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을 잘하려 하면 유급 노동 시장에서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유급 노동에 집중하려 하면 자녀에게 쏟는 시간과 정성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여성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충분하지 않다‘라는 초조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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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상에서 반복되는 기획의 밀도는 다르다. 남편들이맡는 큰 기획과 이벤트성 기획은 한번 결정하면 끝이 나고, 일시적이며 자주 반복되지 않는다. 반면 식단 짜기, 소모품 관리, 아이 일정 챙기기 등 일상적인 항목들의 기획은 가족을 유지하기위해 필수적인 일상 업무들이라 매일, 매주 갱신된다. 돌림노래처럼 끝이 없다. 그 반복과 촘촘함이 기획을 맡은 아내들의 피로를 증폭시킨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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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노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이 일이 공식적인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가사노동시간을 측정하는 통계에는 청소, 요리, 세탁등 몸을 쓰는 ‘실행‘ 노동만 담겨 있다. 하지만 집안일은 그렇게몸을 쓰는 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족생활의 전반에 대한 관리와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획 활동은 살림과 돌봄의 중요한 요소다. 정부는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500조원가량으로 추산하지만 여기에는 기획 노동이 빠져 있어서 실제로 전체 가사노동의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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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해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도 "아, 그거!" 하고 ‘머릿속 살림과 돌봄‘의 정체를 알아맞힌다. 아무리 쳐내도 끝나지 않는 ‘할 일 목록‘ 때문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인데 마땅한 이름조차 없는 일. 뇌를 꺼둘 수도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일을 나눠 하는데도 왜 나는 피곤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이름 없는 노동.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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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할머니가 죽으면 저승길 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더라."
죽어서도 엄마는 자식들을 잊지 못한다는 뻔한 이야기겠지 싶어 심드렁하게 "왜?" 하고 대꾸했는데,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저승길까지 살림이 따라올까 봐 무서워서 그렇대."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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