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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의 명화'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방송되던 서부 영화. 어린 시절, 내가 접한 인디언은 서부극 속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백인과 맞붙다가 백인의 총 한 방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에서 굴러 떨어져 죽어버리는 힘없는 악당의 모습이었다. 왜 백인들이 평화롭게 살아보려고 하면 침략하고 도적질을 하는지, 죽임을 당하면서도 계속 몰려와서 괴롭히는지 그런 의문을 갖기보다는 '인디언=나쁜놈'이라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된 미국이란 나라의 뒷면에는 아메리칸 인디언을 정복한 야만스런 얼굴이 감추어져 있었다.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인디언이 살던 대륙이었지만 유럽인들의 신대륙 개척 바람을 타고 상륙한 백인들 덕에 아메리칸 미합중국이 탄생하고, 인디언들의 입지는 계속 좁아져 거의 멸망하게 되었다는 내가 알고 있는 어렴풋한 사실을 처절하고 사실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수많았던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이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지,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 인디언들의 피로 이루어진 성과인지 고스란히 전해준다. 활자로 설명된 백인의 만행과 인디언의 죽음에 심장이 떨리고, 코끝이 찌릿해지면서 손발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흥분과 충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네들의 죽음을 심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어렴풋이 알았던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느껴지는 충격과 분노. 이 정도면 저자의 의도가 너무나도 잘 드러난 책이다. 잔인할 정도로.
오늘날에도 많은 인디언들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손에 쓰러져 가고 있다. 농산물 수입 압력에 쓰러져 가는 우리의 할아버지와 미국 기업의 횡포에 휘청거리는 우리의 아버지, 하루하루 빈곤과 폭력 앞에 쓰러져 가는 아프가니스탄의 목숨들, 하루아침에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이 땅의 생떼 같은 목숨들, 계속되고 있는 그네들의 폭행에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모두가 순진하게 미국의 세 치 혓놀림에 희망과 미래를 걸고, 휘두르는 칼날 앞에 저항 한번 못하고 쓰러져 간 인디언의 후예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미국은 그 옛날 인디언의 씨를 말려버리던 '서부 개척 정신'으로 최강국 미국만 남겨두고 이 땅의 모든 목숨과 국가를 멸망시키려고 발악하고, 우리는 소리 없는 저항만 하다 짓밟히고 쓰러져간다. 오늘날 우리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강력한 미국 앞에서 쓰러져 간 인디언들처럼 멸망의 길로 들어설 것이 아니라면, 미국에 비굴하지 않은 떳떳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려면 지금의 나부터 미국의 실체를 똑바로 보고 생활 속에서 자주권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자기 자신부터 말이다.
아직도 서부 영화 속의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선진국 미국에 대한 희망을 걸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