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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 2단계 ㅣ 문지아이들 8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예령 옮김, 미레유 달랑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9월
평점 :
동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참 좋은 동화가 많다.
조커가 그렇다. 한 가닥의 여유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림을 볼 때 자기가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상상도 자기가 아는 만큼 펼칠 수 있고,
시험지의 정답도 자기가 아는 만큼 쓸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이란 것도 자기가 여유를
만드는 만큼 지니게 되겠지. 문득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얼마만큼의 인생의 깊이와 여유를 안고 살까?
아이들은 얼마만큼의 즐거움과 행복을 안고 살까?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시작하는 날에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흰머리가
사방으로 뻗치고, 조그만 안경을 걸치고, 배는 동그랗게 나온 늙은 선생님. 아이들은
실망이다. 그러나 첫 수업부터 선생님에게 받은 조커 선물로 아이들은 들떠있다.
조커란, 카드놀이에서 궁지에 빠졌을 때 쓰는 거다. 궁지에 빠져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커를 쓸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이겠지. 씨익 웃음이 절로 난다.
노엘 선생님은 "인생에는 조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라고 아이들을
격려한다. 한 권의 책을 주고 첫 부분만 읽고 나서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숙제를 내 준다. 물론 선생님은 그걸 숙제가 아닌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이
법적으로 너희 수유는 아니지. 그렇지만 너희가 그 책을 길들이는 순간부터, 다시
말해서 그것을 읽는 순간부터 책은 너희 것이 된단다."라고 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그런 수업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살아가는 데는 이처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거." 라는 걸,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노엘 선생님은 늙었지만 젊은 선생님보다 더 활기차다. 비록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조커'로 아이들이 단체로 학교에 오지 않아서, '수업 시간에 춤추고 싶을 때 쓰는 조커'로
공부시간에 음악을 틀고 춤을 추다가 교장 선생님과의 문제가 있어서 결국 학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어느 학년, 어느 때의 선생님
보다 기억에 남을 멋진 선생님의 모습으로 남은 채 말이다.
난 교실 밖 수업으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자기가 갖고 싶은 조커를 만들어 봤다. 책만큼의
자유로운 조커를 만들지는 못했다. 만들어도 쓰지 못할 조커가 되니까 이왕이면 진짜
가족이 함께 쓸 수 있는 조커를 만들자고 했다. 각양각색의 가족과 자신에게 필요한
조커를 만들었다. 그것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조커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집에서 쓸 수
있게 교실 밖 선생님의 권한으로 숙제를 내 주었다. 한 주가 흘러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자 쓸 수 없어서 짜증이 더 났다는 아이도 있었고, 엄마 아빠랑 자기랑 필요할 때
재미있게 썼다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외면 당해서 속상했던 아이들이
더 많았다. 괜히 쓰지도 못할 조커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상처를 하나 넘겨준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노엘 선생님 말처럼 "인생에는 궁지에 빠졌을 때 쓰는
조커를 누구나 갖고 있다"는 희망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즐거운 책읽기였으리라
생각된다.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얻은 많은 조커를 쓰면서 인생을 즐길줄 알아라는 말이 참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