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
안재구, 안영민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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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커질수록 아버지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 달랐다. 의견 충돌이 심해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나를 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소한 아버지가 나와 생각이 통하는 사람이길 바랬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단지 전형적인 경상도의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중년 아저씨일 뿐이었다. 아버지와 의견이 부딪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내 아이를 낳으면 세상을 깨인 눈으로 보게 만들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내 아버지가 안재구 박사와 같은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면 과연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똑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들 부자가 걸어온 길이 놀라우면서 안쓰럽기만 하다.

안재구 박사의 길은 험난했다. 대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지위에 세계적인 수학자로서의 명예를 안고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십 년을 감옥을 들락거리는 민주투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감옥살이로 집안은 기울었고 가족들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수학이라는 학문에 도전했고, 그것도 모자라 감옥을 들락거리는 고된 인생조차 물려받아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된다. 그 길이 결코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는 길이 아닌 것을 알면서 아버지의 삶을 뒤따라가는 아들은 천상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란 질곡은 다 넘어 온 이들 부자는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한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기도 한 동지로서의 끈끈함이 베어 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산'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우직하게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태산 같은 존재. 아들이 걸어가는 고된 길에 마음이 아파도 그것이 옳다고 믿기에 말없는 그늘을 내준 산 같은 아버지.

글쎄,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내가 가시밭길을 가면서 내 아이도 가시밭길을 가게 할 것인지, 아이가 가시밭길을 간다고 하면 격려해 주며 손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자신 없어진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되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자신 있게 행동하며 나서지는 못하지만 훗날 내 아이에게 '산'과 같은 모습의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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