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압적 요구들... 시애틀의 밤은 길다
한미FTA 3차 본협상 6일부터 본격 시작
    김종철(jcstar21) 기자   
▲ 6일 오전(한국시간) 시애틀 웨스틴호텔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왼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
ⓒ 연합뉴스 배재만
"시애틀의 밤이 길겠죠."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단 한 고위간부의 말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준비는 잘 돼가시냐'고 물었더니, "어떤 협상인데…"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쪽 요구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고 재차 물었다. 그는 우선 개인적인 생각임을 깔았다. 이어 "협상이란게 기브엔테이크(give-and-take, 주고받기)인데…"라며 "구체적으로 말할순 없지만, 그쪽(미국쪽) 요구들 가운데 받기 힘든 것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시애틀에서의 밤이 어느 때보다 길것 같다"면서 협상이 쉽지 않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6일 새벽(미국시각 5일 오전)부터 한미FTA 3차 협상이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됐다. 닷새동안 진행될 이번 협상은 첫날 원산지와 통관 분야 협상이 시작됐고, 상품과 농업, 금융, 서비스, 투자 등 나머지 14개 분과의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지난 5일에는 김종훈 수석대표를 포함한 26개부처, 13개 국책기관에서 나온 218명이 현지에 도착했다. 미국쪽에선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 등 98명이 협상에 나선다.

김 대표는 공항에서 "충분히 풀어갈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미 지난달에 주고받은 양국의 양허안 등을 보면 핵심쟁점 등에서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에 맞춘 안을 내놓고 압박하고 있다.

대신 우리가 공세를 취하는 미국의 반(反)덤핑 규제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개선에 대해 미국은 아예 협상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태세다. 섬유 등 다른 분야도 미국쪽은 자신들의 산업보호에 치중하고 있다.

여기에 협정문을 한글보다 영문을 우선한다는 미국쪽의 고압적 태도 문제도 불거졌다. 또 국내 협상단은 부처별로 협상 초안을 아예 한글로 만들지도 않은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미국 핵심쟁점부터 한국 압도

우선 이번 3차 협상 분위기는 지난 1·2차 협상 때와 사뭇 다르다. 1만여건에 달하는 세세한 항목을 두고, 어떤 분야를 언제부터, 어떻게 문을 열지, 아니면 아예 제외할 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해당 국가의 경제와 국민에게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 문제다.

특히 쌀을 비롯한 농산물과 개성공단 문제 이외에 반(反)덤핑과 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 비자쿼터, 2차 때 파행을 겪었던 의약품, 배기량에 따른 세제 문제가 쟁점인 자동차, 지적재산권, 통신 등의 분야가 핵심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핵심쟁점을 둘러싸고 양국간의 불균형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일 외교통상부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보고한 '한미FTA 주요쟁점 설명자료'를 보면 전체 24가지 핵심쟁점 가운데 미국쪽이 제기한 것은 16가지였다. 우리쪽은 8가지 정도였다. 미국쪽은 자국 제품에 대한 조정관세 배제를 포함해 자동차 배기량 기준 세제 폐지, 건강보험 약가제도 재검토 등 요구하고 있다.

이들 상당부분은 국내법에 이미 마련돼 있거나 주요한 정부정책으로 협상단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대신 한국은 반(反)덤핑 규제와 섬유의 원산지 완화, 개성공단 생산품 한국산 인정, 전문직 비자쿼터 반영 등을 미국쪽에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대부분 '미연방 특별법이나 의회권한' 등의 이유를 들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 안건은 아예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反)덤핑 규제, 쌀, 자동차 등 치열한 줄다리기

▲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중심으로 구성된 약 60명의 원정시위대중 일부가 5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노동절을 맞아 시애틀 지역 사회.노동단체의 주최로 시애틀 시내 공원에서 열린 `시애틀 인권과 경제정의를 위한 집회'에 참여, FTA에 반대하는 범국본의 입장을 설명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특히 반(反)덤핑 규제 완화 부분은 우리 협상단의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6일 "미국측의 반덤핑 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요한 요구사항"이라며 "협상을 통해 반드시 관철돼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예측하지 못할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이 올 6월까지 한국을 상대로 수입규제 조치를 내린 18건 가운데 16건이 반덤핑과 관련돼 있다. 따라서 한국쪽은 '대미 반덤핑규제 개선 10대 요구사항'을 통해 미국에 덤핑 규제를 남발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쪽은 이 문제를 다루는 무역구제 분과에서 이를 아예 협상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제>는 5일치 신문에서 한미FTA 협상단 관계자의 말을 빌어 "미국이 반덤핑 분야를 협상대상에서 제외했으며, 무역구제 통합협정문 마련도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도 "미국 협상단은 반덤핑 등 한국이 주요하게 내걸고 있는 사안에 대해선 철저하게 '연방특별법에 저촉된다', '권한 밖' 등의 이유를 들어 협상대상에 빼려고 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쌀도 예외없이 개방해야"... 한국 "절대 안돼"

농산물 분야도 우리쪽에선 최대한 보호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은 농산물 전체 품목 1531개 가운데 약 20%에 달하는 284개를 '개방 예외'로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쌀을 포함해 단 한 개도 예외를 두지 않고 10년 내에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84개 품목 가운데 얼마나 살아남을지에 따라 한국 농업의 생사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 분야는 세금이 관건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자동차 세제를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배기량 기준에서 연식과 가격 기준이다. 하지만 배기량 기준은 이미 일본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쓰고 있다. 또 자동차에 부과되는 특소세와 지하철공채 등 각종 공채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폐지될 경우 국가재정에 부담을 작용할 전망이다.

이밖에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미국은 출판물 저작권을 현 50년에서 70년으로 늘릴것, 인터넷물(소프트웨어 등)의 일시적 복제, 기술적 보호 조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통신분야의 외국인 투자한도도 확대하라고 미국쪽은 주장하고 있다.

지난 협상때 첨예하게 대립했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도 쉽지 않다. 사안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북·미간 관계가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9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2차 협상때 파행을 겪었던 의약품 협상은 미국쪽이 일단 우리의 '건강보험 의약품 선별등재 방식(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의약품 가격결정 과정에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문은 영문판만 인정?... 통상협상 한글본도 없어

협상과정에서의 언어 문제도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미국쪽이 통합협정문 타결을 전제로 '협정 영문본이 한글본에 우선한다'는 입장에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는 통합협정문이 한글본과 영문본이 다를 경우 영문본이 우선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요한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쪽은 반발했다. 김종훈 수석대표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FTA 협상 내용과 결과를 담은 문서는 반드시 '한글'로도 작성, 공식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차 본협상 때부터 협상문서의 한글화를 미국측에 공식적으로 요구했으나 미국측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문서의 한글화 문제는 민족적 정서 차원의 문제인 만큼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모든 통상 협상과정에서 한글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김 수석대표가 국회에서 한 발언에 잘 나타난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5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김 수석대표가 '정부는 그동안 통상협상에서 한글본을 만들지 않았고,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도 각 부처별 한글초안도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심 의원은 이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더니 한국쪽 초안을 번역해서, 그것도 비공식이라는 단서를 달고 지난 3일에서야 국회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언어는 그 나라의 국적을 대표하는 외교행위"라며 "처음부터 굴욕적인 언어 사용부터가 국민들이 우려하는 졸속, 양보, 굴욕협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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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9-0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퍼가겠습니다..

진/우맘 2006-09-07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하나가 최근에 귀농을 했습니다. "이젠 태풍 소식 들으면 네 걱정부터 되겠다." 했는데.....태풍보다 더 무서운게 FTA로군요.

가을산 2006-09-0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요구사항들을 보니 걱정되네요.
의약품, 우체국, 택배, 기업 규제, 원산지, 공기업 부문의 사기업 진출, SAT 점수 인정, 산업은행, 농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