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모 의료생협의 비상 이사회가 있었다.

양/한방 협진 형태인데다가, 의료생협이라는 체제가 공무원이나 보험공단에 생소한 차에,
지난 월요일부터 실사를 받은 것이다.

실사 결과, 한방에서 진료를 받고, 같은 날 양방에서 진료를 받거나 물리치료를 받으면 불법이란다.
그리고 이 외의 몇 가지 문제들이 지적되어서 조만간 징계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생긴 지 3년 밖에 안되는 생협의 최대 위기이다.

이사들이 모여 실무자들로부터 경과보고를 받았다.
경과보고를 하고 난 실무자들 왈, "거 실사팀, 정말 열심히 일하데요. 우리 나라 공무원들 다시 봤어요!"
" 정말 궁디~도 안띠고 일하데.... 밥도 자기들끼리만 사먹고~"

맘고생이 심할 실무자들을 위로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이사들이 생각보다 씩씩한 실무자들의 말에 오히려 위로를 받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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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의 실사는 의료보험공단에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한 건을 적발하기 위해서 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의 직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몇일에 걸쳐 의료기관의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환자들에게도 확인 전화를 하는 것을 말한다.  생협의 이번 실사도 5일간 진행되고 있다.

생협이 '타겟'이 된 이유는 청구한 내용 중에 양방과 한방의 진료 날자가 겹치는 건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도 있지만, 또다른 큰 요인은, 생협이 '사회복지법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노인 복지의원'을 표방하면서 운영되는 의료법인들은 평판이 좋지 않다. 
노인 환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심지어 버스 대절이나 식사 제공까지 하면서 유인하고,
보험공단에 허위 청구하기, 제약회사에 리베이트 요구하기, 약국에 리베이트 요구하기, 돈 떼먹고 폐업하기 등의 수법으로 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부분의 의약품 도매상들이 '법인'과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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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의료생협에 들이닥친 조사원들도 이런 법인을 염두에 둔 듯하다.
생협의 이사장인 모 교수님이 마침 외국 출장 중이신데, 상근자가 출장중이시라고 하자 '출국증명서'를 떼오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이사장이 무보수직이라고 하자, '다들 그렇게들 말하지요.'라고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ㅡㅡ;;

보통 '복지의원'의 상근 의사는 고용된 의사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비리에 직접 관련 없이 월급을 받고 진료만 할 뿐이기 때문에, 실사가 나오면 재단측과 서로 책임을 떠넘기곤 한다. 
그런데 생협의 상근 의사인 N 선생님은 청구와 진료에 관한 것은 다 자기 책임이라고, 본인이 책임 지겠다고 했단다. 실사자들은 '정말 봉직의 맞냐? 청구 액수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았던 것 아니냐?' 고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란다.
그런데 실상 N 선생님은 생협의 설립에 필요한 출자금 중 상당 부분을 출자했는데도 불구하고 월급은 같은 경력의 봉직의의 절반정도밖에 받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의료생협을 제안해서 설립하는 일을 주도했고, 지역 생활공동체, 대안학교 운동 등 정말 생활 자체를 학생때부터의 꿈인 '생활 공동체'를 실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실사자들은 ' 저 의사 씩씩하기도 하지. 아마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몰라서 저럴거다"라고했단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면허 정지나 취소까지도 각오하고 있다.

한편, 이사회는? 
어제 이사회 명의로 제출될 소명서 초안 중에 "이번 일은 우리 조합의 실무자 임의로 이사회의 의결을 어기고 편법, 위법을 한 사실이 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초안은 실무자가 작성한 것이었다.

실재로 이사들은 의원의 운영이나 청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었다. 매달 이사회를 하더라도 전체적인 보고를 받고, 생협의 주된 목적인 주민건강운동에 대해 의논할 뿐이지, 보험 청구 속사정까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단지 작년에 협진 건으로 인해 공단에서 지적을 받았을 때, 더이상 협진에 문제가 없도록 같은 날 진료를 했더라도 청구하지 말자는 결정을 한 적은 있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이런 내용을 이사회 명의로 소명한다는 문건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문장 자체를 삭제하도록 했다.

이사장인 K교수는 금년이 안식년이라 외국에서 1년간 연구를 할 예정이다. 이런 일만 아니었으면 이사장직을 물려주었을텐데, 만약 문제가 될 경우 본인이 책임을 지시겠다는 뜻에서 이 문제가 일단락 될때까지 이사장을 하시겠다고 한다.

이사회 전체도 이번 실사 결과와 함께 그동안 생협이 해온 일들에 대해 다음달에 있을 총회에서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어렵게 시작한 생협의 운동이 이번 일로 인해 꺾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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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1-27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의 왕성한 활동에는 늘 경의를 표합니다..그러니까 가을산님도 이사신거죠?

가을산 2005-01-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무늬만 이사입니다. 실재로 하는 일은 없어요.
게다가, 직함으로 따지자면 마태님이 훨 많지 않으실까요? ^^

starrysky 2005-01-28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너무너무 멋진 분들.. ㅠ_ㅠ
나뿐 공무원들..이라고 하면 안되겠지만(나름대로 맡은 일은 열심히 했다니까), 하여간에 두 눈 멀쩡히 뜨고는 도대체 뭘 보고 간겨!!
부디부디 일이 잘 풀려서 빨리 엉뚱한 누명(?)도 벗으시고 선생님들 평소처럼 열심히 일하시고 환자분들도 편하게 진료받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