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강을 건너자 비가 가늘어졌다

산발치에 닿아선 하늘까지 맑아졌다

땅은 이미 충분히 젖어

검고 부드럽게 나무뿌리에 담았던 향을 풀어냈다

포클레인이 모래흙 한 무더기

내키만큼 쌓아놓은 뒤였다

새로 파낸 사토(沙土)는 새 봄비를 맞아 빛이 더 맑았다

이미 마음을 궁글렸으니

세상 전부가 함께 묻힌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흙을 가리고 방향을 잡아 자리를 정한 다음

조용히 내려놓았다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세계로 듣고 있었다

구름 걷히고 햇살 펴지면서 흙내음 진한 달구노래 들렸는지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후 어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포르릉 산새가 날아간 것인지

산역을 마친 이들이 햇무덤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나는 문득 손이 텅 비었다는 것을

상처가 아리다는 걸 느꼈다

봄비 걷히고

내 알몸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를 산에 묻고 내려오는 화자의 심정이 그저 평온하기만 했겠는가? 내려오고 나서야  문득 손이 텅 비었다는 것을. 상처가 아리다는 걸 느끼고, 거기에 눈물까지 쏟아졌으니. 오히려 담담한 어조로 인해 슬픔의 정서는 더 깊게 느껴진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듯하지만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는 또다른 시,

 

掌篇            김종삼

작년 1월 7일

나는 형 종문이가 위독하다는 전달을 받았다

추운 새벽이었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사람이 다가왔다

한미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두 딸아이가 죽었다고 했다

부여에서 왔다고 한다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둘, 열아홉

함께 가며 주고받는 몇 마디였다

시체실 불이 켜져 있었다

관리실에서 성명들을 확인하였다

어서 들어가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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