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봄 받는 사람으로 상상할 때 돌보는 일의 형태와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돌봄에 관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담론 차원에서 상상력의 교환도 더 촉구될 것이다. "좋은돌봄‘에는 적절한 거리 두기 그리고 돌봄 받는 상대방에 대한감정이입, 공감이 요청된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돌봄은 거리두기와 다가가기를 반복하는 두 진자운동의 조율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다른 관계성을 형성한다. 정서적 접속이나 교류가어려운 돌봄 환경에서도 외부의 보상이나 인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나 여타 에너지가 투여된다. - P112

돌봄의 이런 내재적 속성은 종종 돌봄자의 과도한 몰입 또는 소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돌봄노동에서 과잉으로 투여되는 에너지는 육체 노동보다 ‘마음 씀‘과 더 관련된다. 지침이 있지만 지침대로 하지 않는 건, 또는 그렇게 못하는 건 돌봄이 ‘마음이 써지고 책임감이 생겨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P113

‘남에게 폐 끼친다‘고 여겨지던 존재들은 실제로 민폐를유발하는 건 돌봄 책임을 함께 지지 않는 사회그리고 돌봄을여성이나 특정 취약자에게 전가하는 세력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 P116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취약한 우리 모두가 폐를 끼치며살아간다. 폐를 끼치기에 삶이 가능하다는 엄중한 사실에 겸허한 존재들은 폐 안끼친다고 자부하고 위장하는 세력의 위선을드러낸다. 적극적인 폐 끼침의 사유와 실천, 곧 돌봄을 통해 기존 사회의 시간과 공간에 변화를 요구한다. - P117

치매 환자의 몸과 정신 상태는 하루하루 달라진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함께 돌보지 않으면 그 변화를 제대로 포착할 수없다. 틀니도 헐거워지고, 안경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며,
걷기도 어려워진다. "죄책감으로 차일피일 요양원을 찾지 못하다 이렇게 변화된 어머니와 만날 경우" 놀란 가족은 요양보호가 부족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 P129

요양시설은 삶이 계속 이어지는 다른 장소가 아니라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며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죄책감을 키운다. 시민들 사이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함께 돌봄‘의 동력은 사적 차원에서약화한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는/못하는 현실이 된다. 요양원으로 삶이 장소를 옮겼지만 그 장소에서 돌봄을 책임지는 ‘전문가‘와 함께 이런저런 가능한 방식으로 돌봄을 계속한다는 생각의 확산이 필요하다. 뒤돌아보기를 멈추지 않기, 즉 연결되어함께 돌보기를 멈추지 않기가 관건이다. - P130

그러나 좀 더 큰 맥락에서 볼 때 노인요양시설이 공포나두려움과 직결되는 것은 실제로 그곳 상황이 어떤지, 어떤 돌봄이 수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장에서 상세히 언급했듯이 요양시설 입소는 집중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그곳에 모신다‘의 의미나 목표보다는 ‘맡긴다‘, 더 심하게는 ‘넣는다‘는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보호자‘조차도 시설 안에서 돌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돌봄 종사자들이 그곳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자세히 알고자 하는 게어렵다. 죄책감을 떨치기가 어려운 죄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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