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계단
아민 말루프 지음, 김남주 옮김 / 정신세계사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내게 터키는 특별한 나라다. 아마 아직 여행해본 나라가 몇군데 없는 가운데 그나마 한달반이나 있어본 나라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터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중동의 이슬람, 아랍 문화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 것도 사실이다. 아민 말루프는 중동의 작은 나라인 레바논 출신 작가이다. 역시 아멜리 노통처럼 이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가 무작정 서점에서 고르게 된 작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지만, 제 3의 세계인 중동의 문화, 역사, 삶에 대해 쓰는 작가다.

내가 고른 책은 <동쪽의 계단>이란 책이었는데, 표지에 간단하게 책의 줄거리가 나와 있었다. 20세기 중반의 세계 2차대전, 아르메니아인의 대학살, 팔레스타인의 그 지루한 전쟁의 시기, 오스만 왕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주인공의 격동적인 삶을 그린 소설. 그야말로 딱, 내 취향의 대서사시 삘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 그 자체였다.

프랑스에선 꽤 유명한 작가라는데... 번역이 이상한 건지, 작가의 능력이 부족한 건지 생각처럼 흥미진진하지도 감동을 받지도 않았다. 물론,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적인 여러 사건들 때문에 불행해지긴 했지만 애초에 작가가 인종이나 이념,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의 평등과 동등함, 평화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그 사건들의 강도가 너무 약했다. 한마디로 드라마가 너무 없었다고나 할까나. 한 인물의 길고 긴 인생역정을 표현하기엔 지면도 너무 없었다. 좀더 자세한 묘사가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 전개가 있었다면 훨씬 깊이있게 느껴졌을 텐데... 그냥 사건의 나열이라는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사실 애초에 내가 원했던 것은, 소설로서의 어느 완성도보다는 이 책을 통해 터키의 근대사에 대해 좀 쉽고 현실감있게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터키의 근대적 상황에 대해 표현해주기는 것은 버거워보였다. 주인공 오시안은 비극적이고 어처구니없게 몰락해간다. 사실 그런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삶은 오히려 소설 속의 삶보다 더 믿기지 않게, 더 비현실적으로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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