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어쩌면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도움을 거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림자 노동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름을 가지지 못한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상기해야 한다. 내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에 타인의 이름을 지우지 않는 일도 포함됨을 알아야 한다. - P50
옛날 같았다면 할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시게 된다는 것을 옆에서다들 알고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마치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생기면서 이제는 노화에 의한 자연사라는 만고의 진리가 무색한 시대가 되어버렸다.결국 쇠약해진 노인이 사망하는 맨 마지막 단계, 근력 약화에 의한활동력 저하-> 식이 섭취 부진→ 영양실조 및 탈수에 의한 장기기능 저하-> 인두근 약화에 의한 흡인과 폐렴→ 사망이라는 과정이 모두 처치가 가능한 질환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 P99
사회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게되었는지, 예전 같았으면 죽었을 상황에서 얼마나 극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점점 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이러다가 나빠지면 병원에 모시고 가면 방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한다. - P99
물론 별문제 아닌 병도 무조건 더 큰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많다. 내가 병원 근무를 시작했을 때, 환자들이 병원을선택하는 이유의 90퍼센트 이상은 병원 때문이지 개별 의사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는데 그런 현상이 나아질 조짐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의료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첨단 기계와 설비에 달린 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 P58
병원 중환자실은 일시적인 문제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들이 의학적인 시술의 도움으로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현대의료에서는이런 원칙이 너무나 빈번히 깨져버린다.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은 환자가 임종을 맞기 위한 장소로 급속히 변질되어가고있다. 그 결과 정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입원하지 못하고 돌려보내지는 일이 발생한다. - P71
할머니는 가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람들 말에, 나는 오직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프리카 여성으로서 선구자 격인 내 동기들은 얼마되지 않았어. 남자들은 우리에게 정신 나간 여자들이라는 딱지를 붙였지, 우리를 악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하지만 많은 남자들이 우리를 갖고 싶어 했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꿈들에 헛된 희망을 불어넣고, 얼마나많은 꿈들을 실망시켰는지? 지속적인 행복으로 실현될수도 있었을 그 꿈들을 버리고, 빈손만을 남긴 채 비눗방울처럼 가련하게 터져 버릴 다른 꿈을 끌어안느라고.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