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동문선 현대신서 178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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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속성은 부정확한 언표만을 만드는 데 있다. 언어의 이런 실패로부터 남은 흔적이 바로 '근사해'란 말이다('근사해'의 올바른 라틴어 번역은 '입세(ipse)'일 것이다. 그런데 '입세'란 자기 자신, 혹은 그/그녀 자신이 몸소란 뜻이다). - p41

 

그렇지만 정념을(다만 그 지나침을) 완전히 감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주체가 너무 나약해서가 아니라, 정념은 본질적으로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이 보여져야만 한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 감추는 중이라는 걸 좀 아세요, 이것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능동적인 패러독스이다. 그것은 동시에 알려져야 하고, 또 알려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 p72

 

마음은 욕망의 기관이다(마음은 섹스처럼 부풀어오르거나 오그라든다). 마치 상상계의 영역 안에 사로잡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사람들은 혹은 그 사람은 내 욕망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걸까? 바로 거기에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 마음의 모든 '문제점'이 집결되는 불안이 있다. - p85

 

표면적으로 어떤 결과도 가지지 않을/않는 것이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 방해하는 것은 모두 사실의 범주가 아닌, 해석해야만 하는 기호로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사실은 이내 기호로 변형되며, 그리하여 결과론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결과론적인 것은 사실이 아니라 기호이다(그 울림에 의해). 그 사람이 내게 새 전화번호를 주었다면, 그건 무엇의 기호였을까? 시험삼아 지금 곧 사용해 보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필요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라는 것이었을까? 내 대답 또한 그 사람이 필연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기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이미지들의 소란스런 교차가 폭발한다. 모든 것은 의미한다라는 명제가 나를 사로잡아 계산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할 뿐 즐기지 못하게 한다. - p97

 

사랑의 아토피아, 즉 사랑을 모든 논술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속성은 아마도 그것이 최종적으로 담화의 엄격한 한정에 의해서만 말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이 찰학, 격언, 서정시 또는 소설이든 간에, 사랑에 대한 담론에는 항상 그 말의 대상인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다. 비록 이 사람이 유령이나 미래의 창조물 형태로 바뀐다 할지라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아무도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리라. - p112

 

반전(retournment):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 p196

 

당신의 욕망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금 금지하기만 하면 된다(금지 없이는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X...는 내가 그를 조금 자유롭게 내버려두면서 그의 곁에 있기를, 때때로 자리를 비우면서 '멀리도 가지 않는' 그런 유연성을 갖기를 바랐다. 즉 내가 금지로서는 현존하지만(금지 없이는 좋은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또 그 욕망이 형성되면 내가 그를 방해할지도 모르므로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머니가 평온하게 뜨개질을 하는 동안 아이가 주위에서 노는 그런 좋은(너그러우면서도 보호할 줄 아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성공적인' 커플의 구조일 것이다. 약간의 금지와 많은 유희, 욕망을 가르쳐 주고, 다음에는 내버려두는. 마치 길은 가르쳐 주지만, 같이 따라나서겠다고 고집 부리지 않는 저 친절한 원주민들처럼. - p199

 

질투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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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 / 학지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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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John Bradshaw 저, 오제은 역, 2004, 학지사>



위의 사례들에서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들 바깥에 있는 어떤 것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상호의존적인 상태들이다. - p34


인간성을 파괴하는 주 요인인 공격적 행동(offender behaviors)은 어린 시절의 폭력과 학대, 해결되지 않은 슬픔의 결과물이다. 한때 무력하게 학대당한 아이가 자라서 가해자가 되어 버린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를 공격자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여러 종류의 아동학대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한다. 특히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그리고 가혹한 정서적 학대 등은 중요한 부분이다. 정신과 의사인 브루노 베틀하임(Bruno Bettelheim)은 이 과정을 ‘가해자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p36


이렇게 대부분의 범죄행위들이 어린 시절의 경험에 뿌리를 둔 것이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범죄자들은 어렸을 때 부모의 지나친 방치와 관대함 때문에 버릇없이 망가져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과잉보호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기대하고, 결국 그것을 당연하다고 믿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늘 옳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책임감을 완전히 상실한 채, 자신의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 p37


우리가 세상을 신뢰할 수 있다면, 자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 직관, 생각, 감정과 바람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 p40


감정은 우리의 기본 욕구들이 채워지도록 하고, 우리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 연료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E-motion)이라는 단어를 ‘움직임의 힘(energy in motion)’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이 힘은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 p40


감정의 에너지가 안으로 표출이 되는 경우에는 심각한 신체적인 증상들을 일으키기도 한다. 위장장애, 두통, 요통, 목의 통증, 심한 근육 긴장, 관절염, 천식, 심장병 또는 암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아가 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경향성도 내면적 행동의 또 다른 형태이다. 사고를 통해서 자기를 다치게 하고 고통을 줌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에게 벌을 가하는 것이다. - p43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진정한 자기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친밀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는 바로 그들의 진정한 자아가 거부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이나 욕구, 바람이 무엇인지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부모가 아이의 진정한 자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에게는 거짓자아가 만들어지게 된다. - p47


걸음마를 하는 시기에 고착되어 버린 아이들은 둔부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생식기 부분에 반하는 것을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라고 부른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그저 하나의 생식기로 전락시켜 대하게 되고 만다. - p50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아이들이 모든 상황을 개인화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만약에 아버지가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건 아마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고 뭔가 나한테 잘못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심한 학대로 받아들여진다. 자기중심성은 어린 시절의 자연스런 현상이지, 결코 윤리적으로 이기주의라는 표식이 아니다. 아이들은 단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 p55


우리 안의 내면아이가 상처받았을 때, 우리는 공허해지고 우울해진다. 인생은 그런 것들에 대해 비현실감을 갖고 있다. 즉 우리는 거기에 있지만, 그 안에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러한 공허감은 외로움을 가져온다. 단 한 번도 진정한 자신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존재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혼자라고 느낀다. - p57


인간의 가장 깊은 영성은 가치 있고, 귀중하며, 특별하다는 특성들로 통합된 바로 ‘나’라는 인식이다. 신약성서에는 예수께서 ‘한 사람’에게로 나아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일 수도 있고, 탕자일 수도 있으며, 마지막까지 너무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일수도 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나 자신이며,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p76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언제이든 부부 중 한 배우자에게 자녀가 다른 배우자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될 때, 거기에는 잠재적인 정서적·성적 학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p80


에릭슨은 그 위기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그가 자아강도라고 이름 붙인 내적인 힘(internal strength)이라고 믿었다. 그는 건강한 아동기를 보내기 위한 필요한 요소로서 네 가지 기본적인 자아의 힘을 가정한다. 그것은 희망, 의지, 목적, 능력이다. - p100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강박적이고 중독적인 장애를 치료하는 유일한 길은 감정을 다루는 작업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 p111


우리가 개발하는 만큼, 감정은 생각과 행동 그리고 의사결정을 위한 기본적인 밑바탕을 형성하게 된다. 톰킨스는 감정이 우리의 타고난 생물학적 동기가 된다고 보았다. 감정은 마치 차를 운전하기 위해 넣는 기름과 같이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도 더욱 확장시킨다. 감정이 없다면, 사실상 어떤 것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있다면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 p114


잭킨스는 심리적 외상의 경험을 동반한 감정이 차단당하면, 정신(mind)은 그 경험을 평가하거나 통합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감정에너지가 심리적 충격이 해결되는 걸 막아 버릴 때, 정신 그 자체는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점점 더 감소되는데, 이는 유사한 경험들이 발생할 때마다 감정에너지의 방해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최초의 정신적 충격과 비슷한 경험을 할 때마다, 실제로 일어난 그 일과는 상관없이 어떤 강렬함을 느끼게 된다. 앞에서 이러한 현상을 ‘무의식적인 연령 퇴행(spontaneous age regression)’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파블로프(Pavlov)의 유명한 개실험의 경우와 유사하다. 이 실험에서 개는 매번 먹이를 먹을 때마다 종소리를 들었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종소리를 들으면 먹이가 없는데도 침을 흘리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아버지가 크리스마스를 망쳐 버렸던 기억이 있다면, 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느낌을 포함한 초기 장면을 떠올리면서 강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한 슬픔에서 비롯된, 해결되지 않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에게 슬픔이 있는 한 가지 이유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슬퍼함으로써 현재를 위해 우리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슬퍼할 수 없다면, 결국 그 에너지는 우리 내면에서 얼어붙어 버릴 것이다. - p115


탁월할 상담가인 칼 로저스(Carl Rogers)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 그 말의 의미는 나 자신의 가장 깊은 인간적인 욕구와 두려움, 열정 같은 것을 그것이 많은 적든 간에, 모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내가 나의 비밀들을 나눌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공감한다는 점이다. - p135


이 시기의 목표는 올바른 의지력을 갖는 일이다. 의지력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의 힘을 발달시킨다. 어떤 일도 잡는 것과 놓는 것 사이의 균형이라는 훈련 없이는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누군가 “자유의 모든 가면들 중에서 훈련이 가장 신비스러운 것”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우리에게는 자유로워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 p170


역기능 가정의 아이들이 건강한 양심이나 건강한 죄책감을 발달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별화과정을 발달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은 금지되고, 대신 중독적인 죄책감이 발달하게 된다. 심리적인 자기(psychological self)에게는 죽음의 전조처럼 들리는 말이다. 중독적인 죄책감은 무력한 상황에서 힘을 가지는 방법이다. 이것은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속삭인다. 심지어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그들을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자, 봐라.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 때문에 엄마가 아프잖아.’ 이것은 결국 당신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지우는 결과를 낳는다. 중독적인 죄책감은 유치원시기 당신의 내면아이가 가장 심각한 상처를 받는 방식이다. - p197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모를 떠나게 해 준다. 우리의 얼어붙은 슬픔은 우리를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깊은 분노를 만들었다. 분노는 우리에게 똑같은 감정들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게끔 한다. 이로 인해 우리의 상처받은 아이는 부모로부터 절대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하는 데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의 힘을 사용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회피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준다. - p147


내면아이는 자기 부모를 신과 같이 존경할 만한 존재로 대신하려고 계획하지만, 이것은 실현불가능하다. 제한된 인간의 능력으로 어떤 대리 부모도 아이의 환상적인 기대를 채워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실망하게 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은 이미 끝났고, 이제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새로운 부모를 실제로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의 상실을 애도해야 한다. 당신의 아이는 성인인 당신이 새로운 부모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신의 성인자아는 당신을 돌보고 당신의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도 있다. - p268


만일 우리가 내면아이를 치유하고 성장시키지 않는다면, 그 아이의 빈곤한 욕구는 끝없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아이들은 항상 부모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의 욕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만약 우리의 내면아이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우리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은 그 아이의 채워질 줄 모르는 욕구 때문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초기 고통 작업을 다 마쳤다면, 우리는 성인자아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을 다른 성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p270


1. 당신이 느끼는 것을 느껴도 괜찮다. 느낌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저 느낌일 뿐이다. 당신이 반드시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느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 당신이 원하는 것을 원해도 괜찮다. 당신이 반드시 원해야만 하거나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은 없다. 당신 안의 생의 에너지와 접촉해 보라. 확장하고 성장하고 싶어질 것이다. 당신의 욕구가 채워지는 것은 필요하면서도 좋은 일이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아도 괜찮다.

3.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을 보거나 들어도 괜찮다. 당신이 보고 들었던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이다.

4. 장난치면서 재미있게 놀아도 괜찮다. 이것 역시 좋은 일이다. 성적인 놀이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5.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인생의 고통을 경감시켜 준다. 거짓말은 현실을 왜곡시킨다. 모든 형태의 왜곡된 생각들은 교정되어야 한다.

6. 당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느 순간까지 만족감을 미뤄 두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인생의 고통을 감소시켜 줄 것이다.

7. 균형 있는 책임감을 발달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받아들이되, 다른 사람이 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8. 실수를 저질러도 괜찮다. 실수란 우리가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이다.

9. 다른 사람들의 감정, 필요, 욕구를 존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학대는 범죄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10. 문제가 있어도 괜찮다. 그 문제들은 해결될 필요가 있다. 갈등이 있어도 괜찮다. 갈등도 해결될 필요가 있다. - p274


친밀감은 각자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내면아이를 책임질 때 형성된다. 그러나 당신이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것을 상대에게서 받으려고 한다면 친밀감은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 p284


내면아이와 나는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내면아이를 돌봐 준다. 그를 지켜 주고 그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 나의 아이는 사랑받으려면 진정한 자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우리 둘 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는 바로 그와 나의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내면 아이에게 자신의 모습이 되도록 허락했고 이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 p290


교정훈련을 통해서 당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로 하여금 결점이란 사실상 결핍이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p308


당신이 누군가에게 ‘싫다.’는 말을 할 때, 이제 그 말은 정말 싫다는 뜻이다. 당신이 거절할 때,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 나는 누군가의 요구를 수락하지 않을 때도 내 감정이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곤 한다. 한 예로, 내 친구 마이크(Mike)가 최근에 볼링을 치러 가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나도 볼링이 재미있어. 그런데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겠는걸. 다음에 가자.”고 대답했다. 이 경우처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제안에 대해 스트로크를 주려고 한다. 또한 가급적 ‘그러나’라는 말 대신 ‘그런데’라는 단어를 쓰려고 한다. 가끔은 ‘내게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안 되겠어요. 선약이 있거든요.’라고 말하곤 한다. - p318


당신 내면의 유아와 한번 대화를 나누어 보라. 그 아이에게 당신이 그의 권리를 보호해 주겠다고 말해 주라. 그 아이가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써 버리는 일을 이제 그만두어도 된다고 말해 주라. 또한 그 아이에게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려고 애쓰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찾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라고 말해 주라. - p319


나는 본다, 듣는다 등등 ---- (감각)

나는 해석한다 ----------- (마음, 생각)

나는 느낀다 ------------- (감정)

나는 원한다 ------------- (소망)


예: 조(Joe)와 수지(Susie)는 스퀘어댄스(square-dancing 레크리에이션용 댄스) 그룹에서 함께 춤을 배우고 있었다. 수지의 내면아이는 조가 다른 여자애를 파트너로 선택해 수지가 아직 배우지도 않은 춤을 춘 사실 때문에 화가 났다. 그날 밤 수지는 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조, 난 네가 그 춤을 추려고 사라 로(Sarah Low)에게 요청하는 장면을 봤어. 그리고 너희 둘이 춤추면서 재미있다고 킥킥대며 웃는 소리도 들었어. 난 네가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걸로 해석했어. 난 버림받은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이었어. 이 문제에 대해서 너와 이야기하기를 원해.”


조는 그녀에게 사실 사라 로가 귀여우며 그녀가 춤추는 모습이 맘에 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수지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와 같이 있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새 스텝을 가르쳐 주고 싶고 그러면 함께 더 많이 춤출 수 있을 거라고 제안했다.

수지의 내면아이는 조가 사라 로를 귀엽다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조의 말을 듣고 난 후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지의 내면아이는 ‘둘 다/그리고’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조는 수지를 사랑하면서도, 사라 로가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 p326


때때로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아주 작은 실수조차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 p330


다음의 진술문을 당신의 내면아이에게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것을 믿을 권리가 있다. 나는 내 믿음에 대한 결과만 책임지면 된다. 모든 믿음은 부분적인 진리이며 불완전하다. 우리 모두는 제한된 자신들의 관점으로 모든 사물들을 본다.’ - p344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추방당한 후 진정한 자기를 찾아 여행을 하는 영웅, 신성한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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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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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강신주, 2009, 프로네시스>


사람이 화폐를 수용하는 것, 즉 자신이 소유물을 파는 것은 그 화폐를 수용할 타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신뢰에는 궁극적인 근거가 없다) 즉, 화폐를 화폐이게 하는 것은 (그 화폐에 대한) 타자의 욕망이다. 자신의 욕망은 여기에 직접적으로 개재할 필요가 없다. 자신은 단지 타자가 화폐를 욕망하기 때문에 화폐를 욕망한다. 다시 말해 자신은 타자의 욕망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완결되지 않는다. 자신과 똑같은 사정은 화폐를 받게 되는 타자에게서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즉, 타자가 화폐를 받는 것은, 그 외부에 역시 화폐를 받게 될 타자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 ‘타자의 타자’의 (화폐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당장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즉, 화폐를 화폐로서 기능케 하는 것은 임의의 화폐 수취인(타자)에 대해 그 화폐를 받게 될 후속의 타자(타자의 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p59


이처럼 백화점은 고가의 상품을 사는 사람과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훈련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 p134


패션은 개인적인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갖고 있으며, 이를 올바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패션의 본질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상류계급이 하류계급, 좀 더 정확하게는 중간계급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 지으려는 노력이 바로 패션을 구성한다.……패션은 끊임없이 해체되기 때문에 항상 새롭게 세워지는 장벽이며, 이를 통해 상류 세계는 중류 사회와 스스로를 차단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신분상의 허영심이 쳇바퀴 돌듯 하는 현상이 무한대로 반복된다. 한 집단은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려고 노력하고, 다른 집단은 최신 유행을 즉각 받아들여 그런 차이를 다시 없애려는 것이 그것이다. : p136


예링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다른 종과 달리 패션에 대한 원초적 본능이 있습니다. “변화욕, 미적 감각, 겉치레를 좋아하는 것, 모방본능” 등은 패션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규정하는 성격들이기도 합니다. : p138


벤야민이 인용한 패션에 대한 예링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패션은 상류사회로부터 기원합니다. 상류사회는 스스로 하류사회와 구분하기 위해서 새로운 패션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패션은 중간계급이 상류사회의 패션을 모방하자마자 곧바로 소멸됩니다. 중간계급이 상류사회의 패션을 모방하게 되면, 특정한 패션은 상류사회를 중간계급으로부터 구별할 힘을 상실합니다. 셋째, 중간계급에게 패션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폭군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스스로 상류계급을 지향하는 중간계급으로서는 상류계급이 택한 패션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 p139


푹스에 따르면 패션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합니다. 첫째, 패션은 예링이 지적했듯 상류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계급적인 구별을 두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패션은 계속 매출을 올려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은 인간에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중요합니다. : p141


욕구나 욕망은 모두 어떤 결여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욕구가 단순히 부족함을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욕망은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여전히 충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욕구보다 좀 더 복잡합니다. 욕망이란 욕구가 기묘하게 뒤틀려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욕망은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있지요. : p144


욕망이란 욕구에 기생해서 작동하는 메타적 욕구라고 불립니다. 가령 결여를 느낄 때 그것을 곧바로 충족시켜버리면, 욕망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이런 이유로 욕구를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욕망은 욕구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되지요. 물론 욕망의 힘이 너무 강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때,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욕구를 충족시켜 그 욕망의 힘을 잠재워버립니다. : p144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옷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옷은 아예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패션과 관련된 산업자본이 우리에게 개입하는 결정적 대목입니다.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든다면, 그것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겠지요. : p145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가 현실이라면 종교란 현실과 무관한 공상입니다. 그러나 벤야민은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 자체가 현실이고 동시에 공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벤야민의 입장이 옳다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과가 도출됩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종교적으로 작동하므로 만일 자본주의의 종교성이 사라질 수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도 근본적으로 폐기되겠지요. : p175


벤야민은 대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동이 돈이라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자본주의의 종교적 성격은 도박과 매춘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p178


슈조는 “우연성이 경이로움이라는 흥분적 감정을 자아내는 것은 문제가 미해결된 채로 ‘눈앞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지요. : p182


매춘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통해 정당화되는 강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사랑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 p189


매춘이란 결국 사랑이 자본주의에 지배될 때 파생되는 현상입니다. : p191


도박장에서 보들레르는 자본주의가 숨긴 종교적 성격을 직감했다면, 사창가에서 그는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위력을 느꼈습니다. : p200


들뢰즈는 동일성이란 다양한 타자 그리고 사건들과의 우발적 마주침으로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동일성이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효과일 뿐입니다. : p206


노인들 지위가 이렇게 격하된 데는 자본주의 사회가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기획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 p222


부르디외는 “경작이나 수확과 같은 농업 작업”은 ‘공물과 대응 선물’이라는 박자로 진행되는 “우주적 주기의 내부에서 달성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무나 의례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자연이 표상되기 때문에, 농민들의 노동은 강박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농부들은 만약 자신들이 끊임없이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신이 어김없이 분노를 드러내리라고 믿습니다. : p232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최종 목적이고 인간은 언제든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인간을 최고의 목적으로 간주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붕괴되겠지요. 그렇다면 앞서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강조한 칸트는 자본주의 사회를 폐기하자고 주장한 것일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한 수단’이라는 칸트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사실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도 포함된 수단’, 다시 말해 인간을 좀 더 ‘복잡한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p267


칸트 철학을 독해할 때 우리는 그의 철학이 근대사회의 한 특징인 직업의 전문화 및 세분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선미의 구분을 통해서 칸트는 전문화된 직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계기를 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전문직 종사자들, 즉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그런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능력은 대부분 부모나 가족의 역량에 따라 후천적으로 재생산된 것입니다. : p271


부르디외는 미적 성향, 즉 취향의 차이가 어떤 계급이 자신을 다른 계급으로부터 구별짓게 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 p279


『구별짓기』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자본 이외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자본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가 문화자본(capital culturel)입니다. 이것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미적 감각 그리고 사람들이 소장한 작품들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학력자본(capital scolaire)입니다. 이것은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따거나 국가고시와 같은 시험제도를 통과해 얻는 자격 혹은 지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관계자본(capital de relation social)입니다. 이것은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을 얻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인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p284


인간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찬양하고 칭찬해주는 특성을 자신들의 본성이라고 믿습니다. : p287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산업자본주의가 허영이라는 인간의 치명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 p290


산업자본주의는 상류계급의 구별짓기의 욕망 혹은 허영의 논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이전과 달라집니다. 이제는 주어진 선천적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자본을 확보해야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자본이 있다는 것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별도로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틈을 파고들면서 산업자본주의는 화려한 소비사회를 만듭니다. 경제적 자본을 확보한 부르주아 계급은 소비라는 과시 행위로 자신들이 남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음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요. : p292


자본주의나 기독교는 모두 현재의 순간보다는 미래를 더욱 긍정합니다. : p300


하지만 이미 로빈슨은 알아버렸습니다. 자신의 삶에 초월적 목적이 아니라 내재적 목적이 있다는 것, 삶은 놀이의 주체이지 결코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 나아가 오직 현재만이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삶의 철학자 니체라면 놀이의 아비투스를 획득한 로빈슨을 초인, 즉 위버멘쉬라고 불렀을 테지요. : p303


니체는 현재라는 시간 그리고 내재적 삶을 부정하는 모든 초월주의를 허무주의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말한 초인은 바로 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초인은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않습니다.” 니체의 말대로 그는 하늘이 아닌 대지의 아이입니다. 이제 로빈슨이 자신을 떠받친 스페란차의 대지와 자신을 비춘 태양을 가리키고자 했던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것은 니체의 말처럼 대지에 충실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자기 삶 자체를 수단이자 나아가 목적 그 자체로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초월적 가치나 목적에 현혹되지 않는 삶, 그 자체로 긍정적인 삶을 되찾습니다. : p304


보드리야르는 객관적 기능의 영역을 넘어서는 차원, 즉 “암시적 의미의 영역”에서 사물은 ‘기호(sign)’의 가치를 갖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기호의 차원이 바로 산업자본주의가 소비의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증거로서, 보드리야르는 그 사례의 하나로 세탁기를 언급합니다. 보드리야르는 세탁기가 “도구로서 쓰이는 것과 함께 행복, 위세 등의 요소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보드리야르가 주목한 것은 세탁기가 상징하는 ‘행복, 위세 등의 요소’라는 다른 가치입니다. 보드리야르는 세탁기의 사용가치와 무관한 이런 관념적 가치를 ‘기호’라고 부릅니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소비의 논리란 바로 이 ‘기호’를 구매하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 p329


산업자본주의는 소비자들이 아직 사용가치가 채 소멸되지도 않은 수많은 상품을 스스로 폐기 처분하게 만드는 체계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허영 같은 감정이 있기에 산업자본의 기호가치가 작동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 p333


1970년에 출간된 『소비의 사회』에서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주의 발달의 핵심에 기술 개발에 따른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부추기는 유혹적인 소비사회의 논리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 p33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까요?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상품을 필요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즉 상품의 사용가치보다는 상품의 기호가치를 강조할 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 p345


보드리야르는 선물로 받은 것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나 자율적으로 작동했을 때, 그런 선물을 ‘물건-기호’라고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선물로 받은 다이아몬드를 가게에서 화폐로 바꾸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다이아몬드를 화폐로 바꾼 사람이나 그것을 받고 화폐를 내준 사람에게 다이아몬드는 그저 높은 교환가치를 가진 단순한 ‘물건-기호’일 뿐입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다이아몬드는 부유함과 여유로움을 나타내는 것, 즉 소비의 대상으로 변환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선물이 ‘물건-기호’로 타락해버렸다면, 그 반대 또한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단순한 ‘물건-기호’는 어느 때에 고유한 선물의 의미가 될까요? 이것이 바로 보드리야르가 오랫동안 치열하게 모색해온 문제입니다. 그는 기호가치, 교환가치, 사용가치라는 산업자본의 논리를 넘어서서 상징적 교환가치의 세계로 이행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평생 고민했던 노년의 보드리야르는 우리에게 선물로 상징되는 ‘불가능한 교환’을 수행해야 한다는 마지막 가르침을 남깁니다. : p401


교환의 논리가 작동하려면 우선 인간의 추상적 사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추상적 사유는 결국 이성의 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 p405


이성의 추상성이 구체적 감성으로 포착되는 사물과 사건들의 생생함과 다양함을 부정한다면, 결국 추상적 교환 논리를 벗어나는 방법은 미적 감수성을 복원하는 데 있습니다. 이때문에 나와 타자 사이의 상징적 교환에 대해, 혹은 불가능한 교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드리야르는 미적 감성을 언급하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교환될 수 없는 것’과의 관계는 다름 아닌 미적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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