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애와 이야기하는 도중에 좀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지역의 초등학교 엄마들이 아이의 성적(실력)에 따라 엄마를 왕따 시키기도 한단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다시 물었더니 같은 반이나 스터디 그룹에서 한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그 엄마를 다른 엄마들이 왕따를 시킨다는 거다. 스터디 그룹에도 안 껴주고, 카톡방에서도 무시를 한단다. 또 학교마다 엄마들 모임이 따로 있어서 다른 학교 엄마는 껴들 수 없단다.
사실이라면 정말 황당한 이야기다. 어른들이 이런 지경이면 애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철없는 애들이 왕따 놀음을 하면 말려야 할 어른들이 그런 일을 조장하다니. 왕따 당한 엄마의 스트레스가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마음이나 성격의 어떤 재능을 설탕이나 버터처럼 무게로 잴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등급별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정해진 모자를 씌우고, 이름에 칭호를 붙이는 데 능숙한 케임브리지 대학도 재능을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 간의 경쟁과 계층 간의 경쟁을 조장하고, 우월함은 자신에게 돌리고 열등함은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 모든 행위는 인간 존재의 단계로 보면 어린 학생 수준에 속하는 것입니다. ‘편’이 있고, 한 편이 다른 편을 이겨야만 하고, 연단에 올라가 교장선생님이 건네주시는 화려한 상패를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한 그런 시기 말입니다. -171쪽
덩치만 클 뿐 애기 같은 학생들이 왜 이리 많은가 했더니 그 부모가 아직 덜 자란 어린 학생 수준이어서 그런가 보다. 울프는 바로 다음 글에서 나이를 먹으면 ‘편’이나 화려한 상패 같은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 때에 욕망하는 ‘편’과 상패를, 더 화려하고 큰 상패를 원하게 된다. 덜 자라서 그렇다. 왕따 엄마 밑에서 자란 왕따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아이 키우는 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상대는 이웃집 아이 엄마라는데 자기 주관 가지고 흔들림 없이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다. 아이 학교는 학부모총회 때나 가고 같은 반 엄마는 물론, 담임선생님 얼굴조차 가물거리는, 나 같이 무신경하고 일까지 하는 엄마라면 견딜 수 있으려나.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주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을 올바른 생각과 태도는 중요하다.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소일거리건 간에 그것은 모든 일 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법칙에 굴복하는 것 역시 가장 굴욕적인 태도입니다. -172쪽
울프가 애 키우는 엄마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아니다.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교수의 동행이나 소개장이 없으면 대학도서관에도 출입하지 못하는 시기에 살면서, 자기가 번 돈 조차 자기 재산으로 만들지 못하는 여성들이 펜 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38쪽
어째서 돈과 자신만의 방이 필요한가? 시나 소설을 쓰지 않아도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헌신했기 때문에 인류는 번식해왔다. 그 예로 울프는 자신의 어머니가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갖기 위해 일을 했다면 자신은 없었을(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매일 저녁 요리를 준비하고, 접시며 컵을 닦았으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사회에 내보냈으니까요. 이 모든 것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에 대해 말해 줄 전기도 역사도 없습니다. -149쪽
굉장히 허탈한 느낌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해도 결국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니. 그럼 돈을 벌어야만 그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의문에 울프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말한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단지 지난 200년간이 아니라, 태초부터 그러했습니다. 여성은 지적 자유가 아테네 노예의 자식보다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시를 쓸 기회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입니다. -174쪽
꼭 여성 뿐 아니라 귀족이 아닌 가난한 남자들도 교육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적 자유가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영국 여성이 자기 소유의 재산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불과 140년 전 정도라고 한다. 1870년, 1882년에 기혼여성 재산법이 재정되었다고 하니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도 딸들은 재산을 가질 수 없어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할 먼 친척과 결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물질과 자기만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울프의 결론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른 무엇이 되는 것보다 간단하고도 그저 평범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다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십시오. -178쪽
울프의 책은 처음 읽는다.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책의 여러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지만 글로 표현하지 못해 아쉬웠던 부분을 너무나 명료하게 표현한 글을 읽으며 즐거웠다. 특히 이런 부분,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한 글이 오랫동안 가치를 지닐지, 아니면 단지 몇 시간 동안만 가치를 지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빛 상패를 손에 든 교장선생님을 존중한다거나, 소매를 걷어 붙이고 자를 든 어떤 교수님을 존중하는 뜻으로, 여러분이 자신의 이상을 털 끝 한 올이라도 희생시키거나 그 고유한 색깔의 음영을 조금이라도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비굴하고 기만적인 행위입니다. -172쪽
서재에 방문자가 전혀 없었을 때는 하지 않았던 고민을 방문자가 늘고 공감 횟수가 늘수록 하게 된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나의 생각을 읽고 댓글을 달거나 공감을 누를 때, 쓰고 싶은 글보다는 공감 받을 글을 쓰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 것이다. 사적인 기록을 남길 것인가 감출 것인가 하는 고민은 더 커지고. 이런 고민에 대해 울프는 다음과 같이 방법을 알려준다. 소중한 충고다.
작가가 전적으로 충실하게 자신의 경험을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면, 온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야만 합니다. 자유가 있어야 하며, 평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 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