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남긴 선물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8
마거릿 와일드 지음, 론 브룩스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는 오래도록 함께 살았습니다.'
첫 장을 펼치면 이야기 이렇게 시작됩니다.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는 함께 집안 일을 하고 음식도 만들고 정겨워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돼지가 아팠어요.
손녀 돼지는 혼자서 난로를 청소하고, 장작을 패고, 먼지를 떨어 내고,
마룻바닥을 쓸고, 빨래를 내다 널고, 이불을 갰죠. 둘이 할 때보다 쓸쓸했어요. 

기운 없던 할머니는 일어나서 겨우 한 입 뜹니다. 손녀 돼지가 할머니 돼지에게 그러네요.
"그렇게 참새처럼 조금 잡수시면 어떡해요. 할머니처럼 덩치 큰 어른이."
손녀 돼지의 말이 참 귀엽고 어른스럽죠.

할머니 돼지는 오늘 할 일이 많다고 하네요. 준비를 해야 된다고요.
손녀 돼지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처럼 슬펐어요.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치를 챘거든요. 그래서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는 이런저런 일을 했어요.

도선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은행에서 돈을 전부 찾아 놓고 통장을 해지 했고,
외상값과 전기요금, 과일값, 땔나무 값도 갚고,
남은 돈을 손녀 돼지 지갑에 넣어 주었어요.  그리고 손녀에게 울지 말라고 약속했지요.

할머니 돼지는 잔치를 열고 싶어 해요. 마을을 천천히 거닐면서 나무와 꽃, 하늘을
눈과 가슴에 모두 간직하고 싶어 했어요. 둘은 마을을 거닐며 하나씩 추억을 만들어 갔어요.

"저기 좀 보렴!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이는 게 보이니?"

"저어기 좀 보렴! 구름이 수다쟁이들처럼 하늘에 모여 있는 게 보이니?"

"저기 좀 보렴! 연못에 정자가 비치는 게 보이니?"

"새들이 재재거리는 소리 들리니? 아아, 따스한 흙냄새. 우리 이 비 맛 좀 볼까?"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 돼지는 침대에 누웠고, 손녀 돼지는 그런 할머니를 꼬옥
안아 주지요. 어릴 적 나쁜 꿈을 꾸었을 때 할머니 돼지가 손녀 돼지를 안아 주었던 것처럼.
마지막으로요.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손녀 돼지는 할머니를 추억하며 함께 거닐던 곳을 오리와 함께
찾아갔어요. 손녀 돼지의 표정이 슬픈 듯, 그리운 듯,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네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가을 풍경의 노란빛과 갈색빛이
인생의 황혼을 느끼게 해 주면서, 오히려 환한 느낌을 주네요. 진지한 내용속에 그래도 그림은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의 통통하고 둥글둥글한 엉덩이로 인해 그 무거움을 덜어 주었고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긴 내용의 그림책은 아니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그다지 무섭고 무겁게
다루지 않은 점이, 이 책의 매력으로 느껴졌답니다.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저는 지금에서야  봤어요. 그리고 할머니 돼지가 손녀 돼지와 함께 만든 추억도 좋고,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아름다운  대사도 빛났어요. 아이들도 느낄 수 있었겠죠.

언젠가 나도 죽음을 맞이할 때,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슴에 하나 둘씩 담아 두고, 
천천히 음식도 줄여가며,
지난 날의 추억을 반추할 시간이 많아질 수 있기를,
그리고 떠나가는 나를 보아주는 따스한 눈길이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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