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낸다면
죽집은 냈으면 한다.

죽 한 그릇
한 그릇의 죽

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었다는 말은 너무 사나워
죽이 밥보다 부족타는 생각도 습관이야

무슨 일의 바탕이든 연하고 조용해야만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다
또 그리고 싶어질 거다

거리거리마다
온갖 생고기 집 주물럭 짐 수산횟집이 난장을 치는 사이로
가만히 가만히 끼어서라도
죽집을 냈으면 한다

찬으로는 나박 물김치
단 하나지만 제일 어울리는 걸로 준비해 놓고
고소하고 삼삼하게 죽 냄새 종일 풍겨
내 죽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리

혹사와 공복, 년놈의 세상
죽사발을 만들고 말겠다 이빨 가는 사람
옳아, 죽사발을 만들어 주세요
죽사발이 많아야겠어요
이빨 상하지 않는 연한 음식 새알죽 가득 떠 올릴게
소매를 잡아 끌리라

속이 연하고 조용해지면
생각이 높아지는 법

생각이 높아지면
모든 지상의 것들에게로 겹으로 스미리
내 죽집 앞을 사뭇 기웃거리며 부딪는 떠돌이 개야
내 죽집 유리창엔 맨날 늘어진 입을 대는 늙은 가로수야
초대하리라 이 주그렁이들아, 나의 미식 녹두죽을 특별히 낼게

이 저녁도 길에 지친 행인들의 쓰린 속이 보인다
세상 폭력이 보인다
환중의 헐은 내벽이 보여

흰죽, 검은깨죽, 야채죽
비집고라도 죽집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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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백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서 한발 내디디면 추락하여 죽고 말겠지만, 마음은 한발 내딛어 허공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본래 공空인 자기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자기 자신 버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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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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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불교 불교입문총서 3
권오민 지음 / 민족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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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불교학은 결코 단일한 체계가 아니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전개된 온갖 상이한 학적체계가 모여 이루어진 매우 복합적이고도 유기적인 체계이다. (5면)

화두 들고 참선에 드는 간화선 중심의 불교만이 전부인 것 마냥 , 아니면 유부 중심의 아비달마 불교는 개인의 해탈만을 중시하는 소승의 '극복해야 해야 하는 것으로만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장이 인도에 체재할 무렵(A.D.630-644), 이 시기는 이미 대승이 흥기한 지 700여 년에 지났지만 여저니 인도 땅에는 이른 바 소승이 압도적이었다......대승은 분명 새로운 불교였다. 그것도 기존의 불교와는 타협점을 갖지 않는, 진보도 발전도 아닌 새로운 혁신이었다. 그들은 불타의 말씀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불타의 말씀(경전)을 결집하였다. 기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불교라고 할 수도 없는, 그리고 그 결합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반야바라밀다의 공관은 주석가들의 피나는 허신에 의해 역사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것은 동점東漸하면서 마침내 우리나라에 이르러 성문의 아비달마불교는 불교학에서 아예 배제되고 말았다. 나아가 오늘날에서조차 그 전통이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는 스리랑카 등 남방의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335-338면)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부파불교 내의 상좌부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종교이며, 설일체유부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연구는 차치하더라도 인도에서만 거의 천 년의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43면)

다만, '일체개공'으로 대표되는 대승의 공관空觀에서 아직 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비달마의 법유론法有論을 비롯한 법 자체로서는 어떠한 차별도 없으며 항상 실재한다,는 이른바 '법체항유'등의 여러 이론은 배워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얼른 와 닿지 않는다. 한 예로 용수龍樹는 연기를 상호의존적 관계로 해석하여 모든 존재<諸法>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본성이나 작용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일체는 공空이라고 주장한 반면에, 유부 아비달마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다수의 인연에 의해 조작되어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세계를 성립하게끔 하는 각종 조건이나 요소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그것의 실재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얄퍅한 알음알이를 통해 해결될 문제라기보다는 불교를 보는 시각의 질적 변환을 꾀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깊는 사유가 병행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위 첫머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승불교만이 불교의 전부를 말하고 것이 아니라면, 대승불교 역시 불타의 깨달음을 탐구하고 해석한 하나의 갈래이고 그리고 그 갈래 역시 또한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그것에 의해 폄하되었던 소승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불교가 '대승'이라는 이름하의 보편체계로 해석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비달마를 비롯한 초기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뒷받침돼야, 중관과 유식,여래장 사상을 비롯한 천태, 화엄, 선禪, 정토 등 동아시아 불교철학의 공부가 가능하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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