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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에쿠니 가오리 & 츠지 히토나리
'로소'와 '블루'의 두 책 중에 난 '로소'를 먼저 읽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감성의 주파수가 더 비슷하기 때문인지,'블루'보다는 '로소'의 내용에 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한편의 소설로 생각한다면, '로소'가 '블루'보다 '사랑'의 감정을 더 현실감있고 밀도있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로소'의 아오이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둘레에 높다란 탑을 끊임없이 쌓는 여자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 속에서 아오이는 자신이 얼마나 쥰세이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그를 여전히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미국인 마빈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녀의 건조하고 폐쇄적인 생활방식에서 그녀의 쥰세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오히려 더 절실하게 표현된다.
소설의 전반에 걸쳐, 아오이를 '냉정'한 감성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토록 자신의 벽을 견고하게 쌓았던 그녀가 10년동안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열정'적인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이에 비해, 쥰세이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그는 소설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말한다. '난 그녀를 잊을 수 없어. 그녀를 아직도 사랑해. 그녀가 너무나도 그리워.' 절제가 덜 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그의 말들은, 너무나도 남발되어버린 탓인지 나중에는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일상적인 말처럼, 습관처럼 나오는 그의 아오이에 대한 사랑의 말들은 나중에는 흔하게 흘러나오는 유행가의 한 구절처럼 느껴지기 까지 했다.
이 두 권의 책이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것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는 달콤함과 영원히 지속되는 완벽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소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말미에서는 아오이와 쥰세이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해피엔딩이 될 것라고 은근히 속삭이고 있지만, 다시 만나게 된 아오이와 쥰세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은 언제나 환상을 동반한다. 누구나 첫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현실 속에 안주하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가장 많은 환상을 간직한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아오이와 쥰세이 모두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각자의 현실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길이 아니었을런지... 그런 달콤한 아픔을 하나 정도 간직하고 사는 삶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잔인하다구? >.<
2. 이탈리아, 피렌체 밀라노?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다른 것들은,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점을 잘 활용하고 있는 일본의 소설들에 대한 감탄과 유럽을 포함한 서구문명권에 대한 일본인들의 동경에 대한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들이 만나기로 했던 장소가 일본의 어느 곳이 아닌 피렌체의 두오모였던 걸까. 현실화된 장소보다는 좀더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고, 낭만적인 냄새가 가득한 곳으로의 설정이 가능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아오이와 쥰세이 모두 완벽한 일본인의 전형으로 볼 수는 없다. 그들의 외모는 일본인일지라도 모두 외국에서 성장하였다. 아오이를 사랑한 마빈은 미국인이었고, 쥰세이를 사랑한 메미는 이탈리아인과의 혼혈아이다. 그렇게 볼때 전형적인 일본인의 전형을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없다.
그 사실 자체가 이 소설의 퀼리티 자체를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사실이 좀 걸렸다. 서구화 되는 것이 현대화되는 것이고, 현대화된 대부분 도시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기 때문에 당연한 일 아니냐구? 근데 무심결에 서구화 된 것은 좋고 아름답고, 상처를 정화시킬 수 있는(이 소설 속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라는 공간처럼) 것으로 인식되게 되는 건 좀 위험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