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즈음의 상황은 마치 87년과 같은 사회적인 갈등 양상으로 번져 가는 것 같다.
오늘 '변화는 가능한가?'라는 모티브가 던져져서 옛날 아버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87년 당시, 난 본과 2학년이었다.

나는 그 흔한 '학생운동' 근처에도 가지 않은 학생이었다. 부모 덕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 어려운 계층은 - 내가 스스로 개척하지 않는 한에는 - 근처에 갈 기회도 없었고, 아마 동기들 보기에 온실 속에서 자란 축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87년에는 도저히 대모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대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은 하도 최루탄을 쏘여서 얼굴과 온몸에 수포가 돋아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우리 정도는 그 수많은 대모대의 한 점에 불과했다.

당시 아버지께서 나와 남동생을 불러서 자제를 당부하면서 하신 비유가 있다.

'역사의 강은 도도하게 제 갈 길로 흐른다. 강가의 작은 물결이 땅에 부딪혀 부서지던 말던 강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 역사 흐름의 주류를 따라가다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너희가 땅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결은 되지 않기 바란다'

나나 남동생은 그자리에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생각해 내신 아버지의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서 알아들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 반론이 고개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의 흐름을 바꾸는 것, 바위를 깎고 모래를 옮겨 놓는 것은 바로 그 작은 물결들이 아닌가? 물결이 없는 물은, 흐름이 없는 물은 썩지 않겠는가? 내가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물결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변화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큰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도 있다.

평상시에는 변화, 특히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동참을 유도하는 일은 무척 많은 인내심과 지속적인 노력을 요한다.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들 중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일부일 뿐이고, 뜻을 같이 한다고 한 사람들 중에서 구체적으로 활동에 지속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잘해야 20-30% 밖에 되지 않는다. 관심과 참여를 자가발전적으로 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3%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건이 무르익고 어떤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에 따라 그동안 형성된 개개인의 내적 압력이 동시에 분출될 때, 여러 사람의 관심과 행동을 구체적인 방향으로 엮어내는 몇몇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오랜 기다림과 노력이 있었기에 무척 귀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건이 무르익기 전에, 그 '시기'를 기다리다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에는 언제나 희망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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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3-13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보다 불과 한살밖에 안많으시군요! 뭡니까, 그동안 연로하신 척...글 잘 읽었구요,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참 글 잘쓰세요. 공감이 가도록 말이죠....

가을산 2004-03-13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제 글들이 그렇게 연로했었단 말인가요? ㅜㅜ
제가 연로한게 아니라 마태우스님이 젊으신거였음 좋겠는데...

마태우스 2004-03-1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제가 술에 취해 쓸데없는 소리를.... 죄송하구요,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뭐, 제가 젊은 걸로 하죠...

ceylontea 2004-03-1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