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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ㅣ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네가 그렇게 유명한 하창수냐? 5학년 때는 여자 선생님이라서 네 멋대로였지만,
나한테는 어림도 없다. 어려운 문제 있으면 선생님한테 찾아와라. 하지만 사고만
쳐 봐. 용서 없는 줄 알아."
새로운 학년. 창수는 속으로 6학년이 되기를 기다렸다.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지금의 나, '문제아'라는 딱지를 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새 담임 선생님이
창수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이는 전학년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한 해를 뒤로하고, 더 잘해볼 기회를 찾는 의미와
선생님은 새롭게 아이를 맞이하고, 그 아이의 새로운 점을 찾을 수 있는 때가 아닌가?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학년도 올라가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런 걸 바랐던 창수는 5학년 때의 '문제아' 딱지를 뗄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다.
이것이 지금의 학교 현실이겠지, 하는 마음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좀더 포근하고 너그러운
선생님이 학교에 많이 있다면 좋겠다.
'나한테 제일 어려운 문제는 나를 문제아로 바라본다는 거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찾아오라고 말을 하다니.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문제아에게 가장 큰 적은 내가 아닌 남들이 자신을 문제아로 본다는 거다.
창수도 그걸 알지만 자기 만큼은 '난 문제아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해보려고
했는데 새 담임 선생님은 창수가 왜 문제가가 됐는가에는 관심밖이다. 그저 전학년 담임의
말만 신뢰할 뿐이다. 그런 선생님이 문제가 있으면 찾아오라니, 합리적이지 못한 억지스런
말이다.
'나는 나를 문제아로 보는 사람한테는 영원히 문제아로만 있게 될 거다. 아무도 그걸
모른다. 내가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창수가 문제아로 찍힌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과 축구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지름길이지만 무서운 길, 그 길목에서 삐딱한 형들을 만난다. 돈을 빼앗는 형들 앞에서
창수는 할머니 약을 살 돈을 꼭 쥐었다. 주먹으로 얻어맞고, 발길에 차여도 가만있었다.
형들은 끝까지 창수 돈을 뺏으려했다. 그제서야 창수는 형들의 입술과 손을 깨물고
도망쳤다. 돈을 빼앗기면 안되니까.
다음 날, 학교에 가니 형들 패거리와 친한 덩치큰 규석이가 창수를 물고 늘어진다. 규석이는
다짜고짜 창수를 때렸다. 정신없이 얻어 맞았다. 욕을 했다. 친구들은 그저 구경만 했다.
깡이 많은 창수는 참다못해 옆자리에 있는 걸상을 들어 규석이에게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친구들도 그런 창수를 멀리했고, 선생님은 그런 창수를 문제아로
불렀다. 창수를 벌레보듯 쏘아보기도 하고, 창수가 뭘하든 신경도 안쓰고 말이다.
반에서 겉도는 창수. 창수는 오히려 그게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배장이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할머니 돈을 꾸려 다니고,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돈 벌 사람이 없자 창수는 신문배달을 한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아버지
오토바이로 돌리니 두 배나 더 돌릴 수 있고, 시간도 빨라졌다. 신문배달하던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갔다. 교장선생님은 창수를 불러 폭주족으로 몰아세웠고, 수업시간에 신문배달
로 부족한 잠을 자는 창수를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창수도 문제는 있다. 왜 자신이 그런 문제를 일으켰는가,에 대해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수가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이 왜 문제아가 됐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다. 참 안타까웠다.
창수가 처한 결손가정이나 선생님 혹은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그 사실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을 더 갑갑하게 했다.
'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 주면 나도 아주 평범한 보통 애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딱 한 명있다. 봉수 형이다.'
딱 한 명, 봉수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신문보급소에서 만난 형. 봉수형은 신문
보급소 옆에 딸린 방에 살면서 검정고시 학원에 다닌다. 학교를 빼먹는 창수를 혼낸다.
창수는 봉수형에게 야단 맞아도 좋단다. 정말로 자기를 걱정하는 마음에서니까.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아이가 문제아라고 생각하는지를. 욕을 심하게 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싸움을 하거나, 돈을 빼앗거나, 아이들을 때리고 못살게 구는
아이란다. 사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문제아란 딱지를 붙이는 이유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창수네 아버지가 다쳐서 창수가 대신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오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고, 돈을 빼앗기기 싫어서 싸움을 한 일, 지기 싫어하는 성격,
깡이 세고, 참다참다 못해 싸움을 하게 된 그 사실들. 이 사실들이 나와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고, 창수 또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아는 결국 우리가 만드는 거다. 우리의 잣대로 창수를 함부로 문제아라 불렀고,
그런 창수는 더 문제아가 되고 있다. 항상 결과만 가지고 창수를 평가하지 않았다면,
창수가 왜 그랬을까? 이유를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 문제아란 딱지는 붙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딱 한 명, 봉수 형이 창수 곁에 있어서 희망이 보인다.
그 희망으로 창수가 마음을 열고, 누구나 다시 보통아이란 걸 알아주는 날이 빨리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