은 결국 고독을 견디는 능력, 아니, 고독을 즐기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 p61


이제까지 든 예에서 우리는 마치 사람은 무엇을 하고 누구와 같이 있고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그 내면이 영향을 받는 수동적 대상인 것처럼 말했다. 일면 타당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는가다. 집에서 혼자 살림을 하면서도 행복을 느끼고, 직장에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아기와 대화에 몰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눈부신 일상 생활은 결국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 p65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다. 문제는 일을 어떻게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서 어떤 경험을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 p84


여가 시간을 수동적 활동으로 채우면 아주 즐겁지는 않아도 어쨌든 골치 아픈 상황은 피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수동적 여가 활동의 바로 이런 점에 끌리는 듯하다. - p92


여가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정력을 쏟아야 한다. 사람을 성숙시키는 능동적 여가는 저절로 굴러오는 게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여가의 의미를 찾았다. 과학과 예술이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 연구, 시작(詩作), 그림 그리기, 작곡 등은 여가 활동으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 p100


우리는 여가 활동이 사회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원인과 결과로서 동시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회 집단의 생활 방식이 생명력을 잃고, 일이 지겨운 타성으로 변질되고, 공동체의 책임감이 그 의미를 잃어갈수록 여가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오락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기술적․ 경제적 난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 p102


자유롭지 못하므로 의미가 없는 일과 목적이 없으므로 의미가 없는 여가로 삶이 양극화되는 위험성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앞 장에서 소개한 창조적 개인들의 실례가 하나의 출구를 제시하는 건 아닐까. 전통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처럼 창조적 개인의 삶에서도 일과 놀이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 사람과는 달리 그들의 삶은 화석화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로부터 얻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미래를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 p103


산업화가 일찍 이루어진 서구 사회는 개인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압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서구인은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가 개인의 자기 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한다는 의식이 적어도 루소 이후로는 굳게 뿌리내렸다. 반면에 아시아의 전통적 사고 방식에 따르자면 개인은 타인과의 어울림을 통해 조형되고 정제되기 전까지는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 p106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 남들과의 어울림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타인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시하고, 그 영향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 경험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 관계에서 마음이 무질서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질서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목표와 다른 사람의 목표 사이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성공적인 어울림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다른 사람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긍정적 결과를 끌어낼 수 있고, 적절한 어울림에서 맛볼 수 있는 몰입 경험을 하게 된다. - p109


우리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선택한 것은 그와 나의 목표에 합치점이 있어서이며 서로 평등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서로에게 득을 준다. 이쪽이 저쪽을 착취하는 외적 강제 관계가 아니다. 이상적 우정은 결코 한 자리에 고여 있지 않다. 우정은 늘 새로이 정서적․ 지적 자극을 주어 권태나 무감각이 스며들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대상․ 활동․ 모험을 추구하고 새로운 태도․ 관념․ 가치를 개발하면서 친구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많은 경우 몰입 경험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활동의 내용이 금방 시시해지기 때문이지만, 친구는 일평생을 가도 끊임없이 자극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정서적․ 지적 기량을 갈고 닦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p110


허기와 관계없는 폭식이 부자연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애정․ 관심․ 일체감과 동떨어진 성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빗나간 자세다. - p113


과거에 성이 억압되었던 것은 성에 실린 강력한 에너지를 생산적 목표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적 자기 실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성의 에너지를 소비행위로 끌어모으기 위해 성욕의 발산이 권장된다. 어느 경우에든 삶의 가장 깊고 내밀한 희열을 가져올 수 있는 힘이 바깥 세계의 이익에 의해 뒤엎어지고 농락당하고 있다. - p113


경제적․ 정치적 결속의 강화에 혼인이 크게 기여하고 자식이 부모로부터 유산과 직위를 세습받던 시절에는 우정의 밑바탕이 되는 평등과 호혜의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몇 세대 사이에 가정은 필수 불가결한 경제적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다. 물질적 혜택에 의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가정이 주는 정서적 보상의 의미가 한층 부각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정은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최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다. - p114


가정의 형태가 아무리 변화무쌍하게 펼쳐져 왔다고는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곧 성이 다른 두 어른이 결합하여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자식에 대해 책임을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사실이다. - p116


오늘날 가정에서도 배우자간 성차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아버지의 기분은 가족 모두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아이들의 기분은 어머니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어머니의 기분은 식구들에게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약 40퍼센트의 아버지와 10퍼센트 미만의 어머니가 자식이 어떤 일을 해냈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고 대답한 반면, 45퍼센트의 어머니와 20퍼센트의 아버지가 자식들이 기분 좋아하면 자신들도 기분이 좋다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남자는 아직도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관심을 두는 반면, 여자는 아이들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가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 역할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 p118


날씨나 어제 저녁의 야구 경기처럼 아무리 하찮은 주제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우리 의식 안에 공동의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조심해서 가세요” 같은 인사 한마디를 통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고 나의 안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므로 밥 먹듯이 자주 이루어지는 만남에도 ‘현실에의 유지’라는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의식이 무질서로 와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능이 필요하다. - p120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독일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는 우리가 그 점에 있어서 얼마나 자기 기만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노이만은 수천 명의 응답자에게 산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 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또 한 장은 같은 배경에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질문은 “이 둘 중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였다. 한적한 곳을 선택한 사람이 60퍼센트였고 붐비는 곳을 고른 사람이 34퍼센트였다. 다음 질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둘 중 어디인가?”였다. 이 질문에는 61퍼센트가 붐비는 곳을 지목했고 23퍼센트가 한적한 곳을 짚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내려면 본인의 선택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서 그 사람이 내리는 판단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 p121


창조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해를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 p126


격랑을 헤치고 시티코프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영인 존 리드의 하루 일과에는 내면 지향적 성찰과 강도 높은 사회적 활동이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아침잠이 없는 사람이다. 언제나 새벽 다섯시면 눈을 떠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시각이 다섯시 반. 그때부터 집이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그날 일의 경중을 정한다. 아홉시 반이나 열시까지는 그렇게 나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수많은 면담이 이어진다. 기업의 총수는 부족의 추장과도 같다. 집무실로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개인성이 강한 예술 영역에서도 교제 능력은 중요하다. 조각가 니나 홀턴은 자신의 작업에서 교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가지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동료 예술가로부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런 질문도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종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단 소리다. 죽어라고 한자리에 붙어 있는다고 해서 일이 잘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가서 자기를 드러내야 할 때는 연고라는 것도 있어야 한다. 화랑 사람들도 알아야 하고 내 분야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거기에 속하고 싶건 속하고 싶지 않건 간에 어떤 동질적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 p127


결정론에 치우친 이 시나리오는 행복으로 종종 오해되어 받아들여지곤 하는 쾌활함을 행복의 척도로 삼을 때만 옳다. 쾌활함은 한 사람의 성격에서 상당히 안정되게 나타나는 특성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몰입 경험에서 맛볼 수 있는, 밖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내면의 즐거움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 p133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직장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첫째는 하나마나한 일을 한다는 불만이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고 사실은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세일즈맨들, 심지어는 과학자들 중에서도 가령 군수 산업이나 담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심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만저만 마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데서 느끼는 불만이다. 참신한 맛도 없고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일을 하다 보면 응당 가질 법한 생각이다. 몇 해만 지나면 그런 일은 눈을 감고서도 할 수 있게 되고 성장한다는 느낌보다는 정체하고 퇴보한다는 불안감이 싹트게 되나. 셋째는 직장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특히 상사가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간다.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사람이 자기 일에서 만족을 얻느냐 못 얻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보수나 안정성보다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인이다. - p136


사소한 변화에 주목하면 위대한 발견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지긋지긋하고 넌더리나던 일이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기다려지는 환상적 활동으로 변모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지금의 방식이 업무에 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셋째, 대안을 모색하면서 더 좋은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실험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직장인들이 더 힘든 자리로 승진하는 것은 그들이 이전의 직책에서 이런 단계를 충실히 밟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력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직장일에서 더욱 만족을 느낄 것이다. - p140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요구들 속에다 질서를 세우는 일은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한 긴 여정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처리해야 할 일의 성격과 자기 실력을 면밀히 비교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작업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일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가? 주어진 시간 안에 필요한 실력을 습득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 그 일을 단순하게 변형시키거나 쪼갤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하나라도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스트레스만 잔뜩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었던 상황이 몰입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탈바꿈된다. - p143


그들도 게오르크 클라인처럼 일과 여행을 결합시킴으로써 활기에 차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의무감에서 그렇게 하느냐 아니면 시간을 줄이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런 전략을 채택했느냐에 달려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일하다 보면 몰입 경험보다는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다. 의무감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창 밖의 구름을 보거나 잡지를 읽거나 옆자리에 앉은 승객과 담소를 나누는 편이 낫다. - p145


어느 집단에서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음식, 따뜻함, 신체적 보살핌, 돈이 제공하는 물질적 에너지며,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정신적 에너지다. 부모와 자신이 사고 방식․ 정서․ 활동․ 기억․ 꿈을 공유하지 못하면 그들의 관계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신히 유지된다. 그 경우 정신적 공감대는 원시적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 p147


같이 있는 시간이 정말로 즐겁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목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모두가 공통의 목표에 정성을 쏟을 줄 알아야 한다. - p151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지식이든 감정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쌍방이 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러자면 내키지 않더라도 자연히 정신적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대화에 정말로 몰입하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드높은 존재가 된다. - p154


흥미롭지 않은가. 그것은 내 만족의 원천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이루어내는 것. 그런 의식이랄까 의욕이 없으면 인생은 무료하고 허망할 것 같다. 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가치 있다고 느낄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만 밝히는 그런 인생을 나는 죽기보다 싫어한다.


우리는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사람의 성격을 자기목적성으로 충만해 있다고 말한다. - p155


자기목적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수동적으로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한다. 사람은 몰입을 낳기에 좋은 활동, 곧 정신 노동이나 능동적 여가 활동을 할때 비로소 몰입을 경험한다. - p160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력을 높이고 우리의 가능성을 채워 우리를 성장시키면서 행복을 맛보는 일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무위도식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 p162


관심을 사심 없이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그런 사람은 경이를 느낄 줄도 모르고 놀랄 줄도 모르고 감탄할 줄도 모르며, 인간의 공포와 편견이 정해 놓은 울타리를 감히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과 관심을 키우는 연습을 해오지 않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점에 신경을 써야 한다. - p168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 의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자아상이 없이는 멀리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자아상에는 맹점이 있다. 어린 시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이 자아상은 곧바로 의식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경직된 자아상에 자기를 비끄러맨 나머지 자아는 의식의 여러 내용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라는 인식에 머물지 않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지어낸 가공의 대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 정력을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만든 자아가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은 터무니없이 일방적이고 자기 주장에 급급한 자아를 공고히 굳히면서 큰다. 사랑 없이 자란 아이들이 키우는 자아는 자기애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고삐 풀린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아, 턱없이 과대망상증에 걸려든 자아가 엄연히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한다. 그런 삐뚤어진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면서 살아간다. 자아가 권력․ 돈․ 사랑․ 모험을 요구한다 싶으면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기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눈앞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빗나간 자아의 요구에 정력이 놀아나면 의식만이 아니라 주변 상황도 어지럽히게 마련이다. - p175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상념의 무게 중심은 자기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되면 현재의 불안이 과거를 채색하고 다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현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이 고리를 깨부수는 한 가지 묘책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 기분이 상승세에 있을 때 삶을 반추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도 있는데 그것은 보다 간접적으로 자아에 조화를 가져다 주는 목표와 인간 관계에 정력을 쏟는 것이다. - p180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혹은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하는 일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실 가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끼고 살아간다. 그런 입장에 놓이면 아까운 정력을 탕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이 집중력을 높이고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며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 p181


에이브러험 매슬로의 연구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임상적 관찰과 자기 실현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면접을 통해 그는 성장의 과정이 절정감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절정감은 자아와 환경의 일치를 뜻한다. 그것은 ‘내적 필요성’과 ‘외적 필요성’, 혹은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것’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매슬로는 말한다.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다.” - p182


오늘의 시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하여 알고 있는 내용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초월성을 가진 목표들의 새로운 터전을 발굴하는 것이다. 즉 삶에 의미를 주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신화는 고대의 신화들이 이미지와 비유와 사실을 통해 우리의 선조에게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가 현실을, 가까운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고대인들이 신화를 진심으로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율법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 p185


예언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는 과학자와 사상가가 꾸준히 쌓아올리고 있는 지식에서 바람직한 삶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에 대해 이미 밝혀진 지식만으로도 우리는 어떤 행동이 복잡성과 질서를 높이고 어떤 행동이 파괴를 낳는지 너무나 잘 안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 상호간의, 또 환경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재발견하고 있다. 작용과 반작용이 맞물려 있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질서와 에너지를 창조하기는 어려운 반면 무질서는 한순간에 도래한다는 걸 알았다. 만물은 긴밀하게 얽혀 있으므로 어떤 행동의 결과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먼 곳에서 파급 효과를 낳는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삶을 사려 깊게 관찰한 북미 인디언․ 불교․ 조로아스터교가 이런 방식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강조한 바 있는 가르침이다.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설득력 있는 언어로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늘의 과학이 풀어야 할 숙제다. - p186


상대성 원리나 최근의 프랙탈 기하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같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상이한 다발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관찰자의 시점, 보는 각도, 시간대, 렌즈의 배율에 따라서 동일한 밑바닥의 진리가 아주 판이한 모습으로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주입된 믿음과는 판이한 세계관이나 인생에 대한 발언을 이단으로 몰아붙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현실의 저변에서 진행되는 복잡한 과정은 국지적으로는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 p187


현대 과학이 알아낸 물질과 에너지의 성격은 선과 악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악은 물질계에서 나타나는 엔트로피(무질서)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영혼이나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괴롭게 만드는 원인물을 악이라고 부른다. 악은 대체로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하며 저급한 수준의 원리를 좇아 움직인다. 의식을 가진 인간이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 또는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존재가 타산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좋은 예다. 만일 과학자들이 파괴의 수단을 완성하는 데 전력 투구한다면, 그들은 아무리 최첨단의 지식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결국 엔트로피에 굴복하는 셈이 되고 만다. 엔트로피와 악에 저항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든 체계는 엔트로피와 악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거기에 맞서는 것이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힘이다. 선은 경직성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질서를 지켜나가려는 행위, 가장 발달된 체계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행위를 말한다. 선은 미래, 공동의 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행위를 뜻한다. 선은 타성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힘이요,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키려는 원동력이다. 새로운 조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고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의 투입을 요구한다. 그것을 이루어내는 능력을 우리는 덕이라고 부른다.

엔트로피가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쪽이 훨씬 편한데 왜 우리는 굳이 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영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진화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영생을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행동은 오래도록 울려퍼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상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 의식이 죽고 난 뒤 어딘가에 보존되든 아니면 깡그리 사라지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전체 현실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의 일부분으로서 영원히 남으리란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미래에 더 많은 정력을 투자할수록 우리는 그 생명의 일부분으로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 거대한 진화의 틀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의 의식은 작은 개울이 거대한 강물로 합류하듯이 우주와 하나가 된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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