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신체장애뿐 아니라 정신장애, 지적장애를모두 가지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장애인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수 있다면 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망이든 치매든 감정을느끼는 데에 장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 팀의 누가 진심으로 나의
‘최선‘을 생각해주는지 나 자신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열심히 궁리한 결과를 "우에노 씨, 우리가 다 같이 머리를 모아봤는데 이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어때요"라고 내게 물어봐줬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설령 그 의미를 모른대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하고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 P239

태어나고 죽는 일은 자신의 의지를 뛰어넘는다. 그것을 컨트롤하려는 마음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손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일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나를 비롯해 가족이 있는 사람도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은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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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의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에는 사실 의료적개입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가족은 그저 지켜봐 주면 된다.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어서 가족들끼리 임종을 지키며 의사나 간호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례도 있다. 의사가 필요한 때는 사망확인서를 적어야 할 때뿐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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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시민사회에 관한 이해를 토대로 ‘시민의 자리에서돌본다‘는 명제를 이해해보자. 이것은 돌봄 관계를 독박과 고립에 처하지 않도록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신은 돌봄을 통해서존중받아야 하는 시민이고, 나는 돌봄 필요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한 명의 시민이기에 나는 당신을 돌본다. 돌봄으로써 나는시민적 덕성을 구현한다. - P247

가족이 가족을 돌보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은 인류 역사에서 계속 전수되어왔다. 사람들은 가족과 돌봄을 연결하는 데 아무런 저항감을 갖지 않기 십상이다. 그리고 전수된 역사 속에서돌보는 가족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나이가 어려도 아주 많아도,
장애가 있어도, 여자 가족에게는 돌보는 일이 맡겨지고 그들은 또 이 일을 해낸다. 어디서 행해지든, 어떤 노동 조건이나 제도에서든 돌봄은 주로 여성이 ‘가족이 하듯‘ 하게 된다.
인류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처럼 뿌리 깊고 두꺼운 층으로 이루어진 ‘가족 돌봄‘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기 위해 시민 돌봄을 제안하는 것이다. 가족과 돌봄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핵심 관건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존재나 가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가족 돌봄의 의미,
가능성, 가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앞서 한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면 가족이 돌봐도 ‘가족이니까‘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기 위함이고, 한 명의 시민이 다른 시민을 존중하기에 ‘시민의 윤리의식으로‘ 돌보는 것이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시민됨, 시민으로 마주함, 동료로서 벗으로서 서로 어울리고 연대하는 태도와 입장에서 돌봄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자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다. - P249

돌봄자들은 돌보면서 공감, 친절, 인내 그리고 타자를 이해하는 역량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지언정 받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취약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반영일 테다. 돌봄의 자질을 끌어올리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일에서 더욱 강조해야 하는 것은 돌봄을 제공할 용기보다 ‘돌봄 받을 용기‘다. 자신의 취약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이들 앞에 드러내는 건 취약계층을 향한 시혜적 시선에 저항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 P252

더 잘하고 싶고, 돌봄의 가치를 자기 일에 녹이고 싶어도그럴 수 없게끔 쥐어짜는 환경이 문제다. 자기 노동에서 돌봄의가치를 녹이는 것은 물론 모든 일하는 노동자는 돌봄을 수행할시간자원을 가져야 하는데, 노동 환경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들사이의 관계나 자기 일의 직업인이자 전문가로서의 윤리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경제적 차원에서 공공자원의 공유 수준에 달렸다. 국가가 인건비를 비롯한 예산을 쥐어짜면서, 최소한의 필요 인원도 충원해주지 않으면서, 돌봄에 필수적인 공적 공간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국가가 자원제공을 늘리는 대신에 해당 분야 종사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다. - P274

돌봄에 대입해 생각해보자. 돌봄 과정에서 학대가 발생했거나 심지어는 살인이 발생했다 할 때 그 가해자를 찾아내 처벌하면 인권 문제가 일단락될까? 왜 돌봄 상황이 그 지경이 됐는지 진단하고 해석하고 고칠 방안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란 가해, 피해의 구도에 머물지 않는다. 구조적 원인을  찾아낸다.  돌봄  위기는  개인적 곤란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누구 에게 우연히 벌어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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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봄 받는 사람으로 상상할 때 돌보는 일의 형태와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돌봄에 관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담론 차원에서 상상력의 교환도 더 촉구될 것이다. "좋은돌봄‘에는 적절한 거리 두기 그리고 돌봄 받는 상대방에 대한감정이입, 공감이 요청된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돌봄은 거리두기와 다가가기를 반복하는 두 진자운동의 조율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다른 관계성을 형성한다. 정서적 접속이나 교류가어려운 돌봄 환경에서도 외부의 보상이나 인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나 여타 에너지가 투여된다. - P112

돌봄의 이런 내재적 속성은 종종 돌봄자의 과도한 몰입 또는 소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돌봄노동에서 과잉으로 투여되는 에너지는 육체 노동보다 ‘마음 씀‘과 더 관련된다. 지침이 있지만 지침대로 하지 않는 건, 또는 그렇게 못하는 건 돌봄이 ‘마음이 써지고 책임감이 생겨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P113

‘남에게 폐 끼친다‘고 여겨지던 존재들은 실제로 민폐를유발하는 건 돌봄 책임을 함께 지지 않는 사회그리고 돌봄을여성이나 특정 취약자에게 전가하는 세력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 P116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취약한 우리 모두가 폐를 끼치며살아간다. 폐를 끼치기에 삶이 가능하다는 엄중한 사실에 겸허한 존재들은 폐 안끼친다고 자부하고 위장하는 세력의 위선을드러낸다. 적극적인 폐 끼침의 사유와 실천, 곧 돌봄을 통해 기존 사회의 시간과 공간에 변화를 요구한다. - P117

치매 환자의 몸과 정신 상태는 하루하루 달라진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함께 돌보지 않으면 그 변화를 제대로 포착할 수없다. 틀니도 헐거워지고, 안경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며,
걷기도 어려워진다. "죄책감으로 차일피일 요양원을 찾지 못하다 이렇게 변화된 어머니와 만날 경우" 놀란 가족은 요양보호가 부족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 P129

요양시설은 삶이 계속 이어지는 다른 장소가 아니라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며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죄책감을 키운다. 시민들 사이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함께 돌봄‘의 동력은 사적 차원에서약화한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는/못하는 현실이 된다. 요양원으로 삶이 장소를 옮겼지만 그 장소에서 돌봄을 책임지는 ‘전문가‘와 함께 이런저런 가능한 방식으로 돌봄을 계속한다는 생각의 확산이 필요하다. 뒤돌아보기를 멈추지 않기, 즉 연결되어함께 돌보기를 멈추지 않기가 관건이다. - P130

그러나 좀 더 큰 맥락에서 볼 때 노인요양시설이 공포나두려움과 직결되는 것은 실제로 그곳 상황이 어떤지, 어떤 돌봄이 수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장에서 상세히 언급했듯이 요양시설 입소는 집중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그곳에 모신다‘의 의미나 목표보다는 ‘맡긴다‘, 더 심하게는 ‘넣는다‘는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보호자‘조차도 시설 안에서 돌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돌봄 종사자들이 그곳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자세히 알고자 하는 게어렵다. 죄책감을 떨치기가 어려운 죄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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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요구다.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면서 관계를 돌보지 않는 삶은 인간의 연결성과 책임성을 망각한 것이다. 인권에 기반한 돌봄은 추상적인 존재의 권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취약한 몸을 가진 존재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겪는 취약함을 함께 다룬다. - P30

많은 이들이 일용할 기본 양식에서 일상의 모든 필요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가사/돌봄노동 덕분에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것을의존의 삶이라는 맥락 속에서 ‘의식‘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여러 면에서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아니 깨달을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을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립의 삶을 살고 있다고믿는다. 취약성을 자율성의 결핍 혹은 실패로 간주하는 관행 속에서 자립은 자율성과 동의어고 의존은 자립이나 자율성의 결핍이나 실패일 뿐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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